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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론, '불씨' 안고 일단 잠수
야 3당, 냉담한 반응…정치지형 변화에 따라 재점화 가능성



7월4일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이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구상 언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



여름정국의 첫 머리를 장식하며 커다란 파문을 불러온 ‘연정(聯政)론’의 기세가 한풀 꺾인 양상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처음부터 반기를 든데다 여당의 유력한 파트너로 기대를 모았던 민노당마저 11일 연정 거부 방침을 공식 확정하면서다.

하지만 연정론이 불거진 배경과 함의를 들여다보면 언제든 재연될 ‘불씨’의 징후가 뚜렷하다. 여소야대 지형을 깨려는 여권의 움직임이 거세고 정권의 향배를 가늠할 내년 6월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이 멀지 않은 까닭이다.

노 대통령 11인 회의서 공식 언급
연정 논란은 지난달 24일 노무현 대통령이 여권 당ㆍ정ㆍ청 수뇌부들의 모임인 ‘11인회의’에 참석해 발언하면서 지펴졌다. “정부와 여당이 비상한 사태를 맞고 있다. 민주노동당 민주당과 연정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연정 구상을 공식 언급했던 것.

이 발언으로 정치권은 때아닌 정계개편과 개헌론으로 들썩였고, 발언의 진원지가 11인회의라는 점에서 후폭풍은 거셌다. 11인회의는 열린우리당에서 문희상 의장과 정세균 원내대표, 원혜영 정책위 의장이 참석하고 정부에서는 이해찬 총리와 정동영ㆍ김근태ㆍ정동채 장관이, 청와대에서는 김우식 비서실장과 문재인 민정수석, 김병준 정책실장, 조기숙 홍보수석이 참석하는 사실상 여권의 컨트롤 타워다. 11인회의의 비중에 비춰 이 모임에서 결정된 사안은 여권의 정책에 반영되고 입안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이러한 11인회의에 참석해 연정 구상을 밝힘으로써 ‘노심(盧心)’에 담긴 연정의 실체는 강한 휘발성을 갖게 됐다. 연정에 대해 노 대통령은 7월 5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한국정치,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란 글을 통해 야대(野大) 국회로 개혁은 지지부진하고 국정이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다고 주장한데 이어 다음날에는 ‘우리 정치,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글에서 “국회가 지역구도 문제의 해결에 동의한다면 대통령이 가진 권한의 절반 이상을 내놓을 용의도 있다”고 밝혔다.

7월15일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 참석한 강재섭 원내대표가 노대통령의 연정발언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연합>



지속적인 개혁을 위해 여소야대의 틀을 바꿔야 하고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연정이 필요하다는 논지다. 7일 언론사 편집ㆍ보도국장과의 간담회에서는 “지역주의를 완화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국회가 도입한다면 권력을 내놓을 수 있다”며 연정의 수준을 한껏 높였다.

노 대통령의 연정 발언을 액면 그대로, 또는 선의로 해석하면 ‘개혁’과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이다. 선거제도 개편이나 권력 분점의 개헌론 등은 연정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들이다.

우리당은 “연정이나 선거구제 개편은 국민통합과 선진화로 나아가자는 것”이라며 연정론에 적극적이다. 문희상 의장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21세기를 내다보는 선구자적 안목을 가진 지도자라면 제안(연정)을 받아들여라”며 공개적으로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포위·고사전략" 의구심
반면 야 3당은 연정에 냉담하다. 연정의 달콤한 유혹에 ‘함정’ 이 숨어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나라당은 일부 영남권 의원들이 내각제 개헌에 관심을 보였지만 대세는 ‘거부’다. 민주당 역시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선거구제 논의는 가능하지만 연정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윤광웅 국방장관 해임안과 관련, 우리당과 보조를 맞춘 바 있는 민노당은 논란 끝에 “불참”을 선언했다.

야권이 연정에 거부반응을 보인데는 연정 방식과도 관계가 있다. 여권이 선택할 수 있는 연정은 개별 야당과 정책공조를 하는 수준에서부터 민주당ㆍ민노당과 연합 정부를 형성하는 ‘소연정’,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과 연합 정부를 구성하는 ‘대연정’, 야당으로만 과반의석이 넘을 경우 총리 지명권과 내각 구성권을 내주는 단계 등이다. 노 대통령이 7일 언론사 간부들과의 간담회에서 제시한 연정 수준은 마지막 단계로 사실상 한나라당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권력 이양을 수반하는 연정은 정부 형태가 변경되는 개헌 사항으로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한나라당에서는 노 대통령이 구상하는 연정이 민주당ㆍ민노당과의 소연정에 한나라당 일부 의원을 합류시켜 한나라당을 포위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팽배하다.

7월13일 열린우리당 확대간부회의에서 문희상 의장(오른쪽 두번째)이 연정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연합>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의 한 중진 위원은 “야당에 총리지명권을 주겠다는 것은 한나라당을 상대로 ‘대연정’을 하겠다는 것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하므로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지방선거 전에 민주당이나 민노당과의 ‘소연정’을 통한 정책공조나 연합공천으로 한나라당을 포위, 고사시키려는 전략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연정이 합당론의 연장선에 있다며 극력 반대한다. 자칫 우리당에 흡수돼 정치적 기반인 호남마저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민노당 역시 연정이 당 정체성을 상실, 전통적 지지층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고 경계한다.

노 대통령이 연정의 조건으로 제시한 선거제도 개편은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연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중ㆍ대 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중ㆍ대선거구제가 되면 우리당은 영남에서 2등으로, 비영남지역에서는 1등 혹은 2~3등으로 다수 의석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말해 선거제도를 통해 연정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반면 국내 지역주의 정치 행태상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각각 영남과 호남에서만 선전, 지역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소연정과 중ㆍ대 선거구제가 현실화되면 내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에서 잠재적 변수로 등장, 여권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충청 신당과 고건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신당도 뿌리를 내리기 어렵게 된다.

우리당 역포위전략으로 대응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그러한 함정을 우려해 현행 소선구제를 고수하고 연정에 반대한다. 나아가 2007년 대선을 위해 민주당은 물론, 충청 신당, 고건 신당 등과도 연대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영남(한나라당)-충청(충청 신당)-호남(민주당)으로 이어지는 광역벨트를 형성해 우리당을 역포위한다는 전략이다.

내년 지방선거는 기존 정당 외에 신생 정당의 출현이 점쳐지고 선거 결과에 따라 대선을 앞둔 우리당의 포위 전략과 이에 상응한 한나라당의 역포위 복안의 성패도 가려질 전망이다.

노 대통령이 제시한 연정 구상은 참여정부의 개혁과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띠었다고 하더라도 ‘정권 쟁취’라는 정치적 속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연정이 4ㆍ30 재ㆍ보선 참패와 밑바닥 지지율로 정권 재창출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배태된 것은 그 같은 사실을 반증한다.

여름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연정론은 최근 여야의 민생 경쟁에 밀려 정쟁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다. 하지만 여권의 위기 상황이 표면화되거나 정치 지형이 급변할 경우 언제든 재점화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


입력시간 : 2005-07-21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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