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평화적 이용' 놓고 美와 입씨름 계속, 회담 결렬 땐 후유증 심각할 듯

"계산이 안 맞아" 버티는 평양···4차 6자회담 진통
'핵 평화적 이용' 놓고 美와 입씨름 계속, 회담 결렬 땐 후유증 심각할 듯

열흘을 넘긴 베이징 4차 6자회담에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졌다. 중국측이 제시한 공동문건 절충안을 북한이 막판에 틀고 나왔기 때문이다. 북한의 막판 문제 제기는 이번 회담 내내 조율해 왔던 근본 쟁점을 원점으로 돌리는 것으로 관계국들을 당황시키고 있다.

북한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우리는 패전국도, 죄지은 나라도 아닌데 왜 평화적 핵 이용을 못하게 하고 있느냐”고 주장하며 “유독 한 나라(미국)만이 반대하고 있다”고 밝혀 미국에 대한 불신과 평화적 핵 이용 문제가 회담의 주요 걸림돌임을 확인했다.

김 부상은 또 “마음 놓고 비핵화에 들어가려면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고 관계 정상화를 통해 신뢰감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하지만 아직 이 문제에서도 바라는 결과들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핵 문제와 관계 정상화를 분리 접근하는 회담 초반의 이견을 재론한 것이다.

사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 판단 기준을 2003년 8월에 열린 1차 6자회담에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 기준은 북-미 간의 불가침조약 체결과 북-미 외교관계 수립, 북한과 제3국과의 경제거래 방해 중단 등이다.

결국 평양의 판단은 북-미 간 관계 정상화도 얻지 못하면서 핵 무기 계획뿐 아니라 핵 프로그램(all nuclear program)까지 포기하는 ‘밑지는 거래’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실제로 김 부상은 북한 대표단의 입장은 본국의 훈령이라는 점을 남북 접촉에서 밝히며 북한의 문제 제기가 협상 대상이 아님을 시사했다.

미 "핵 폐기 요구에 양보 없다" 단호

반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프 힐 차관보는 “북한과 미국 간에 여전히 이견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차이는 한 쪽에 있는 북한과 다른 쪽에 있는 다른 참가국들 간의 이견”이라는 5 대 1의 구도임을 강조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힐 차관보는 이어 “원칙들이 작성됐을 때 모든 사람들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도록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해 확실한 모든 핵 폐기 요구에서 물러서지 않은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했다고 가장하고 우리는 그들을 믿는 척 할 수는 없다”며 모양새만 갖추는 타협은 하지 않을 것임을 덧붙였다. 톰 게이시 미 국무부 부대변인도 4일(현지 시각) “이미 5자가 초안을 마련한 ‘원칙 선언문(the Declaration of Principles)’은 정확하고 명료해야 한다”고 힐 차관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나아가 힐 차관보는 “우리는 이미 답을 줬기 때문에 북한과 만날 계획도, 만날 이유도 없다”며 미국의 단호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북한이 회담 막판에 경수로 건설 요구 등 회담 초반 카드를 다시 꺼내는 이유에 대해 회담장 주변 관측통들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직 결단을 내릴 준비가 안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서 만약 이번 회담이 결렬된다면 그 후유증은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 객관적인 상황이다.

우선 회담 결렬은 대화보다 제재를 주장하는 워싱턴의 강경파들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고 향후 북-미 간의 대화를 더욱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자연히 한반도의 긴장 분위기도 급상승해 한국 정부가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할 여지가 줄어 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9월로 계획된 대북 식량지원 등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한국 정부 관계자도 북한이 공동문건을 수용해야 북-미 관계 정상화와 대북 경제지원이 시작될 계기가 마련된다고 북한을 설득중이다.

물론 이런 뻔한 상황 전개를 잘 알면서 북한이 회담을 결렬 시킬 가능성은 낮다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실제로 김계관 부상은 중국측이 제시한 공동문건에 대한 거부의사를 밝히면서도 “회담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은 이러한 북한의 속내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북한으로서 결렬을 피할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4차 6자회담을 휴회 쪽으로 몰고 가?것으로 판단된다. 당장의 ‘밑지는 장사’는 피하고 시간을 벌며 가을을 기약하는 것이다. 그 동안 한국으로부터 비료와 식량 등 이미 예정된 대북 지원을 챙긴 뒤 가을에 새로운 모멘텀을 기약하는 것이다.

한국으로부터 식량 지원만 확보한다면 북한은 고립 속에서도 내년 봄까지는 버틸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베이징 현지 관측통들도 “북한이 4차 회담 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 해결을 장기전의 시각에서 본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전언이 나오는 것도 북한의 시간 끌기 속내와 무관하지 않다.

북, 휴회 전략으로 시간 벌기 노릴 듯

그러나 북한의 휴회 전략은 말처럼 쉽지 않다. 우선 객관적으로 중국 측이 제시한 공동문건 초안은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5개국들이 동의한 상황에서 미국이 양보할 리 없다. 북한과 직접 대화하는 인상까지 줘가며 4차 초안을 마련한 미국이 북한이 빠져나갈 여지를 주지 않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그렇지만 회담 수석대표인 힐 차관보를 위시한 미 국무부의 딜레마도 만만찮다. 자칫 강경 자세만 유지하다 회담이 결렬 상태로 가면 딕 체니 미 부통령 중심의 행정부 내 대북 강경 라인에 주도권을 위협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이 2일 전화 통화로 회담 성과를 위한 공조를 다진 대목도 같은 선상으로 이해된다. 이는 4차 6자회담이 결렬될 경우 평양 뿐만 아니라 미 국무부도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는 것을 설명한다.

힐 차관보도 “예전에 보스니아 평화 협정을 다룬 데이턴 협상 때는 21일이 걸렸다”며 “우리가 딱 반 정도 했으니까 너무 힘들어 할 필요가 없다”고 결렬 방지를 위한 자락을 깔았다.

이와 관련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일 기자 간담회에서 “상호 이해가 심화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공동문건의 채택을 6자회담 성공의 척도로 볼 수는 없으며, 한반도 비핵화가 근본 목표”라고 밝혔다. 이는 이번 4차 회담을 결렬로 끝내지 않기 위한 나름의 여지를 확보하기 위한 발언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이번 회담에서 극적 타결이나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과 함께 회담 장기화 가능성이 우세하게 점쳐지고 있다.

여하튼 이번 주 중에 북한이 절묘한 트집잡기 전술로 결단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인지, 미국의 5 대 1 힘의 전략으로 북한의 마지못한 결단을 끌어낼 것인지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8-11 15:11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