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한반도 비핵화'딴 의도땐 회담공전 가능성궁극적 안전보장 위해선 개혁·개방 선택 불가피

예측불허 7월 4차 6자회담,
김정일 위원장 통 큰 결단에 달렸다

북 '한반도 비핵화'딴 의도땐 회담공전 가능성
궁극적 안전보장 위해선 개혁·개방 선택 불가피


7월13일 외교부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반기문 외교부 장관을 쳐다보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기대 반 우려 반. 북한이 우여곡절 끝에 이달 6자 회담에 복귀하지만 회담 결과는 결코 낙관할 수 없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회담이 잘 풀리면 평화 공존을 위한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 되겠지만, 반대일 경우엔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치닫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의 ‘중대 제안’으로 북한으로선 ‘핵을 포기했을 경우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됐고, 대담한 결단을 위한 분위기는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그러나 6자 회담의 실질적 진전은 북한과 미국 간의 밀도 있는 대화에 달렸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보다 본질적인 전제 조건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과연 핵 포기로 게임을 끝낼 것인가’이다.

그러나 최근 평양의 행보로 미뤄볼 때 이에 대한 전망은 밝지만은 않다. 얼마 전 북한이 제기한 ‘한반도 비핵화’ 논리가 회담을 공전시킬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3일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국무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6자 회담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무대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달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에서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김 위원장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가 북핵 포기를 위한 명분 찾기 표현인지, 궁지 탈출을 위한 새로운 대미 전략개념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후자 쪽에 무게를 둔다. 이는 북한이 3월 31일 외무성 담화에서 “6자 회담은 비핵화, 군축회담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며 “6자 회담의 목표는 북핵이 아니라 조선반도 핵 문제 해결”이라고 주장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물론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주장이 6자 회담에서 피의자 신분이 아닌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유리한 협상을 하려는 전략차원에서 나왔을 수도 있다. 만일 그럴 경우 회담은 어렵게 될 수밖에 없다. 북한 노동신문은 11일자 논평에서 “찍어 말하면 우리 공화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도록 만든 것은 미국”이라면서 “미국의 대조선 핵 압살 정책에 의해 남조선(한국)은 우리 공화국을 겨냥한 핵 작전 기지로, 극동 최대의 핵 화약고로 전변됐으며 미국은 우리나라를 핵 선제공격 목포로 선포하고 대조선 핵 위협을 가증(가중)시켰다”고 주장했다.

미 "새로운 인센티브 없다"
반면 미국은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태도다. 이번 회담에서 지난해 6월 3차 회담 당시 제안한 구상에 대한 답변을 듣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있다. 당시 미국은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의 폐기를 선언하고 3개월 안에 이를 이행할 경우, 미국을 제외한 한ㆍ중ㆍ러ㆍ일이 북한에 중유를 제공하는 것을 인정하고, 잠정적인 다자 안전보장과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경제제재 해제 문제 등에 대한 협의를 개시하겠다고 제안했다.

13일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한국의 중대제안도 지난해 3차 6자 회담 때 나왔던 미국의 제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새로운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또 라이스 장관은 “북한의 핵 폐기 대상에는 플루토늄은 물론 고농축 우라늄도 포함된다”고 못박았다. 이는 북한이 보유 자체를 부인하며 예민하게 반응해 온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사찰 의지를 거듭 강조한 것으로 회담 전망을 어둡게 하는 한 요인이다. 그 동안 미국의 고농축 우라늄에 대한 문제 제기가 북한의 2월 10일 핵보유 선언이 배경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나아가 라이스 장관은 “또 다시 대화를 위한 대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회담이 끝난 후 북한이 다시 핵 능력을 개발하고 다음 회담까지 기다리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최후 통첩식 압박을 했다.

결국 이렇게 되면 4차 6자 회담에서는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라는 논리와 미국의 강경한 ‘전면적 선(先) 핵 포기’ 원칙이 평행선을 달리게 돼 회담이 논쟁만으로 끝날 우려가 있다.

핵무기 보??개혁·개방이냐 갈림길
북한의 핵 포기가 궁극적으로 북한 사회의 개혁ㆍ개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는 평양이 핵 포기 전략을 선택하려면 개혁ㆍ개방에 대한 결단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혁ㆍ개방은 남북경협 확대 등 외부세계와의 접촉을 크게 확대하는 것이어서 열악한 인권 상황에 대한 대내외적 비판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점진적인 체제변화에 대한 결심이 섰느냐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평양 분위기에서 이 점을 읽을 수 없다고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핵무기 보유로 체제 방어냐, 핵 포기 후 점진적 개혁ㆍ개방이냐의 갈림길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분명한 선택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북한 체제의 안전보장 문제만 해도 미국과 북한의 생각이 다르다. 북한이 말하는 안전보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 체제 전반에 대한 보장이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공격하지 않는다는 안전보장은 군사적 측면에 국한된다. 특히 인권에 대한 문제는 국가 주권 바깥에 있다. 미국이 말하는 ‘인권’ 개념, 즉 자유와 민주주의 확산은 국가 주권을 넘어서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북한이 개혁ㆍ개방의 길로 나아가지 않을 경우에 미국과 접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인권 분야인 것이다. 당장 핵 포기 선언을 해도 북한으로선 체제 전복의 불안감을 완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방식의 체제 안전보장은 6자 회담에서 당장 보장 받을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이 핵 포기에 대한 ‘평양의 딜레마’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4차 6자 회담에서 북-미 양측의 마지노선을 예단하기는 무척 어렵다. 산케이(産經)신문은 14일 미국 정부가 6자 회담에서 북핵 포기와 동시에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동시 행동’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북핵 포기선언과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 무력행사 포기선언, 주권국가 인정 등을 동시에 진행하고, 핵 폐기 검증을 수용하는 단계가 진전될 때마다 미국이 다음 양보를 제공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최근 “6자 회담 진전이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 동안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이 대체로 현실화 했던 점을 고려하면, 북한이 이번 6자 회담에서 분석가들의 전망을 무색케 할 정도의 결단을 보여줄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7-22 12:56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