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대세론, 악재의 늪서 허우적

박근혜 '위기의 계절?'
흩어진 대세론, 악재의 늪서 허우적

“당 내는 물론이고 당 밖에서도 이명박 서울시장 쪽에 사람이 몰리고 있다.” 최근 차기 대선 주자들의 동향을 묻는 질문에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거침없이 이렇게 답했다.

연정론, 불법도청 사건 등으로 당과 박근혜 대표가 눈코뜰새 없는 시간을 보내는 사이, 정치 현안과 거리를 둔 이명박 시장의 파죽지세는 실로 위협적이다.

언제부턴가 당 내에서 “박근혜 대세론”이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지난 4ㆍ30 재보선 승리의 주역이자 대중적 호감도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박 대표의 장기화된 정체현상.

그간 노무현 대통령의 좌충우돌에 반사이익을 봤으면 봤지, 이렇다 할 ‘악수’를 둔 것도 없는 박 대표의 침체를 당 관계자들도 쉽게 설명해내지 못했다. “안정감과 신중함은 좋지만 어수선한 정국에서 야당 지도자다운 돌파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일반적인 인상 평가가 대종이다.

하지만 이 시장과 박 대표의 명암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극명하게 확인된다. 최근 실시된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와 관련한 여론조사에서 박 대표는 15% 내외의 지지율로 고건 전 총리에 이어 2위를 달렸다. 그러나 이명박 시장과의 격차는 거의 오차범위 내로 좁혀졌다. 심상치 않은 것은 지지도 추이다.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여유 있던 양측의 격차는 이 시장의 ‘급피치’로 ‘역전’을 코앞에 둔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이미 일부 여론조사에선 역전된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박 대표는 19.2%(지난해 12월)→15.5%(5월)→12.9%(7월)로 지속적인 하락세. 같은 기간동안 이 시장은 9.9%→10.9%→15.1%로 상승했다.

이 같은 지지율 추이에 대해 이 시장이나 박 대표측은 모두 짐짓 초연한 표정이다. 이 시장측 관계자는 “현시점에서의 여론조사 결과가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면서 “숫자보다 중요한 건 당내의 권력지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소장파 의원들을 비롯해 그 동안 독자노선을 걸어온 일부가 실제로 이 시장측과 접촉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시장은 10월 청계천 개통과 함께 역점 사업이 대부분 마무리되는 만큼 향후 문화 사업쪽에 치중하며 대권 로드맵을 구상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측도 여론조사 추이에 대해 “사실 위축된 분위기가 있긴 하다”면서도 “그다지 (지지율이) 떨어진 것도 아니지 않느냐. 그 정도 등락은 국면에 따라 어느 정치인이나 겪게 되는 일”이라고 일단 태연한 표정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여론조사 지표와는 다른 ‘파워’를 보였다”며 그 사례로 4ㆍ30 재보선 당시 보여준 폭발력을 들었다.

양측의 분석대로 현 국면에서 여론조사가 갖는 정치적인 의미는 크지 않다. 현재 분위기로는 또 한번의 대승이 예상되는 10월 재보선을 계기로 박 대표가 인기몰이에 나설 수도 있고, 조기 전당대회 여부와 관계없이 내년 지방선거에선 어떤 식으로 건 박 대표의 ‘역할’이 요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대목은 박 대표가 향후 극복해야 할 구조적 ‘악재’가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굵직한 현안에 가려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당 혁신위안과 관련해 반(反)박 그룹의 재결집 양상이 일차적으로 박 대표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대선 1년6개월 전에 당권ㆍ대권 분리’를 핵심으로 하는 혁신위안대로라면 박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당권을 내놔야 한다.

반박 그룹의 ‘지轢굅?전 조기전당대회’ 주장이 여기서 비롯된다. 소장파 의원들이 주축인 새정치수요모임, 전통적 반박 그룹이 다수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는 최근 연석회의를 갖고 혁신위안 관철을 위해 공동보조를 취했다.

이런 반박 진영의 압박은 8월말 연찬회에서 박 대표의 당 운영방식, 현안 대응력 등과 맞물린 비판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박 대표의 대권 전략의 큰 밑그림이었던 DJ, 호남과의 화합도 불법 도청 정국으로 인해 일정한 제동이 걸렸다. 박 대표는 지금까지 DJ 정부시절의 불법도청과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을 꺼려오고 있지만 당 지도부는 ‘DJ 때리기’를 정국 돌파의 한 축으로 삼고 있다. 특히 물밑에선 이 시장측도 DJ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다각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는 후문도 들린다.

여권이 9월 정기국회에서 벼르고 있는 과거사 문제 또한 박 대표를 압박하는 요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8ㆍ15 경축사를 통해 형성된 신(新)과거사 정국은 아무래도 군사독재 시절 국가권력의 인권유린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과거사법 개정 수위에 따라선 인혁당 사건 등 박정희 정권 시절의 대표적 인권 유린 사건이 도마에 오를 수도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은 박 대표가 최근까지 이사장으로 있던 정수장학회를 “국가권력의 강탈로 만들어진 장물”이라고까지 표현했고, 여당은 “정수장학회 문제는 박 대표가 유신 공주의 단단한 껍질을 깨고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는 대표로 거듭날 지를 판가름하는 시험대”라고 포커스를 맞췄다.

이는 과거사 정국에서 정수장학회 등 민사적 배상 문제가 얼마든지 현안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사 정국의 효과는 역시 박 대표의 이미지와 결부된다. 여권은 ‘개발독재’로 통칭되는 유신정권의 상속자로 이 시장과 박 대표를 싸잡아 공격하고 있지만, 경제적 발전과 연관된 ‘개발’ 이미지는 이명박 시장이 승계하고, ‘독재’의 이미지만 박 대표에게 유전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입력시간 : 2005-08-30 19:33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