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공 씨 뒷거래 의혹, 천용택 전 원장 도청 자료 보유설도

[X파일] 아리송 X파일, 누굴 겨냥했나?
국정원·공 씨 뒷거래 의혹, 천용택 전 원장 도청 자료 보유설도

옛 안기부 특수도청조직 미림팀의 팀장이었던 공운영 시가 7월26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자택에서 자해한 뒤 구급대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연합>

안기부 X파일 폭로 파문은 김대중(DJ) 정권 시절 안기부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당시 물갈이된 직원들이 부당 해고를 당했다고 생각하면서 이를 시정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안기부 구조조정의 단초는 DJ 정권이 출범하던 1998년 초, 조직 쇄신과 인적 청산 계획이 담긴 문건이 작성되면서다. 이른바 ‘살생부’로 DJ 정권은 이 문건을 바탕으로 안기부 명칭을 국정원으로 바꾸고 대대적인 물갈이를 단행했다.

숙청 대상은 ‘97년 대선 당시의 6적’‘북풍 관련 사업자’‘97년 대선 당시 반DJ 주동 활동 인물’로 분류됐다. 영남 정권에서 호남 정권으로 바뀌면서 ‘복수’의 칼바람이 분 것이다. 이듬해 3월까지 무려 580여 명이 면직됐다. 그 중에는 안기부 X파일 파문의 단초를 제공한 공운영(58) 미림팀장을 비롯, 미림팀의 존재 사실을 폭로한 김기삼 전 직원도 포함돼 있다.

X파일을 담은 도청테이프는 99년 공 씨가 복직을 위해 재미교포 박인회(58) 씨에게 건넸고 박 씨가 이를 갖고 삼성측과 협상을 벌이다 실패한 뒤 삼성이 국정원에 도청 테이프 협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신고하면서 드러났다.

관련기사
칼 뽑은 檢, 다 밝힐 수 있을까
홍석현의 야망, '도청게이트'에 지다

그러나 당시 천용택 국정원장은 공 씨가 명백히 국정원 복무규정을 어겼음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테이프 200여 개를 회수하는데 그치고 그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서는 공 씨가 통신사업을 하는데 적극 도와주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래서 공 씨가 당시 DJ 정부에 불리한 테이프를 무기로 국정원과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나아가 천 전 원장이 공 씨와 모종의 거래를 매개로 테이프를 활용했다는 ‘뒷거래설’마저 제기되고 있다.

전 안기부 간부 출신들의 모임인 ‘국가를 사랑하는 모임’의 송영인 회장은 7월 26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천용택 전 원장이 공운영 씨의 도청테이프 유출 사실을 알고도 처벌하는 대신 ‘뒷거래’를 통해 위법행위를 무마해줬다”면서 “도청 테이프에 김대중 정부와 관련된 사안이 있어 공 씨를 처벌하지 못하고 도청테이프 폭로를 막기 위해 이권까지 제공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공 씨 운영 통신회사 설립과정도 의문
천 전 원장은 자신을 둘러싼 온갖 억측들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 측근은 “(천 전 원장이)국정원의 조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전 국정원의 수장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라면서 “한 재미교포가 삼성을 협박한다는 사실을 보고 받은 적은 있지만 공운영 씨는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천용택 전 국정원장.

99년 중반 공 씨로부터 도청테이프를 압수했던 당시 국정원 감찰실장 이건모(60) 씨는 7월 28일 해명자료를 통해 “공 씨가 빼돌린 도청 자료를 회수해 전량 소각했으며, 천용택 원장에게는 (사건)개요만 보고했다”고 밝혔다. 천 원장과 도청테이프와는 관계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천 원장은 테이프를 돌려 받은 지 몇 달 뒤인 99년 12월 기자 감담회 자리에서 “DJ가 정치자금법 개정(97년 11월 14일) 전에 홍석현 씨가 주는 돈을 한 번 받았다. 정치자금법 개정 이후에도 홍 씨가 삼성그룹의 돈을 싸 들고 왔지만 대통령은 거절했다”고 발언,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천 원장이 도청 내용을 보고 받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내용들이어서 앞서 이 전 감찰실장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게다가 공 씨가 운영하는 인우정보통신의 설립 과정과 관계자들에는 ‘뒷거래설’을 뒷받침하는 대목이 엿보인다.(상자기사 참조) 공 씨가 국정원에서 직권면직된 뒤 窄?후 설립(98년 12월)한 인우정보통신은 1년도 안돼 국정원의 시외전화 사용권의 3분의 2 가량을 따냈다. 시외전화는 국제전화와 달리 입찰을 통하지 않고 고객이 임의로 사업자를 지정할 수 있는 ‘사전선택제’ 여서 국정원의 도움이 있었음을 가늠케 한다.

지난해 8월부터 인우정보통신의 대표이사로 등재된 민병초 씨도 주목할 대목이다. 민 씨의 누나가 DJ의 동생인 김대의(97년 대선 직전 작고) 씨와 결혼했으니 민 씨는 DJ와 사돈관계다.

민 씨는 DJ정부 시절인 2001년 국민자산신탁의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공 씨와는 2년 전 지인을 통해 소개받았다고 한다. 민 씨는 지난달 27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천용택 전 국정원장과는 공식석상에서 2~3차례 본 것이 전부여서 천 전 원장은 나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천 전 원장도 민 씨를 알고 있으며 공운영-천용택-민병초 씨가 상당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항간에는 천 전 원장이 도청 자료를 완전히 폐기하지 않고 일부 보유하면서 재직시는 물론, 국정원장 퇴임 후에도 적절히 활용했고 그 과정에서 공 씨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

검찰은 X파일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공 씨 외에 천 전 원장에 대한 수사도 고려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뒷거래설’이 사실로 밝혀질 지 아니면 X타일 정국의 무성한 소문의 하나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인우정보통신 대표이사, DJ와 사돈

안기부 X파일의 파장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인우정보통신(이하 인우)이 주목받고 있다. 인우는 옛 안기부 미림팀장 공운영 씨가 1998년 3월 국정원 4급 서기관에서 직권면직된 뒤 그 해 12월 서울 서초구에 설립한 소규모 통신관련 회사. 국사모(국가를 사랑하는 사람의 모임)의 송영인 회장이 ‘천용택-공운영’ 뒷거래 의혹을 제기하며 “(국정원이) 공 씨에게 국정원 관련 이권사업인 통신관련 돈벌이를 도와준 것은 상식 이하의 처사”라고 비판한 문제의 회사다.

인우는 온세통신 대리점으로 국제ㆍ시외 전화망의 가입자를 확보한 뒤 전화사용량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것이 주사업. 인우가 설립되기 전 국정원은 기간통신사업자인 한국통신(KT)의 시외전화 회선망을 100% 사용해 왔다. 그런데 인우가 99년 온세통신과 대리점 계약을 맺자마자 국정원의 시외전화 사용권 중 68%가 온세통신쪽으로 넘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온세통신은 97년 10월 국제전화(008) 서비스를 시작으로 유선전화시장에 뛰어든 신생업체로 1년여만에 국정원 시외전화 사용권의 3분의 2 가량을 따낸 셈이다.

국정원은 이 시기에 이미 공 씨가 도청 테이프를 빼돌린 사실을 확인, ‘국정원 직원법’ 위반으로 사법처리까지 가능했다. 그래서 공 씨가 도청 테이프를 빼돌린 사실을 알고 국정원이 외부유출을 막기 위해 이권 제공 등 ‘뒷거래’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게다가 인우의 대표이사로 등재돼 있는 민병초 씨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사돈관계인 것으로 확인돼 ‘뒷거래설’의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인우는 2002년 대선을 고비로 국정원과의 고리가 끊겨 경영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공 씨는 7월 26일 자해하기에 앞서 내놓은 자술서를 통해 “통신가입자 유치 영업으로 3년여 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가 잠시 현상유지했으나 현재 경기악화로 직원 봉급 등을 지급하고 나면 매월 몇 백만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8-04 17:09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