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단독면담으로 국내외 스포트라이트, 차기주자 위상 다진 호기

뜬 정동영, 이 참에 날개 달아?`
김정일 단독면담으로 국내외 스포트라이트, 차기주자 위상 다진 호기

6월22일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서 열린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정동영(오른쪽) 장관과 북측단장 권호웅 내각책임참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흥수 기자

고진감래(苦盡甘來).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정 장관은 6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단독 면담, 국내외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데다 당 안팎에서 지지층이 확산, 차기 주자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지만 지난 1년은 고전의 연속이었다.

정 장관은 지난해 4월 17대 총선을 앞두고 노인 폄하 발언으로 타격을 입고 당 의장에서 물러났지만 총선에서 제1당으로 압승한 결과를 바탕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그해 7월 초 김근태 복지부 장관과의 경합 끝에 통일부 장관에 올라 ‘내공’을 쌓을 기회를 가졌지만 과정은 참담했다. 취임하자마자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 불허 문제, 탈북자 대량입국 사태 등으로 남북채널이 10개월 동안 완전히 끊겨 ‘통일부 장관’으로서의 재역할을 하지 못하고 ‘최악의 남북관계’를 만들었다는 혹평을 받았다.

그러던 중 지난달 16~17일 개성에서 열린 차관급 회담은 정 장관에게 ‘숨통’을 트이게 했다. 북한은 정 장관이 남북관계를 경색시켰다는 이유로 평양에서 열리는 6ㆍ15 5주년 기념 행사에 남측 대표로 나서는 것에 반대했지만 최악의 경제 사정과 미국의 대북 압박이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남북 장관급회담서 '대선주자' 각인
정 장관은 김정일 위원장과 단독 면담을 통해 통일부 장관으로서의 위상을 완전히 회복했고 이어 서울서 개최된 21~24일의 남북장관급회담 우리측 대표로 나서 대선주자 ‘정동영’ 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동안 여권에서는 차기주자로 정동영ㆍ김근태 장관 외에 이해찬 총리, 김혁규ㆍ문희상ㆍ유시민 의원, 제3 후보로 고건 전 총리, 홍석현 주미대사 등이 거론돼 왔지만 이번 남북관계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정 장관이 확실한 우위를 선점했다는 분석이다.

여론조사기관인 글로벌리서치가 18일 20세 이상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한 결과 응답자 67.2%가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답해 정 장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당내 사정도 정 장관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정 장관이 20일 국회에서 6·15 공동행사 등 방북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는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포함한 상당수 의원들이 나와 개선장군을 맞는 듯했다.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중진은 “4ㆍ30 재보선에서 참패하고 국가 정책을 놓고 당ㆍ정ㆍ청이 불협화음하는 모습을 보인데다 무슨무슨 게이트 등으로 당 지지율이 바닥인 상황에서 정 장관의 대북 성과가 그나마 당 이미지를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호남을 대표하는 친노(親盧) 인사인 염동연 의원의 행보를 향후 정 장관의 위상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6월 13일 여의도 한 식당에서 상임중앙위원을 사퇴한 염동연 의원을 비롯한 열린우리당의 호남출신 의원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종철 기자

염 의원은 8일 여당 최고지도부인 상임중앙위원직에서 전격 사퇴한 다음날 정 장관과 비밀리에 회동했다. 이날 회동에는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과 김한길 의원도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염 의원은 사퇴의 변에서 문희상 의장을 중심으로 한 지도부와 유시민 의원 등으로 대변되는 개혁파 그룹을 강도높게 비판했는데 9일 회동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의 성토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 일각에서는 9일 회동에 모인 인사들이 실용파인 점을 중시, 당내 실용파가 정 장관을 중심으로 재결집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미 당 안팎에서는 ‘염 의원의 당직 사퇴→우리당 지도부 불신 및 총사퇴→조기전당대회→정동영 장관 당 복귀’ 라는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염 의원이 당직을 사퇴한 것을 두고 문 의장을 겨냥하고 실용파 및 호남세력의 결집을 촉구한 신호탄이라는 해석은 그래서 나온다.

오는 8월 중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는 ‘평화개혁연대(평개연)’에 대해서도 일각에서는 정동영 장관과 연관지어 해석한다. 평개연 출범에 염 의원이 관여하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창립제안서에서 급진적 개혁을 경계한다고 해 유시민 상임중앙위원이 소속된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연) 등 이른바 당내 개혁진영을 견제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해 평개연 출범을 준비중인 주최측은 “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당원들이 함께 당의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태자는 뜻으로 모이는 것일 뿐 특정 인물이나 정파와는 관계가 없다”고 반박한다.

북풍에 힘입어 당 안팎 지지 확산
정 장관은 예상치 못한 북풍에 힘입어 실추된 기력을 되찾고 대권을 포함한 정치적 순항의 물꼬를 텄지만 향후 행보는 아직 불투명하다.

당 주변에서는 정 장관이 10월 재보선을 통해 당으로 복귀, 이완된 당 조직을 추스르고 바닥으로 떨어진 당 지지율을 끌어올려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반면 정 장관의 10월 복귀설에 대해 반대 여론도 만만찮다. 최근 당 지지율이 한나라당에 비해 10% 가량 뒤지고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상황에서 자칫 정 장관이 재보선에서 패할 경우 여권의 유력한 주자가 조기에 낙마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한 재선 의원은 “설령 정 장관이 재보선에서 승리해 당으로 복귀하더라도 대선까지는 2년이 넘게 남았는데 여러 이유 등으로 중간에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조기 당 복귀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북한이 어려운 내부 사정과 미국 등의 압력으로 한국 정부에 과도한 조처를 제의하고 있지만 언제 뒤바뀔지 알 수 없다”면서 “남북관계가 지금처럼 정 장관에게 유리하게만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그는 “북측의 태도는 8월 15일이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그에 따라 정 장관에게 양지와 음지가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국내외 사정으로 최근에는 ‘정동영 총리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당 복귀 시점을 늦출 수 있고, 차기 주자로서의 역량을 배가시킬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유동적인데다 당내 계파간 세대결 외에 잠룡들의 물밑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어 정 장관의 대권 기상도는 아직 안개속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6-30 17:27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