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노리던 유전개발, 군력개입 흔적 드러나며 정치권 강타

[오일게이트] 사기극과 권력형 게이트의 양면성
대박 노리던 유전개발, 권력개입 흔적 드러나며 정치권 강타

철도공사의 사할린 유전개발 투자사업을 주도한 전대월 하이앤드 대표가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자진출두하고 있다. 김주성 기자

동상이몽(同床異夢). 철도청(현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사건이 지니고 있는 이중성을 대변하는 말이다. 이번 사건은 권력 실세를 앞세운 사기극과 권력 측근 개입 의혹(게이트)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등장 인물이 어떤 역을 했는가에 따라 사기극과 권력형 게이트의 비중이 달라질 수 있을 뿐이다.

러시아 유전개발을 이용해 ‘대박’을 꿈꾼 이들이 있는가 하면 여러 의혹과 무리가 있음에도 또다른 목적(꿈)을 위해 게이트를 진행시킨 ‘권력’이 게재돼 있다는 것이다.

지분 둘러싼 충돌, 사기극으로 변질
러시아 유전개발은 작년 6월 권광진 쿡 에너지 대표와 전대월 전 코리아크루드오일(KCO)대표가 만난 것을 계기로 이광재 의원이 석유전문가인 허문석 씨를 전씨에게 소개하면서 급진전 됐다.

그러나 권ㆍ전ㆍ허씨 모두 독자적으로 유전 개발을 추진할 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철도청이 가세하면서 유전 사업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KCO가 인수한 사할린 6광구 개발에 대한 페트로사의 지분을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유전 개발의 본질이 퇴색, 점차 사기극으로 변질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작년 8월17일 KCO 설립 때의 지분(전대월 42%, 철도재단 35%, 권광진 18%, 허문석 5%) 중 전씨와 권씨의 지분 60%(액면가 6억원)를 철도공사가 120억원으로 부풀려 인수한 것과 지분 변동 과정이 사기극의 요체라는 것이다.

권광진씨는 120억원에 대해 “전대월씨와 철도재단이 미리 협의를 해서 정한 것”이라며 “내 지분 18%는 철도재단이 주식을 인도하지 않으면 알파에코사에 계약금을 송금할 수 없다고 해 프로젝트가 무산될까 봐 할 수 없이 건넨 것”이라고 해 철도재단과 전씨를 의심했다.

전씨의 지분 42% 에 대한 몫인 84억원은 철도재단과 주식 양도양수계약이 체결된 작년 9월16일 사채권자 황모씨와 김모씨에게 각각 54억원, 30억원씩의 권리가 양도됐다. 그러나 이들의 신분이 불명확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뒤에 ‘보이지 않는 손’이 이들을 대리인으로 앞세워 이익을 챙겼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허씨의 지분 5% 중 4.99%가 사라진 대목도 의문이다. 작년 9월16일 철도공사 간부 Y씨는 허씨에게 KCO의 자본금 증자(500억원)를 이유로 4.99%의 지분을 요구했으나 이듬해 1월 감사원 감사에서 Y씨 개인 몫으로 변경시켜 놓은 것이 확인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철도재단의 일을 주관한 왕영용씨의 작품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4월 20일 국회 건교위에 출석한 왕영용 한국철도공사 사업개발본부장(가운데)이 사할린 유전개발사업 의혹사건에 대한 답변 도중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오른쪽은 김세호 건교부 차관(전 철도청장). 고영권 기자

전씨의 지분 42% 중 14%가 타인 몫이라는 부분도 주목할 부분이다. 작년 10월 말 전씨의 또 다른 채권자가 지분매각 대금으로 빚을 갚으라고 요구한데 대해 전씨가“제3자에게 줄 리베이트”라고 거절하자 청와대에 투서, 순조롭게 진행되던 유전 사업이 갑자기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KCO의 지분에 고위 권력이 관련됐기 때문에 덮었다는 견해도 철도재단측이 청와대 조사에 앞서 비리를 감추기 위해 서둘러 계약을 파기했다는 견해 등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지난 4월28일 전대월씨가 검찰에 제시한 허문석씨와의 전화 통화 내용 녹취록이 주목된다. 허씨는 전씨와의 통화에서 “(감사원 조사에서)리베이트 준 것도 없고 줄 필요도 없다고 얘기하라”며 “처음부터 권력층이나 그런 사람에게 주려고 했던 것이면 정상적으로 하려고 한 것이 아닌 게 되니까”라고 조언했다.

누구에게 어떻게 주었다는 내용은 없지만 리베이트가 실제로 있었을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 허씨가 이광재 의원을 언급하면서 “이 의원을 살리고 나도 사는 방법”운운한 대목이 이 의원의 개입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라면 이번 사건은 권력 게이트 성격을 띠게 되는 셈이다.

권력실세 관련설 진실은?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사건이 권력형 게이트의 측면도 있다는 것은 여러 군데서 감지된다. 지난 4월20일 최연혜 철도공사 부사장은 국회 건교위에서 “철도진흥재단 이사로 있던 지난해 9월 9일 이사회 석상에서 왕영용 본부장으로부터 유전개발 사업을 보고 받은 바 있다”면서 “왕 본부장은 ‘이광재 의원이 사업을 밀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최 부사장은 “당시는 사업이 많이 진척된 상황이었던 것으로 안다”며 “왕 본부장이‘이광재 의원이 뒤를 밀고 있어 안정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최 부사장은 이어 “왕 본부장에게 ‘결국은 사업주체가 책임져야 하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지적했던 기억이 난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왕 본부장은 이날 건교위에서 “지난해 철도청 및 철도재단 관계자들에게 사업을 설명할 때, 직접 이광재 의원이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고 부인했다. 왕 본부장은 허문석씨가 “이광재 의원이 유전개발 사업에 관심이 많다”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 와전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허씨는 MBC ‘PD 수첩’과의 인터뷰에서 “그 양반(왕 본부장)한테 이 의원이나 청와대가 민다고 말한 적이 없다”며 반박했다.

이에 앞서 왕 본부장은 작년 8월12일 철도청의 사할린 유전ㆍ정유 및 북한 건자재 채취사업 참여 관련 설명ㆍ토론회에서 철도청의 유전사업 참여동기에 대해 “(외교안보위의)이 의원이 사업참여를 제의해왔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앞서의 예를 볼 때 왕 본부장이 이 의원을 거론했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이 의원의 주장대로 왕 본부장이 ‘이 의원의 이름을 판’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공무원의 생리상 사업 추진을 위해 아무런 관련 없는 ‘권력 실세’를 함부로 앞세울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대월, 이광재 측에 협상과정 보고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에 관여한 전대월씨의 행보에도 권력형 게이트의 흔적이 드러난다. 전씨는 작년 8월14~16일 사할린 페트로사 유전 현장을 다녀온 뒤 이틀 뒤 모스크바로 날아가 9월4일 알파에코사와 페트로사 지분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전씨는 사할린 현지에서 페트로사 사업권(육상ㆍ해상 유전, 정유공장)의 경제성(사업성)을 직접 확인하고 러시아의 세계적인 자원전문가인 C박사로부터 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나서 매우 들뜬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당시 전씨를 안내하고 통역을 담당했던 러시아 동포 C씨는 전씨가 “이건 분명히 되는 사업이다. 한국과 러시아가 큰 일을 하게 됐다”며 흥분했다는 것.

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오일게이트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고 특검법안이 통과되면 특검에도 출두하여 조사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종철 기자

전씨는 귀국하자마자 8월17일 KCO를 설립하고 알파에코사와의 계약 체결을 위해 곧바로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그러나 동행한 권광진씨가 알파에코사와 유리한 계약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해 전력한데 반해 전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스케줄에 맞춰야 한다”며 권씨에게 계약 체결을 재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전씨는 노 대통령의 방러에 맞춰 모종의 계획을 준비했다는 게 권씨의 설명이다. 한-러 간에 최초의 유전개발 계약을 체결한다는 데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역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노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알파에코사와 조인식을 가지려고 했다는 것. 다시 말해 삼성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LGㆍSKㆍ현대차 회장들과 같은 반열에서 사업 조인식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씨의 계산은 그해 8월30일 부도가 나면서 물거품이 됐다. 전씨는 부도 문제를 마무리하기 위해 권씨보다 이틀 늦게 모스크바에 들어갔고, 8월25일 잠시 귀국했다가 3일 후에 다시 권씨와 합류했다.

권씨에 따르면 전씨는 권씨가 알파에코사와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수시로 이광재 의원측 관계자로 추정되는 인사와 전화를 해 협상과정을 보고했다고 한다. 게다가 러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은 노 대통령의 방러에 맞춰 알파에코사에 인터뷰 요청을 했다. 이는 KCO의 유喚낱?참여가 민간 차원의 사업을 넘어 정부가 관여한 뚜렷한 흔적이다.

석연치 않은 대출과정, 외압 흔적
우리은행이 철도재단의 계약금을 송금한 대목도 권력형 게이트의 측면을 드러낸다. 우리은행은 철도청장(김세호 현 건교부 차관)이 KCO의 지급보증을 담보한 확약서(2004년 8월16일 발행)를 보냈지만 전대월ㆍ권광진씨의 신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송금을 보류하다 노 대통령 방러 후 철도청이 재차 계약금 지급을 요청하자 마지못해 이튿날인 10월4일 계약금을 송금했다. 은행 관계자들은 우리은행의 대출이 통상적인 절차를 벗어난 ‘파격적’인 것이라고 해 외압설에 무게가 실렸다.

특히 작년 8월 중순 김세호 당시 철도청장이 우리은행에 확약서를 보낸 시점을 전후해 철도청 안팎에서 김 청장이 건교부 차관으로 영전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실제 김 청장은 확약서 발급 후 보름 뒤인 9월1일 건교부 차관으로 옮겼다. 당시는 인사 시기도 아니었고 예상밖 인사여서 그 배경을 놓고 이런저런 소문이 적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김 청장을 궁극적으로 건교부 장관에 앉히려는 수순이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사할린 6광구 페트로사 유전에 대한 견해차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석유공사와 ㈜SK는 페트로사의 육상ㆍ해상 유전이 경제성이 없고 위험 부담이 크다고 진단했지만 세계적인 유전평가 기관인 미국의 슐럼버거사와 러시아 자원 전문가 C박사는 경제성이 있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이와 관련, 작년 10월 철도공사 관계자들이 2차 실사를 마친 뒤 11월에 낸 보고서에는 ‘육상유전에서 매년 20만톤이 생산되는 등 사업 전망이 충분하고 페트로사 장부상의 문제는 러시아의 기업관행 때문이며 실제는 흑자’라는 분석 결과가 나와 있다.

페트로사 유전이 사업성이 있음에도 철도재단이 알파에코사와의 계약을 파기했다면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사건은 권력형 게이트에 무게가 주어진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가 러시아 유전개발을 한-러 관계의 진전, 나아가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발전(남북정상회담 등)의 지렛대로 삼으려고 한 움직임에 비춰 더욱 그러하다.

반면 사업성이 없음에도 KCO와 철도재단이 유전개발을 추진했다면 권력 실세를 앞세운 단순 사기극이거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권력형 게이트일 가능성이 높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5-04 16:43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