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테드 터너 등 남북 설득…아이들 뛰놀 평화공원 모색

DMZ,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생태공원으로…
CNN 테드 터너 등 남북 설득…아이들 뛰놀 평화공원 모색

이데올로기의 총부리가 여전히 서로를 겨누고 있는 삼엄한 비무장지대(DMZ). 분단과 대립의 철조망 속에 갇힌 땅, 비무장지대가 요즘 생명과 평화의 현장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새로운 모색들로 들썩이고 있다.

무엇보다 53년 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역설적으로 보기 드문 생태계의 보고가 된 데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반세기가 넘은 이념 대립의 깊은 상처 위에 피어난 생명의 풍경에서 사람들은 평화의 메시지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최근 남북 간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서 세계적 명망가들이 ‘비무장지대를 평화의 지대로’라는 기치 아래 남북한을 오가며 적극 지원에 나섰다.

특히 자선사업가ㆍ평화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뉴스전문체널 CNN 창립자인 테드 터너(Ted Turnerㆍ67) 터너재단 이사장은 ‘DMZ 평화공원 만들기 특사’를 자처하고 있다.

15일 자가용 비행기로 2박3일 간의 북한 방문을 마치고 방한한 터너 이사장은 “전쟁상태를 종식시키는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비무장지대를 세계적인 생태평화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남북한 지도층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는 사업가 출신답게 생태평화공원 조성은 남북 모두에게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큰 이익이 될 것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터너 이사장은 16일 경기 고양시 한국국제전시장에서 열린 ‘2005 DMZ 국제포럼’에서 “한반도의 DMZ는 전쟁과 남북대치의 상징이 됐지만, 평화공원 조성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가 정착된다면 역설적으로 DMZ가 세계평화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함께 “DMZ는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진짜 비무장이어야 한다”며 “지뢰제거에 10억 달러정도가 들지만 1~2년 내에 제거가 가능하고 이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사기를 올릴 수 있는 사건”이라며 DMZ 지뢰 제거에 높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건강 탓에 불참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도 “전쟁이 끊이지 않던 모잠비크에 평화공원이 조성되면서 빈곤도 사라지고 평화가 정착됐다”며 DMZ의 평화를 향한 변신을 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

터너 이사장의 이번 ‘한반도 투어’에는 미 의회 실력자 커트 웰던 하원 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도널드 그레그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 등이 함께 했다. 또한 이번에 열린 ‘DMZ 포럼(www.dmzforum.org)’은 1997년 DMZ 보전을 위해 재미동포 학자들이 설립한 것으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스티븐 보스워스 전 주한 미국대사가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1953년 한국전쟁 정전과 함께 생긴 비무장지대는 정전협정 제1조 1항의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설치에 관한 조항에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1개의 군사분계선을 획정하고 이 선으로부터 남북 방향으로 2㎞씩 떨어진 곳까지가 비무장지대의 기본 정의이다. 따라서 공식적 비무장지대는 남북 4㎞, 동서 약 248㎞ 크기의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르는 비극의 벨트인 셈이다.

그러나 북한은 53년 정전 직후 비무장지대를 침범해 북방한계선 훨씬 남쪽에 제2의 철책선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한국 역시 60년대 초부터 비무장지대 내에 진입해 철책선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4㎞로 정해진 정전협정 상 이격거리는 유명무실해져 지금은 가장 좁은 지역의 경우 700m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양측은 비무장지대 내 전투진지를 구축하고 각종 포대를 집중시켜 놓고 있다. 전 세계적 냉전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DMZ는 ‘현실적인 비무장의 지대’(Actually Demilitarized Zone: ADMZ)가 아니라 ‘중무장의 지대‘(Heavily Demilitarized Zone)로 변해 여전히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재미동포 학자들이 모여 시작한 ‘DMZ 포럼’ 역시 비무장지대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첫번째 관심사다. 이번 DMZ 국제포럼에서는 평화공원 조성 이외에도 멸종위기동물의 보호와 국제협력을 위한 DMZ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다.

비무장지대 철책선에서 경계근무를 하고 있는 5사단 열쇠부대. 임재범 기자

국제두루미재단 조지 아치볼트 이사장은 “DMZ를 포함한 한강 하구와 철원 평야지역은 2004년 겨울 두루미와 재두루미 수가 1,750마리까지 늘어나는 등 두루미 월동지로 급부상하고 있다”며 “영구보존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전 세계 재두루미의 절반 이상, 두루미의 25%가 월동지를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또 러시아 국립과학원 극동지리학연구소 드리트리 피크노프 박사는 “호랑이와 표범의 한반도 복원을 위해서는 서식시 확보와 보호지역 지정이 필요한데 DMZ가 최적지”라고 주장했다.

생태학적 측면에서 50년 넘게 인적미답의 지역으로 고스란히 간직 된 비무장 지대는 오래 전부터 세계의 관심 대상이 됐다. 유엔환경계획(UNEP), 유엔개발계획(UNDP), 국제자연보전기구(IUCN) 같은 국제기구 들도 비무장지대를 국제 자연 생태보전지구로 지정할 것을 제안하는 등 비상한 관심을 보여왔다. 일각에서는 남북한 화해 분위기 조성의 일환으로 비무장지대 생태계 공동조사를 적극 추진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고 있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의 또 하나의 제안은 비무장지대 내에서의 공동 농업 경영이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푯말이 서 있는 철원군 월정리 역에서 남방한계선 북측에 위치한 북뜰면까지는 600만 평이 넘는 드넓은 농경지로 봉래호를 용수원으로 하는 옥답중 옥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철조망에 가로막혀 잠자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엄청난 예산을 쏟아 간척사업까지 하며 농토를 확보하려는 남북한 모두에게 큰 손실이라는 지적이다. 철원군 주민들은 “600여만 평의 농경지에 농사를 지을 경우 연간 13만5,000여 가마의 쌀을 수확할 수 있다”며 남북 공동사업으로 우선 추진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한 상태다. 군사적 대결의 장으로 남아있는 비무장지대의 냉전적 장막을 걷고 남북이 서로 도움되는 경제의 장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밖에도 금강산-설악산을 잇는 관광특구 개발, 비무장지대 내 남북 합작공장 설립 등으로 비무장지대를 통일을 위한 현실적 전초기지로 삼자는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다.

비무장지대는 어느 때보다 올해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9월에는 강원 인제 가전리 일대에 비무장지대 ‘평화생명동산’ 조성을 위한 공사가 시작된다. 앞서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은 7월 비무장지대가 냉전의 유산이란 점을 감안해 야생동물의 혹독한 겨울나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DMZ의 야생세계’를 방영하기도 했다.

생명ㆍ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대표 박병상ㆍ48)’은 7월 30일 비무장지대를 올해의 ‘풀꽃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냉전의 상흔이 고스란히 담긴 비무장지대가 생명과 평화, 환경의 상징으로서 다시 태어나길 바라며 세계의 값진 유산으로 보호하자는 뜻에서다. 최근 급 물살을 타고 있는 남북 화해 무드가 반세기 넘긴 방치된 비무장지대를 어떻게 어루만져줄지 주목된다.


조신 차장
사진=임재범 기자


입력시간 : 2005-08-24 16:25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