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전선부에서 중심이동, 박봉주·연형묵·리0혁·권호웅이 핵심

북한 대남라인, 내각이 주도한다
통일전선부에서 중심이동, 박봉주·연형묵·리0혁·권호웅이 핵심

개성시 자문산 여관에서 열린 남북차관급회담. 19일 저녁 마라톤 협상을 거듭한 끝에 양측대표들이 공동보도문을 교환하고 있다.

개성에서 열린 남북 차관급 회담이 나흘 간의 신경전 끝에 장관급 회담과 대북 비료 지원의 ‘빅딜’을 타결하고 5월19일 막을 내렸다.

남북 합의에 따라 제15차 남북 장관급 회담이 6월 21∼24일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이고 대북용 비료 20만톤 중 일부가 21일 북측에 전달됐다. 또 평양에서 진행될 6ㆍ15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에는 장관급 단장을 파견키로 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게 됐다.

이번 개성회담에는 남측에서 이봉조 통일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김웅희 남북회담사무국 회담운영부장, 한기범 통일부 국장이 참석했고, 북측에서는 김만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부국장을 단장으로 조평통의 전종수, 박용일 등이 팀을 이뤘다.

남측 대표단이 경험있는 중량급 인사로 구성된데 반해 북측은 차세대 대남 라인으로 꼽히는 40대가 주축을 이뤄 대조를 보인 셈. 북한이 10개월만에 재개된 남북대화 자리에 상대적으로 무게가 떨어지는 ‘새 얼굴’을 내보냄에 따라 그 배경과 실제 대남 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개성회담에 나온 북측 인사들은 모두 대남 전략을 총괄하는 통일전선부(통전부ㆍ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소속이다. 북측 대표인 김만길 단장은 통전부 산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으로 5∼11차 장관급회담 대표로 참가한 바 있다. 2002년 8월 서해교전으로 인한 남북 경색을 풀기 위한 금강산 실무접촉 때는 조평통 서기국 참사 신분으로 당시 우리측 이봉조 대표와 만난 경험이 있다.

전종수와 박용일 대표도 조평통 소속으로 전종수는 12∼14차 장관급회담으로 데뷔했으며 본 회담이 막히면 실무접촉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론가로 알려졌다. 박용일은 남북 회담에 여러 차례 참가했지만 주로 지원 부서에서 일했고 이번 회담을 계기로 본격적인 대화일꾼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주목되는 것은 정동영 장관이 작년 7월1일부터 통일부를 이끌면서 북핵 해결사로서의 역할을 위해 남북 대화 채널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구축한 통일전선부 최고위층 라인이다.

통전부, 김용순 사망으로 비중 약화
통일전선부는 김대중 정권 때 확실한 대남 창구로서 역할을 했지만 김용순 통일전선부장(아태평화위원장)이 2003년 10월, 송호경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2004년 9월에 사망하면서 비중이 떨어지고 조직 재편도 불러왔다. 임동욱 통일전선부 제1 부부장이 김용순 부장을 대신해 대남 정책을 총괄하게 됐고, 최승철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안경호 조평통 서기국장 등이 신진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종혁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은 원로에 속하지만 여전히 실세로 통하고 있다.

정동영 장관은 취임 초부터 남북관계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며 지난해 말 통일전선부 최고위층과 선이 닿았다. 임동욱 제1 부부장과 서신을 주고받게 된 것. 그렇게 되기까지 남측에서는 이봉조 통일부 차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 출신인 국정원 서훈 대북전략국장이 움직였고 북측에서는 안경호 조평통 서기국장과 최승철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등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이번 개성회담에 통전부 소속 인사들이 북측을 대표해 나온 것은 당연한 것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북한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의 판단은 사뭇 다르다. 한마디로 북한의 내부 변화를 모르고 북한이 남측에 진정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한 ‘단견’이고 그것에서 비롯된 ‘패착’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에너지 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 최근 북측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한 북한전문가는 “아태평화위의 시대는 김대중(DJ) 정권이 끝남과 동시에 막을 내렸다. 형식적으로 대남 관련 사항을 다루고 있지만 실질적인 대남 창구는‘내각’이다”며 “권호웅(내각 참사)과 장성택(전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상징하는 바를 주목하라”고 말했다.

아태평화위는 DJ정부와 현대에서 한 몫 챙겼지만 이후에 그만한 역할을 찾지 못한데다 그동안 대남 경협을 총괄하던 아태평화위 산하의 조선민족경제연합회(민경련)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내부 비리 문제가 지적되면서 대남 라인의 실질적인 주체가 통일전선부에서 내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북한전문가에 따르면 민경련을 대신해 총리 휘하의 ‘고려민족경제위원회’(2004년 7월 출범)가 전면에 나설 예정이고 산하기관인 ‘임가공복무총국’이 실질적인 대남경협을 맡게 된다는 것이다. 남북 장관급 회담과 6ㆍ15 공동선언 기념행사에서 북측을 대표할 권호웅 내각 참사가 아태평화위에서 내각으로 옮겨와 남북대화의 주역으로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 특히 총리(박봉주)실 직속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O혁은 해외 유학파 출신으로 향후 남북관계에 비중있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언이다

한때 실각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장성택 전 제1 부부장은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로 군과 정부와의 관계를 조율하면서 남북관계를 비롯해 북한 문제 전반을 다루는 등 여전히 최고 실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장 전 제1 부부장은 내각에 힘을 실어주며 올초부터 해외 유학파를 대거 귀국시켜 북한의 체제 변화에 따른 위기관리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북창구 총체적 재점검 서둘러야
내각의 수반인 박봉주 총리는 2002년 4월 장성택 등과 함께 북한경제시찰단으로 남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남북경협과 관련해 주목을 받고 있다. 북한 전문가에 따르면 박 총리가 내각 수반으로 있지만 남북관계가 경협을 비롯해 획기적으로 발전할 경우에는 연형묵 국방위 부위원장이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러시아에서 수술을 받고 올 초부터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연 부위원장은 1990년 서울서 열린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 때 북측 대표로 나설 정도로 비중있는 인물로 김정일 위원장의 각별한 신뢰를 받고 있는 최측근 실세다.

북한이 이번 개성회담에 나선 것은 ‘비료’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측의 속내를 확인해보려는 측면도 있다. 한국이 진정으로 북한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북핵 문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맡기고 경협, 이산가족 상봉 등 민족 문제를 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획기적인 대남정책을 펼 계획을 갖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한국이 비료ㆍ쌀 문제를 북핵과 6자회담에 연계시키면서 개성회담은 함량 미달의 ‘비료회담’에 그쳤다. 정동영 장관은 북한 지원의 대가로 평양을 방문하는 영광(?)을 누리게 됐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상처를 입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게 북측의 반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통일부 장관, NSC 의장으로 최고의 대북 정보를 접할 수 있음에도 북한의 실질적인 대남 라인을 파악치 못하거나 그들의 기대를 간과한 결과라면 정 장관 개인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을 전망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5-26 17:56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