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정책에 큰 변화, "8·15 행사 계기로 급물살 탈 것" 예상

"경제난 돌파엔진은 南"인식, 경협 탄력
대남정책에 큰 변화, "8·15 행사 계기로 급물살 탈 것" 예상

남북관계가 ‘북핵’이라는 딜레마를 뒤로 한 채 ‘경제협력(경협)’을 매개로 급진전될 전망이다.

북한이 최근 남한의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1990년 제정)에 해당하는 ‘북남경제협력법’을 제정한 게 상징적인 조치다.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7월 29일자 보도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북남경제협력법을 채택했다”며 “이 법은 북남경제협력관계를 보다 새로운 높이로 발전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법적 담보를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모두 27조로 구성된 ‘북남경제협력법’은 남북 경제협력의 원칙으로 △전 민족적 이익 △균형적 민족경제발전 △상호 존중 및 신뢰 △유무상통(有無相通·서로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융통한다) 등을 명시했다

또 남북 경협에 대한 중앙 민족경제협력 지도기관의 통일적 지도를 명확히 하고 있으며, 이 기관의 임무, 사업의 기초와 방법, 재산의 이용 및 보호, 노력(인력) 채용, 사업조건 보장 등을 규정했다.

'장성택의 힘'작용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북한이 북남경제협력법을 제정한 것은 앞으로 대남 정책이 크게 변화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그 이면에 ‘장성택의 힘’이 작용한 것과 함께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성택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 부부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로 북한권부 내 2인자로 평가받았으나 그동안 ‘숙청설’‘가택연금설’ 등이 끊이질 않아 권부에서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베이징 소식통은 “장 부부장은 숙청된 게 아니라 지난해 10월 경부터 평양 인근에 칩거하면서 특수팀과 함께 북한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에 몰두해왔다”면서 “북남경제협력법은 칩거 끝에 북한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장성택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이 직면한 ‘위기’는 미국으로부터의 체제 위협과 대만 핵무장의 빌미가 될 수 있는 북핵을 포기 시키려는 중국의 경제 압박이라는 이중고(二重苦)라는 것.

김정일 위원장이 평양에서 열린 6ㆍ15 5주년 행사기간 중 미국의 대북 강경카드를 의식해 예정에도 없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면담한 것이나 2월10일 핵보유 선언을 전후해 중국으로부터의 식량ㆍ에너지 공급이 절대 감소하자 남한과 차관급 회담을 열어 식량을 얻어낸 것은 북한의 이중고(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장성택팀은 그러한 위기를 돌파하는데 남한이 유일한 대안이자 파트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최악의 경제ㆍ에너지 상황을 모면하고 북핵 문제는 미국과의 양자회담을 통해 해결하려는 복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고위층 인사와도 교류가 깊은 한 북한전문가는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과 군부의 ‘황금률적인 긴장과 협조’로 유지되는 체제로 그 황금률의 조타수 역할을 장성택 부부장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쪽은 ‘매제’라는 관계로, 군쪽은 친형인 장성우 북한인민군 3군단장 차수를 매개로 조율하고 있다는 것.

김위원장·군부 '합의' 해석

그는 “북핵 문제에 있어서는 김 위원장과 일부 군부내 친중파(親中派)와 군부의 다수 강경파 간의 견해차로 엇박자가 나올 수 있지만 결국 강경파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북남경제협력법이 나온 것은 김 위원장과 군부가 남한을 통해 일단 위기를 벗어나자는데 합의를 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앞으로 남북간에는 광범위한 경협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북한 전문가는 “서울에서 개최되는 8ㆍ15 민족대축전 행사를 계기로 남북경협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8ㆍ15 경축사나 북한 대표단의 성명에서 남북경협이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북경협의 범위와 주체와 관련, 북한에서는 내각의 ‘고려민족경제위원회’가 주축이 될 것이 예상된다. (3월22일 발행 주간한국 2064호 참조)

정부당국자는 북한의 민주신문에서 거론된 남북경협에 대한 중앙민족경제협력지도기관에 대해 “내각 소속 민족경제협력위원회나 조국适럭姸┎苾쩔?浪?민경련)를 의미하는 것같다”고 했지만 북한 현실과 거리가 있는 분석이다.

북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은 경제 활성화 및 남북경협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7월 박봉주 내각 총리 아래 ‘고려민족경제위원회’를 출범시켰다고 한다.

또한 고려민족경제위원회 산하의 ‘임가공복무총국’이 실질적인 대남경협을 맡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동안 대남 경협을 총괄하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를 대신해 지난해부터 내각이 나서면서 아태 산하의 민경련이 맡아왔던 남북 경협의 주도권도 내각의 고려민족경제위원회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남북 장관급회담과 6ㆍ15 5주년 행사 때 정동영 장관의 파트너로 나선 북측의 권호웅 참사가 아태에서 내각으로 옮겨와 남북대화의 주역으로 나선 것이나 2002년 4월 장성택 부부장과 함께 북한경제시찰단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박봉주 총리가 내각 수반이 된 것은 북한 내부(경협 포함) 변화의 전주곡인 셈이다.

북한 전문가에 따르면 장성택 부부장은 내각에 힘을 실어주면서 올 초부터 해외 유학파를 대거 귀국시켜 북한의 체제 및 경제 변화에 따른 위기관리를 강화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8ㆍ15 민족행사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경협을 비롯해 획기적으로 발전할 경우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이자 실세인 연형묵 국방위 부위원장이 전면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남북경협은 지난해 7월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 불허 등을 이유로 중단된 이후 지난 5월 차관급 개성회담을 계기로 풀리기 시작해 6ㆍ15 5주년 행사와 김정일 위원장의 대범한 남북교류 제의로 가속도가 붙었다.

그 결과 지난 7월 제10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는 남측 자본과 북측 자원을 결합하는 새로운 방식의 경제협력사업을 추진키로 했는가 하면 2003년 합의만 해놓고 차일피일 미뤄졌던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개설도 오는 9월 개성에 설치하기로 합의를 봤다.

북한이 경제ㆍ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남한과의 관계 증진에 적극성을 띠고 노무현 정부 역시 남북관계 발전에 우선 순위를 두면서 남북경협은 광범위하고 빠른 속도로 전개될 것이 예상된다.

국가보안법 등 법리 문제가 걸림돌

한편 일각에서는 북측의 북남경제협력법 27조 중에 국내 헌법, 또는 국가보안법과 저촉되는 규정이 있어 법리 문제가 남북경협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통일부 정보분석국 관계자는 “아직 북남경제협력법 전문을 입수하지 못해 그러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했지만 한 북한 소식통은 “정부에서 법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북한의 변화를 상징하는 북남경제협력법이 과연 온전하게 진행될 지 주목되는 가운데 8ㆍ15 민족대축전은 이미 개막됐다. 광복 60주년이 되는 올해 8ㆍ15 행사를 계기로 남북한이 경협에서 진정 통일된 행보로 큰 발전을 이룰 지 지켜 볼 일이다.

현대 '마지막 가신' 김윤규 부회장 물러나나

현대그룹의 마지막 가신인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이 개인비리 문제로 위기에 처했다. 현대그룹의 계열사 감사에서 금강산 관광지의 판매업소 운영권을 친지에게 준 것 등 비리가 적발된 것.

현대그룹은 8일 “김 부회장이 남북 경협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드러났다”며 “추가 감사를 한 뒤 적절한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발표, 김 부회장 사퇴설마저 불거지고 있다.

김 부회장이 1990년대 시작된 현대의 대북사업 초기부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김 부회장의 퇴진은 그 동안 현대가 추진해 온 각종 대북사업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김 부회장의 거취 및 현대의 대북사업과 관련, 주변에서는 현정은 회장과의 파워게임설와 함께 대북사업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현 회장은 지난 3월 현대아산 이사회에서 윤만주 상임고문을 대표이사사장으로 선임해 김 부회장의 독주를 견제했고, 지난 7월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한 이후 대북사업에 큰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김 부회장을 부담스럽게 여겼다는 것이다.

반면 김 부회장의 개인 비리 적발과 퇴출 가능성이 북한의 입김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지난해 초까지 대남 경협을 주도하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에 불만을 갖고 있던 군부 강경파가 아태를 무력화시키면서 아태의 파트너였던 현대 관계자들의 교체를 요구했고 이것이 현실화됐다는 것이다.

실제 대남 사업을 총괄하던 아태는 김용순 위원장이 2003년 10월 원인이 불투명한 사고로 사망하고 송호경 통일전선부 부부장도 지난해 9월 암으로 병사한데다 베이징에 나가있던 팍?멤버들이 국내로 소환되면서 급격히 약화됐다. 대신 권호웅 참사, 박봉주 총리, 연형묵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이어지는 내각이 주도권을 쥐게 됐다.

항간에는 지난 7월 김정일 위원장과 현정은 회장과의 면담에서 김윤규 부회장을 비롯한 아태 파트너였던 현대 관계자들의 일선 후퇴를 주문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래서 김 위원장이 “금강산은 정몽헌 회장에게 줬는데, 백두산은 현정은 회장에게 줄 테니 잘 해보라”며 현 회장을 현대그룹 대북 사업의 새 수장(首長)으로 공식 인정한 데는 복선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윤규 부회장의 개인 비리 적발이 현대의 자체 감사에 따른 것이 아니라 국정원이 사전에 정보를 흘려주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북한 입김설에 무게를 두게 한다. 게다가 최근 북한이 현대아산 개성사무소 등을 통해 김 부회장 관련 내용을 문의하는 등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자 김 부회장의 전면 사퇴 대신 부회장직만 내놓고 대북사업에서도 한발 물러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1989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최초로 방북해 금강산관광 의정서를 맺을 당시 수행하면서 대북사업에 몸담았던 김 부회장은 비리 파문으로 북한과의 인연도 길지 않을 전망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8-16 17:27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