두 얼굴의 '油錢' 프로젝트?!

에너지 확보·남북정상회담 밑그림에 정치권 이권개입 의혹

철도재단 자회사인 인터내셔널패스앤커머스(IP&C). 김지곤 기자

철도공사(옛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사업 의혹인 ‘오일게이트’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검찰(서울중앙지검 특수 3부)이 전면 수사에 나서면서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날 지 주목된다.

오일게이트의 핵심은 왜 철도청이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에 참여했으며, 어째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중단했는지,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실제로 관여했는지 등으로 모아진다. 하지만 오일게이트를 한 껍질 벗기면 단순한 게이트 이상의 모습이 엿보인다. 한-러 간의 자원외교를 넘어 남북 정상회담으로 가는 중간단계라는 성격이 그것이다.

오일게이트는 전대월 하이앤드 사장이 권광진 쿡에너지 대표와 만나 러시아 유전 개발 사업에 뛰어든 게 발단이 됐다. 권씨는 2003년 11월 페트로사 유전을 놓고 중국측 석유회사(CMPC)와 경합을 벌인 끝에 사업권을 따내고 국내 투자자를 물색하던 중 2004년 6월 전씨를 만났다. 권씨의 사할린 프로젝트는 에너지 전문가인 허문석 코리아크루드오일(KCO) 대표를 만나면서 순조롭게 진행됐고, 전씨가 작년 8월 14~16일 러시아 사할린을 다녀온 뒤 KCO를 설립하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KCO 설립 당시 지분 비율은 전씨가 42%로 가장 많았고, 철도교통진흥재단(철도재단) 35%, 권씨 18%, 허씨 5%였다.

그러나 KCO와 러시아 알파에코사측이 작년 9월3일 유전 개발사업에 대한 정식 계약을 체결한 뒤 계약금 대출과 주식 양도ㆍ양수 과정에서 여러 의혹이 표면 위로 드러났다. 먼저 우리은행이 9월15일 부도난 사업자 전씨가 대표로 있는 KCO에 620만 달러를 대출해준 점이다. 아무리 철도재단이 KCO 지분의 95%를 확보하고 지급보증을 해주었다고 해도 외압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철도재단이 전씨의 42% 지분과 권씨의 18% 지분을 인수하고 120억원을 내주기로 한 부분도 의문이다. 주당 5,000원짜리 주식을 20배인 10만원으로 계산해 준 것이다. 특히 전씨는 주식 양도ㆍ양수에 적극적으로 나서 철도재단에서 받은 자기 몫 지분에 대한 84억원짜리 채권을 제3자에게 판 반면 권씨는 주식 양도에 반대를 하다 주식을 양도하지 않으면 계약금을 송금할 수 없다는 철도재산의 말에 주식을 내놓았다.(실제로 송금은 한달 뒤에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러시아 유전 개발 사업의 주체는 완전히 철도재단이 됐다.

전대월 지분 중 14%는 '보이지 않는 손'
권씨는 “120억원은 전대월씨 하고 철도재단이 미리 협의를 해서 정한 것”이라며 전씨 지분 42% 중 전씨 몫이 아닌 14%의 소유주를 철도재단 관계자 또는 ‘보이지 않는 손(실세)’으로 추정했다.

철도공사가 KCO를 앞세워 유전 개발 사업에 나선 것과 관련, 정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나는 장차 석유공사가 분화해 해외 유전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민간기구가 설립될 경우 KCO가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일게이트와 관련해 집중 거론되고 있는 이광재 의원을 비롯해 에너지 분야에 관심을 보여온 의원들이 민간인 유전개발펀드에 적극적인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철도재단과 권광진 쿡에너지 대표가 체결한 주식 양도·양수 계약서.

다른 하나는 러시아와의 유전개발 사업이 단순히 에너지 자원 확보를 넘어 남-북-러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고려한 고도의 정치게임이라는 것이다. 즉 북한에 영향력이 큰 러시아를 활용해 남북정상회담까지도 계산하고 있다는 전망이다. 이에 따르면 전대월이 사할린에 가 발레리 최(55. 한국명 최경덕)를 만난 것이 그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최씨는 극동 러시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권 대표인 폴리코프스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폴리코프스키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과 가까운 몇 안 되는 러시아 내 친북 인사로,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김 위원장을 두 번이나 크렘린까지 수행한 장본인이다.

폴리코프스키는 작년 11월 한국을 방문, 노무현 대통령과 만났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러시아의 건설적인 역할을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이광재 의원은 오일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다면 4월13일 폴리코프스키를 만날 예정이었다. 이 의원이 남북정상회담에 모종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은 그래서 나온다.(주간한국 2068호 보도 - 기사보기)

특히 이 의원실의 심규호 보좌관은 전대월씨가 8월 중순 사할린을 다녀온 뒤 전씨가 만난 발레리 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전씨가 사할린에서 귀국한 뒤 알파에코사와의 계약체결을 위해 모스크바로 떠난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반응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모스크바로 간 전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 계약체결을 서둘렀고, 주러 한국대사관에서는 알파에코사에 인터뷰 요청을 신청하는 등 유전 사업을 한ㆍ러 정상회담과 연계 시키려는 흔적이 뚜렸했다. 전씨가 모스크바에서 유전 계약 상황을 이광재 의원측에 알린 대목은 이번 오일게이트가 다양한 함의를 내포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철도청 자회사에 의혹
한편 철도청이 별 탈 없이 진행되던 유전 개발 사업을 갑자기 파기한 것과 관련, 정가에서는 이광재 의원 연루설, 철도청 비리설, 지분 다툼설 등 다양한 견해가 쏟아졌지만 최근에는 철도청 자회사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즉 철도청이 마구잡이로 자회사를 설립하는 배경에 이권을 노린 권력기관의 개입이 포착돼 서둘러 유전 개발 사업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철도청 산하기관인 철도재단은 지난해 8월 KCO를 비롯해 누적결손액 125억원에 달하던 전자화폐업체인 브이캐시의 지분 49%를 79억원에 인수했고, 9월에는 유사한 전자화페업체인 인터내셔널패스앤커머스(IP&C)를 자본금 5억원에 설립했다. 이들 기관에는 오일게이트에 연루된 철도청 인사가 다수 포진한다. 박상조 철도재단 사업 본부장은 IP&C의 대표이면서 KCO의 이사로 등재돼 있다. 왕영용 철도청 개발사업본부장은 IP&C의 감사이면서 브이캐시의 이사이다. 이밖에 정권 고위 인사들이 차명으로 철도청 자회사 주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다양한 함의를 지닌 오일게이트가 검찰의 손에서 과연 어떤 모습을 드러낼 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전대월 사할린 방문 이끈 발레리 최
“한국 정치문제 비화로 큰 이익 놓쳐”

오일게이트의 중심에 서있는 전대월(43) 하이앤드 사장은 작년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러시아 사할린을 방문, 사할린 6광구 일대 및 페트로사 정유공장을 둘러봤다. 전씨는 귀국 다음날인 18일 쿡 에너지 권광진(52) 대표 등과 함께 모스크바로 날아가 페트로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알파에코사와 주식 지분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전씨가 16일 귀국하자마자 다음날 유전 개발 사업의 주체인 코리아크루드오일(KCO)을 설립한데는 2박3일간의 사할린 현장 방문이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권광진 대표와 허문석 KCO 대표를 통해 사전에 사할린 6광구의 경제성을 알고 있던 터에 직접 확인한 것이 사업 결심을 굳혔다.

전씨가 사할린을 방문한 것은 러시아 교포 발레리 최(55, 한국명 최경덕)씨가 있어 가능했다. 최씨는 일제강점기인 1936년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된 부친 최해진씨(경남 울산 출신, 67년 작고)와 모친 김구열 여사(84)의 일곱 남매 중 넷째로, 사할린에서는 드물게 블라디보스톡에서 대학을 나와 사할린에서 가장 큰 수산공장인 ‘센츄리’를 운영하고 있다.

최씨는 1991년경 현대그룹이 사할린 유전 개발에 참여하면서 당시 정주영 명예회장 등 현대 관계자들을 만났고, 2000년에는 (주)대현자원개발이 사할린에 투자할 수 있는 다리를 놔줬다. 그러나 현대는 1992년 정주영 회장의 대선 출마로, 대현자원개발은 자금 문제에 부닥치면서 사할린 프로젝트는 현실에서 멀어졌다. 작년 KCO가 나서면서 사할린 프로젝트는 다시 꿈틀댔다. 최씨는 KCO의 배경에 철도공사, 에너지 전문가 등 든든한 배경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상당한 기대감으로 전씨를 맞이했다. 최씨는 4월15일 전화통화에서 사소한(?) ‘오일게이트’로 국가적 사업이 무산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전대월씨가 사할린을 방문한 목적은 무엇인가.
“페트로사 유전 사업의 경제성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현장을 방문하고 세계적인 자원 전문가인 C박사를 통해 사할린 석유자원 전반에 관한 설명을 듣고 확신을 가졌다.”

-유전 사업과 관련해 전대월씨가 한국 정치인이나 특정 인사를 언급하지는 않았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이라는 얘기는 했다. 한국 정치 문제는 내가 언급하기엔 적절치 않다. 한국이 정치 문제로 큰 이익을 놓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국에선 페트로사 유전을 포함해 사할린 6광구의 경제성을 놓고 논란이 있다.
“수년간 한국을 오가며 석유공사 관계자를 만났고, 한국 전문가들이 사할린에 조사차 오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국에는 사할린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이나 러시아 등 세계적인 평가 기관들이 경제성이 있다고 결론 내린 것을 한국에서는 어떤 근거로 부인을 하는 지 근거자료를 알고 싶다.”

-일단 페트로사 유전 사업은 실패로 끝났는데 앞으로 한국이 러시아 유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떤가.
“페트로사 유전은 한국에게 마지막 남은 기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가 자국 에너지 보호를 강화하고 미국ㆍ영국ㆍ일본 등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러시아 지역 대부분을 장악한 상황에서 한국이 참여할 가능성은 훨씬 좁아졌다. 무엇보다 러시아와 한국 사이의 신뢰가 깨진 게 가장 큰 손실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4-21 1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