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4월이냐"야권 끌탕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방북이 초미의 관심사다. 성사 여부는 물론,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이 가져올 남북관계 변화와 국내외에 미칠 파장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DJ의 방북을 놓고 공방이 가열, 4월 하순을 목표로 추진됐던 방북 계획은 5ㆍ31 지방선거 이후인 6월로 연기됐다.

DJ의 방북 문제는 새해 첫날인 1일 동교동 자택을 방문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북을 권유한 만큼 건강이 좋아지면 갔다 오겠다”며 “가능하면 기차로 갔다 왔으면 좋겠다"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이에 앞서 북한은 지난해 6월 ‘6ㆍ15 4주년 토론회' 당시와 6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정동영 장관을 만났을 때, 그리고 8월 16일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인 DJ를 문병했을 때 구두로 방북 초청했다.

정부도 적극 나서 지난해 11월 이해찬 국무총리와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잇따라 방북을 권유한 데 이어 12월 8일에는 노무현 대통령도 DJ가 방북하게 되면 정부가 뒷받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DJ는 지난달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정부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나서고 있다”며 “금년부터 준비팀도 움직이고 있다”고 말해 방북 계획이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나아가 DJ는 정부 당국자를 통해 북한에 방북 의사를 전달했다. 4월 하순께 대통령 전용열차인 ‘경복호’를 타고 경의선을 따라 방북하겠다고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북, 더 큰 '선물' 얻기 위한 시간 끌기

그러나 정부가 DJ의 방북 의사를 전달한 지 한 달째 북한은 아직 대답이 없다. 하지만 북한이 여러 차례 DJ를 초청한 바 있기 때문에 DJ의 방북 자체를 거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북측이 확답을 늦추는 배경에 대해서는 DJ가 철도를 이용해 방북할 경우 군사요충지가 외부에 공개돼 북한 군부가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설(說)이 있지만 우리측이 DJ를 통해 전해줄 ‘선물’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DJ가 민간인 신분으로 방문하기 때문에 위조지폐 문제나 북핵 관련 6자회담 문제 등은 논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DJ 방북 수용의 조건으로 최대한 많은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게 북한의 속셈이라는 설명이다.

북한이 지난 1일 비료 15만t의 우선적 지원과 30만t의 추가 지원을 요청한 것은 그러한 맥락이라는 것.

게다가 매년 초순은 남북협력기금 등 북한에 대한 지원 예산 규모가 결정되는 시기여서 우리 정부의 움직임에 전략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 시간을 벌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북한 입장에서 DJ의 방북이 실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면 방북 자체를 무산시킬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의 소식통은 “북한이 DJ 개인에게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DJ가 방북한다는 것은 그의 손에 ‘큰 떡’이 들려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큰 떡’과 관련, 비료나 식량 등 인도적 차원을 넘는 지원이거나 대규모 남북 경협, 또는 한나라당 박성범 의원이 언급한 것과 같은 자금 지원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DJ 방북 초청이 다분히 립서비스 성격이 짙은 만큼 우리 쪽에서 분명한 ‘대가’를 약속하지 않는 한 방북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래서 DJ와 정부가 방북을 밀어붙이는 데는 무언가 북한에 줄 ‘당근’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2003년 6월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대중 전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DJ의 방북은 DJ 자신이나 여권에 호재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DJ는 방북을 통해 김 위원장을 만날 경우 새로운 남북관계를 개척한 선구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여권은 DJ와의 관계 회복을 통해 호남 민심을 얻을 수 있고 이는 지방선거 승리, 나아가 2007년 대선에서 재집권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

노 대통령 입장에선 DJ 방북을 지렛대로 올해나 내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본인의 위상 강화는 물론 차기 주자들의 전면 부상으로 인한 레임덕을 늦추고 정국의 주도권을 계속 행사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빅이슈는 대통령 중심의 정치를 계속 견지해나갈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미 여권은 DJ 방북이라는 이슈만으로도 5ㆍ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적잖은 소득을 거두고 있다는 계산이다. 야당이 DJ의 방북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며 날을 세우고 반발하는 데는 여권의 그런 셈법을 읽었다고 볼 수 있다.

DJ의 방북이 가져올 후폭풍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13일 박근혜 대표까지 나서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이 하필 선거를 앞두고 이뤄진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의심받을 수 있는 문제”라면서 “정부는 국민에게 의심받을 짓을 해선 안 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더 나아가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치공작”이라고까지 비난했다.

민주당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이루기를 바란다”면서도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이를 지방선거에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며 못마땅해 했다.

남남갈등 유발 등 부작용 가능성도

이에 대해 우리당 싱크탱크인 열린정책연구원장 자격으로 북한 조국통일연구원의 초청을 받아 4박5일간 방북하고 돌아온 임채정 의원은 “남북문제를 선거에 이용할 낌새만 보여도 역효과가 난다는 것은 한나라당도 잘 알텐데 이를 억지로 갖다 붙여 왜곡하는 작태에 대해 대오각성을 요구한다”고 반박했다.

정치권의 논란과 여론이 갈린 가운데 DJ의 방북은 6월로 연기됐다. DJ측은 “방북이 민족문제에 대한 허심탄회한 협의를 위한 것인만큼 방북시기도 국민적 합의를 얻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연기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는 조만간 북측에 그 같은 사실을 통보하고 정확한 방북 시기와 절차 등을 조율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DJ의 방북이 남측의 큰 선물이 없는 한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긍정적 성과보다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6ㆍ15 정상회담 합의인 ‘낮은 단계의 연방제’ 등을 논할 경우 커다란 논란과 함께 남남갈등을 유발할 수 있고, 투명하지 못한 ‘선물(큰 떡)’이 전달된다면 두고두고 남북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DJ는 방북을 위해 요즘 건강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번에 4시간 소요되는 신장투석치료를 일주일에 세 번꼴로 받고 있다고 한다. DJ의 방북계획이 착착 진행되는 인상이다.

그럴수록 방북의 성과와 지방선거를 앞둔 ‘북풍’에 대한 논란은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