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쏟아내는 폭탄성 발언 의도 몰라 정가 어리둥절'지지율 하락 반전 대응', '지방선거·대선 겨냥'시각도

노대통령 진짜 속마음 뭔가?
연일 쏟아내는 폭탄성 발언 의도 몰라 정가 어리둥절
'지지율 하락 반전 대응', '지방선거·대선 겨냥'시각도


“미로를 헤매다 나온 것 같다. 아직도 멍하다.”

지난달 30일,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의원들 간의 청와대 만찬을 끝내고 나온 서울의 한 초선 의원은 “노심(盧心)을 정확히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노 대통령이 2선 후퇴, 임기 단축을 얘기할 때는 충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운동권 출신의 수도권 재선 의원은 “청와대 만찬은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였다. 전날 통영에서 가진 의원 연찬회에서 노 대통령의 연정론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청와대 방문은 사실상 항의적 성격이 배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3시간을 넘기며 진행된 만찬회에서 1시간 이상을 연정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나아가 “지역구도를 타파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문화 시대를 열어 갈 수 있다면 2선 후퇴나 임기 단축을 통해서 노무현 시대를 마감할 수 있다”는 폭탄성 발언으로 만찬장의 우리당 의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노 대통령은 6월24일 처음 연정론을 꺼낸 이후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조차 반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그리고 수위를 높여가며 연정 카드의 실체를 조금씩 드러냈다.

예상을 벗어난 노 대통령의 파격적인 행보에 대해 일각에서 “노 대통령 다운 돌출성 행동”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무언가 승부수를 던진 게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실제 노 대통령이 6월 말 연정론을 거론한 후 보인 행보에는 일관성과 함께 의도된 흔적이 엿보인다. 또한 집권 후반기 지지율 하락에 따른 위기상황과 내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을 고려하면 노 대통령의 연정론이 지향하는 바를 가늠케 한다.

연정론의 배경은 위기론

노 대통령이 연정론을 제기한 배경은 ‘위기론’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단과 두 시간 넘게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위기라는 단어를 수십 차례 사용했다.

그리고 위기 극복을 위해 ‘경제는 이해찬 총리, 대북정책을 포함한 외교안보는 정동영 통일 장관에게 일임하고, 대통령 자신은 정치를 챙긴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정치 위기의 원인을 여소야대 구조에 있다고 보고 현재의 선거제도에서는 그러한 구조가 바뀌지 않을 뿐더러 지역 분할주의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정론을 통하든 어떤 방식을 동원하든 선거제도를 뒤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 대통령은 7월6일 ‘대국민 서신’에서 지역구도 해소를 전제로 “대통령 권한의 절반이상을 내놓을 용의가 있다”고 한데 이어 다음날 중앙 언론사 편집ㆍ보도국장 간담회에서는 “내각제 수준으로 대통령 권한을 이양할 용의가 있다”며 몇 걸음 더 나아갔다.

7월28일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는 대연정의 대상이 한나라당임을 밝히고 “지역구도를 제도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선거제도를 고친다면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에 대통령의 권력을 이양할 수 있다”며 파격적인 제의를 했다.

급기야 지난달 30일 “임기를 단축하거나 2선 후퇴를 할 수도 있다”며 구체적 실천방안까지 제시한데 이어 다음날 중앙언론사 논설ㆍ해설 책임자 오찬 간담회에서 정치개혁과 관련해 개헌 가능성까지 거론해 정치권에 다양한 해석을 낳게 했다.

노 대통령의 ‘진정성’에 무게를 두는 쪽은 “지역구도를 해소하고 새로운 정치를 열기 위한 순교자의 자세”라고 평가한다. 노 대통령의 386 측근으로 2002년 대선 때 노 대통령이 만든 자치경영연구원(전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서 활동했던 백원우 의원(경기 시흥갑)은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연구소를 만들어 지역구도 해소에 앞장섰고 이를 위해 몇 차례 선거 패배를 감수하면서 몸소 행동으로 보여줬다”면서 “야당이 지역 기득권에 집착해 맹목적으로 반대하고 여권에서조차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반면 노 대통령의 승부사 기질을 우려하는 쪽은 무언가 ‘노림수’가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한나라당의 수도권 3선 의원은 “최근의 상황은 지난 2003년 ‘재신임 카드’ 제안 때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이후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사태로 이어졌지염嘯珦岵막?4ㆍ15 총선 승리로 이어지며 노 대통령과 여당에 힘을 실을 수 있었던 것처럼 연정 논의 제안 역시 내년 선거를 앞두고 장기적 관점에서 또 하나의 승부수로 던졌다는 것이다.

정가에서는 노 대통령의 연정론이 임기 단축과 개헌론에까지 이르자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편 이상의 함의가 내재돼 있다는 게 중론이다.

노 대통령이 30일 만찬에서 “만일 대연정 문제에 반감을 가진 의원이, 예를 들어 호남의 어떤 의원이 당을 떠나겠다고 할 경우 내가 먼저 당을 떠나겠다”고 말한 것과 관련, 노 대통령의 다음 수순이 탈당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럴 경우 모든 정당ㆍ정파들이 인정할만한 ‘중립 총리’를 내세우고 ‘거국 내각’을 구성하는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다. 한나라당에서 사실상 집권을 의미하는 거국내각에 참여하면 대연정으로 발전하게 된다.

상당수 의원들은 노 대통령이 31일 정치개혁과 관련, “다음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가깝게 붙어 있기 때문에 그때 가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같아지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말한 점에 주목한다. 노 대통령이 대연정을 통해 내각제 개헌을 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내각제 국가인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와 독일의 슈뢰더 총리에 대해 “부럽다”고 말하고 주영대사로부터 받은 정치제도 관련 보고서를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한다.

내각제 등 개헌론 본격 거론

여야에 내각제 지지자가 많은 점도 개헌 가능성을 높여 준다. 우리당 문병호 법률담당 원내부대표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려면 내각제가 제도적으로 맞다"며 "개인적으로는 대통령제를 선호하지만, 여야간 대립구도가 해소된다면 내각제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봉주 의원은 “일본식 내각제냐, 영국식 내각제냐는 차이가 있지만 내각제 개헌론의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도 한나라당과의 연정 구상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나라당과도 이러한 생각을 나눈 바 있다”는 의미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한나라당 내, 특히 영남지역 의원들 사이에서 내각제 등을 통한 정치개혁과 관련해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돼 온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반면 거국내각이나 개헌론이 내용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노 대통령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정계개편을 통한 재집권이라는 추론이 제기되고 있다.

거국내각의 경우 한나라당이 사실상 집권하는 형태를 띠어 우리당, 특히 호남 세력과 개혁그룹의 반발이 커 탈당이나 민주당과의 연합으로 이어지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개헌 역시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다 의원들 간에 내각제와 4년 중임제 대통령제에 대한 입장차가 커 현실화되기까지는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임기 단축의 경우도 노 대통령이 반대급부 없이 그대로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따라서 정가에서는 노 대통령이 올해 안에 대연정과 선거구제 개편의 기반을 마련한 뒤 내년 지방선거 이후 정치구조를 바꾸고 내년 하반기에 개헌 논의를 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노 대통령의 한 측근 인사는 “노 대통령의 관심사는 선거구제 개편이다. 임기 단축이나 개헌은 정치판이 바꿔진 다음의 문제다”고 말해 그 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결국 노 대통령이 제기한 연정론은 선거구제 개편으로 그치든, 개헌까지 이어지든 현재의 정치 구도(여소야대)를 깨뜨리는데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노 대통령이 모든 것을 던지면서까지 건지려고 하는 중대선거구제는 여당에 분명 유리한 선거 구도다.

연정론에 덧붙여진 달콤한 유혹 뒤에 독배가 숨겨져 있다는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누구보다 개혁적인 노 대통령이 수구세력의 집권을 용인하겠느냐”는 한 측근의 말은 ‘노무현 구상’의 최종 목표를 가늠케 한다. 개혁세력이 재집권하는 발판을 마련하는데 연정론 카드가 활용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

9월 초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회담을 갖게 된다. 그동안 한나라당이 대연정에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회담을 통해 대연정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지 주목된다.동시에 노 대통령의 다음 포석에 정가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盧心의 핵 ‘선거구제’

노무현 대통령이 6월 말 연정론을 꺼낸 이후 최근 임기 단축, 개헌까지 언급하며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지역구도 타파’다. 그리고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선거구제 개편을 꼽았다.

우리의 선거구제는 1948년 제헌국회 때 소선거구제로 출발, 73년 9대 총선에서 중선거구제로 恍?杉鳴?88년 13대 총선에서 소선구제로 회귀한 뒤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 노 대통령이 영ㆍ호남의 정치 분할 구도를 없앤다는 이유로 중대선거구제를 고집스럽게 거론해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대선거구제는 소선거구 몇 개를 묶어 2명 이상의 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2∼5명을 뽑는 형태가 많다. 그러나 학계에선 중대선거구제가 지역주의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게다가 영남의 의석(68석) 수가 호남(31석)의 두 배가 넘는 상황에서 서로 안방을 내주는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하면 한나라당이 손해일 수밖에 없다. 중대선거구제 개편 논의가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다.

중대선거구제의 대안으로 독일식 정당명부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거론된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권자가 지지하는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 및 정당에 각각 한 표씩 행사하는 1인 2표제 선거제도다. 유권자가 지역구 의원에 표를 찍고, 이 표를 전국적으로 정당별 득표비율을 계산해 전국구 당선자를 배정하는 우리나라의 현행 1인 1표 비례대표제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특정 정당이 지역정서를 토대로 특정 지역을 싹쓸이하지 못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 배분 방식에 따라, △권역별로 해당 권역에서의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방식 △전국의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권역별 비례대표 명부에서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방식 등 두 가지가 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와 달리 전체 비례대표 의석수가 미리 결정된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선호하고 민주노동당은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주장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소선거구제 외에는 모두 불리하다는 입장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관련 주요 발언

6월24일, 당ㆍ정ㆍ청 11인 회의

“정부와 여당이 비상한 사태를 맞고 있다. 야당과 연정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7월6일, 대국민 서신

“국회가 지역구도 문제 해결에 동의한다면 대통령이 가진 권한의 절반 이상을 내놓을 용의가 있다.”

7월7일, 중앙 언론사 편집ㆍ보도국장 간담회

“내각제 수준으로 대통령 권한을 이양할 용의가 있다. 진지하게 지역구도 해소 문제로 대통령과 협상한다면 그 이상의 것도 내놓을 용의가 있다.”

7월28일,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을 구성하고 그 연정에 대통령의 권력을 이양하고 지역구도를 제도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선거제도를 고치자는 것이다.”

8월25일, KBS 주최 ‘국민과의 대화’

“‘연정 그 정도 갖고는 얽혀서 골치 아프니까 권력을 통째로 내놔라’하면 검토해보겠다.”

8월30일, 열린우리당 의원 초청 만찬

“새로운 정치문화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면 2선 후퇴나 임기 단축을 통해서라도 노무현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의지와 결단도 생각해봤다.”

8월31일, 중앙언론사 논설ㆍ해설 책임자 오찬 간담회

“여소야대 정부의 교착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같아지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9-07 19:22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