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청 힘겨루기 양상…봉합 불구 파장 예상

병술년 새해 벽두부터 ‘유시민 폭풍’이 거세다.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 입각을 둘러싼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의 힘겨루기에서 비롯된 파장이 심상치 않다.

1라운드는 여당의 요구를 묵살하고 밀어붙인 노 대통령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노 대통령은 1월2일 개각에서 유시민 카드를 꺼냈다가 당의 반발이 일자 물러서는듯하다 적진을 공격하듯 일거에 개각을 관철시켰다. 그것도 여당 지도부와의 청와대 회동을 목전에 두고 감행했다.

당의 반격도 만만치 않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5일 노 대통령과의 회동을 ‘연기’라는 형식을 빌어 전격 거부했다.

당(黨)-청(靑)이 사실상 내전에 들어가면서 유시민 폭풍은 2회전에 돌입했다.

하지만 누가 승자가 될 지, 전선이 어떻게 전개될 지, 내전의 끝이 무엇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2막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가늠하는데 “왜 유시민인가?”하는 물음이 실마리를 제공한다.

노 대통령이 유 의원을 발탁하고 밀어붙인 배경은 전선의 지형, 나아가 승자의 윤곽과 맞닿아 있다.

16대 대선이 종반에 접어든 2002년 8월 중순 저녁 무렵, 유시민 의원은 서울대 1년 선배인 우리당 유기홍 의원과 함께 서울 종로구 명륜동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 집을 찾았다.

당시는 8ㆍ8 재보선 참패와 노 후보의 지지율 추락으로 당내서 후보교체론이 힘을 얻어가던 상황이었다.

유 의원은 ‘개혁과 참여’를 모토로 한 개혁당을 창당해 끝까지 노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밝혔고 노 대통령은 “소중한 정치실험”이라며 고마워했다.

그 후 유 의원은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국민후보 노무현 후보 구하기’에 나섰고 4개월 뒤 노 후보는 개혁풍을 타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날 노무현 당선자는 민주당에 앞서 개혁당을 찾아 유 의원에게 고마움을 표시, 노 당선자의 유 의원에 대한 생각이 어떠한 지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유 의원은 참여정부 출범후에도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임하면서 탄핵, 당내 노선투쟁, 대연정 등 고비때마다 적극적으로 노 대통령을 방어ㆍ옹호하였다. 유 의원은 지금도 노 대통령과 코드가 가장 잘맞는 복심(腹心)으로 통한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무리수를 두어가면서까지 유 의원을 입각시킨 것은 단순히 예뻐해서만은 아닌, 다양한 함의가 내포돼 있다는 게 중론이다.

우선 노 대통령은 레임덕을 차단하고 원만한 국정운영을 위해, 그리고 유 의원이 ‘식물 정치인’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입각을 철회할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노 대통령이 김완기 인사수석의 입을 빌어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에 도전하는 것은 용납못한다”고 한 것은 그런 대목이다.

또한 유 의원이 친노세력의 상징이라고 할 때 ‘유시민 카드' 뒤에는 흩어진 친노세력을 결집하려는 노 대통령의 숨은 의지가 내재돼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유시민 파동’ 과정에서 이광철ㆍ유기홍 의원 등이 속한 ‘참여정치연구회’와 ‘의정연구센터’ 소속 이화영ㆍ백원우 의원 등 친노그룹은 한 목소리로 유 의원 입각을 지지하면서 DYㆍGT세력과 다른 행보를 취했다.

유 의원 입각이 정동영(DY)ㆍ김근태(GT) 라는 여권의 유력한 대권주자의 당 복귀 및 2월18일 전당대회와 맞물려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DYㆍGT가 장관직을 사퇴하고 당에 복귀하면서 여당 구도는 DYㆍGT를 축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으며 이는 2ㆍ18 전대 이후에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당내 친노그룹은 자칫 공중분해되거나 설 자리가 빈약해지고 결국 대선국면에서 노 대톨령이 관여할 공간은 비좁을 수밖에 없다.

반노·비노세력에 경고의 메시지 해석

노 대통령이 당과의 약속을 어기고 4일 유시민 입각을 전격 발표하고 이에 당이 반발해 여권내 반노(反盧)-친노(親盧) 전선이 선명하게 조성된 이면에는 노 대통령이 친노세력과 명운을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임과 동시에 반노ㆍ비노 세력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또한 DYㆍGT 세력에 당을 방치하지 않고 ‘노무현식’ 재집권ㆍ정계개편 구상을 시도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이는 노 대통령이 지난해 10ㆍ26 재보선 패배 후 DYㆍGT 진영에서 민주당과의 통합에 속도를 낼 때 “창당 초심으로 돌아가라”며 제동을 건 취지와 일맥상통한다.

노 대통령이 유시민 카드를 끝까지 고집한 것이 노무현식 대권프로젝트의 일환이라면 현재 여권의 유력 주자인 DYㆍGT의 독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노심(盧心)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진 여당의 한 핵심 중진 의원은 유 의원 입각 발표 후 “노 대통령은 정동영, 김근태 두 사람의 정치를 자기 정치와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게다가 노 대통령은 2002년 대선 경선과정서 GT와 갈등을 빚은 바 있고, DY와는 통일부장관 재직시 대북관계와 관련 몇차례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친노그룹의 한 386 의원은 “DYㆍGT 모두 지역, 정책 등에서 DJ 지지층과 겹치고 노무현식 정치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친노 핵심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가운데 차기 문제기 제기됐을 때 영남 출신인 유 의원이 거론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가에서는 노 대통령이 당 안팎의 반발을 무릎쓰고 유 의원을 입각시킨 것을 두고 DYㆍGT를 견제하면서 친노세력을 기반으로 ‘유시민 대안론’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진짜 제3후보는 유 의원이 아닌 이해찬 총리라는 ‘이해찬 대안론’도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차기-이해찬, 차차기-유시민‘이라는 설(設)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러한 관측은 노무현-이해찬-유시민 세 사람의 ‘특별한’ 인연(노무현ㆍ이해찬ㆍ이상수는 88년 13대 국회때 노동위 3총사, 유 의원은 이 총리 보좌관 출신 등)과 친노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 정치공학적으로 이 총리는 충청 출신이고 유 의원이 영남 출신이어서 차기 대선에서 유리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노 대통령의 한 측근 인사는 “대통령이 DYㆍGT보다 이 총리나 유 의원을 더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선과 관련해서는 더 멀리, 그리고 넓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즉 차기 대선에서 현재의 DYㆍGT의 양자구도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이 총리나 유 의원까지 합류, 대선 주자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대선 지형을 유리하게 끌어가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DYㆍGT는 물론 이 총리, 유 의원 외에 천정배 법무장관, 강금실 전 법무장관, 정운찬 서울대 총장 등도 차기 대선 후보군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범여권 후보가 결집할 수 있고 각 후보마다 지지표를 이끌어낼 경우 한나라당의 1~3명 후보보다 득표에 유리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노 대통령의 유시민 카드에서 분명히 읽을 수 있는 의미는 당 운영이나 대선레이스를 DYㆍGT계 등 특정세력에 방임하지 않고 친노세력이 나서 분명한 행보를 할 것이라는 점과 정계개편과 대선후보 경선에도 노심(盧心)이 작용할 여지가 잠복해 있다는 것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