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대회 '고개' 넘은 주자들 "이젠 대권이다" 다시 출발선에

열린우리당 2ㆍ18 전당대회는 정동영(DY)ㆍ김근태(GT) 두 주연의 열연과 김혁규ㆍ김두관ㆍ임종석 조연들의 활약이 돋보이며 막을 내렸다.

관객이 떠난 무대는 썰렁하지만 그 뒤에서는 소리없는‘또 다른 전쟁’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정동영과 김근태를 필두로 한 대권레이스다.

이에 따라 2ㆍ18 전대 이전부터 국지전으로 전개돼 온 대권 전쟁은 전대를 계기로 본격화될 전망이다.

일단 초반전은 정동영ㆍ김근태 두 주자의 독주가 두드러진 가운데 자천타천의 잠룡들이 거론되는 양상이다. DY는 통일부 장관으로 내공과 이력을 축적한 데다 당의 전면에 복귀, 선두 주자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GT는 전대 과정에서 만만찮은 저력을 보여 대선 지형에 따라 언제든 여권 후보가 될 여지를 남겼다.

여권 내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DYㆍGT 중 대선후보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당에서 기획통으로 알려진 한 초선 의원은 “정치는 현실이다.

노심(盧心,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이 어떻고 ‘제3후보’가 누구라고 거론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상상력일 뿐, 당 구조나 정치 여건상 DYㆍGT가 일단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결과 등 변수 많아

반면 2007년 대선까지 2년 가까이 남아 있는데다 정계개편, DYㆍGT의 낮은 지지율, 고건 전 총리를 포함한 여타 잠룡(潛龍)들의 행보 등 대선 지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들이 많아, 막판 대권레이스는 달라질 것이라는 반론도 상당하다.

당장 5ㆍ31 지방선거는 DYㆍGT가 넘어야 할 험한 산이다. 지방선거에서 선전하면 당 의장의 대선주자 입지는 더욱 탄력을 받겠지만 참패할 경우 대권행보에 치명상를 입게 된다.

2ㆍ18 전대 대회장에서 만난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현재 정동영ㆍ김근태 주자가 대선후보에 가장 근접한 것은 사실이지만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 그리고 최종 후보가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는 것이다. 친노(親盧)계로 분류되는 초선 의원은 “DY와 GT는 참여정부 초기부터 당을 대표해 온 데다 장관으로 국민에게 어필도 했다.

그런데 현재의 지지율은 그들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DYㆍGT가 독주하는 대권레이스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치평론가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대선주자들의 중량이나 여권 구조상 DYㆍGT가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종 후보가 결정되기까지는 상황이 유동적이라고 분석한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은 “국민은 대권과 의회권력을 모두 민주화세력에게 넘겨줬지만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데 실망하고 있다”면서 “여권의 변화를 견인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에게 그나마 지지를 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시민 복지부장관, 이해찬 국무총리, 천정배 법무부장관







정치컨설팅그룹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한국은 이제 대중이 지배하고 통치하는 시대로 들어섰다”면서 “대중의 이슈를 대중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후보가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가에서는 결국 여권이 현재와 같은 대선 구도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면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연정론(聯政論)’이나 개헌론, 신당 창당, 합당론 등이 대선구도를 바꾸기 위한 시도라면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띄우기는 새로운 주자 발굴의 구체적 카드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태영 청와대 연설기획 비서관은 지난달 7일, 국정일기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당의 차세대 또는 차차세대를 이끌고 갈 지도자 재목으로 정세균, 천정배, 유시민 의원 등을 주목하면서 장차 이들을 입각시켜 국정경험을 풍부하게 쌓도록 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밝혀 그 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윤 비서관이 노 대통령을 보좌하는 최측근 인사라는 점에서 이 같은 발언은 노 대통령의 심중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는 관측이다.

여권에서 DYㆍGT 외에 뉴페이스의 제3후보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열린 우리당 2·18 전당대회에서 새지도부를 구성한 정동영(왼쪽), 김근태 후보 / 오대근 기자

중도파로 분류되는 수도권의 재선 의원은 “DYㆍGT가 경쟁력이 있지만 현재의 지지율이 지속된다면 대선에서 역부족이라는 게 당내 분위기”라며 “여러 주자들이 나서 반(反)한나라당 연합세력을 구축해야 대선에서 승산이 있다는 게 중론”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시민 의원 입각에 반대했지만 대선 주자 발굴 차원이라면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유시민 장관 등 '제3의 인물' 거론

여권 안팎에서 거론되는 제3후보로는 우선 유시민 장관이 꼽힌다. 유 장관은 지난해 4ㆍ2 전당대회서 최고위원에 올라 기염을 토한 뒤 이번에 장관으로 입각, 잠룡으로서 확실한 날개를 달았다는 평가다.

유 장관은 ‘유빠’ 등 응집력이 강한 지지세력이 있는 반면 안티세력도 상당해 그가 여권의 대선 후보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그러나 반한나라당 세력을 규합하는데 유 장관 만한 주자도 없다는 게 중론이어서 대선에서의 역할이 주목된다.

노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이해찬 국무총리는 입각 때부터 DYㆍGT와 견줄 만한 주자로 거론돼 왔다. 노 대통령이 차기를 염두에 두고 이 총리를 지명했다는 설도 있다.

올 1월 개각과 관련 이 총리 교체설이 나돌았지만 노 대통령은 “나와 함께 할 사람”이라며 여전한 신뢰를 보여줬다.

게다가 이 총리의 국회 보좌관 출신인 유시민 의원이 복지부 장관에, 용산고 후배인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 통일부 장관에 입각해 실세 총리의 위상을 과시했다. 그래서 여권에서는 “차기 이해찬, 차차기 유시민”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가에서는 이 총리가 충청 출신(충남 청양)이라는 데 주목, 절대적인 호남ㆍ충청표에다 수도권에서 과반, 영남 일부표를 얻을 경우 대선에서 승산이 있다는 공학적인 분석도 있다.

2ㆍ18 전대를 전후해 가장 주목받는 제3후보는 천정배 법무장관이다. 우리당에서는 전대를 앞두고 DY-GT의 격돌이 과열, 당사자 뿐만 아니라 당이 상처를 입을 것을 우려해 중도파 의원을 중심으로 ‘대안론’이 제기됐고 천 장관이 적격 후보로 거론됐다.

천 장관은 지난해 강정구 교수 사건에서 건국이래 첫 ‘검찰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대중들에게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각인됐을 뿐만 아니라 여권에서도 주목받는 잠룡으로 떠올랐다.

게다가 2002년 대선 초기 천 정관은 거의 유일하게 노 대통령을 지지, 현재까지도 노 대통령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당 내에서는 최재천ㆍ문병호ㆍ양형일 의원 등이 지지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신기남ㆍ임종석 의원 등 친(親)천정배 의원만 20명이 넘는다는 예기도 들린다.

또한 우리당 개혁세력 뿐만 아니라 호남 출신으로 민주당에서도 지지파가 있어 막상 대권 행보에 나설 경우 대권레이스에서 다크호스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에는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경기도지사 출마가 유력해지면서 2004년 말 불거졌던 ‘진대제 대망론’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진대제 대망론은 2004년 12월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회장이 주미대사에 내정될 때 거론되다가 이듬해 초 국가정보원 출신 임형찬 씨를 정책보좌관으로 영입하면서 진 장관이 대권행보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최근 진 장관이 제3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참여정부 최장수 장관으로 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데다 차기 주자와 관련, 노 대통령이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 것도 배경이 되고 있다.

정치권 진입에 거리를 두어온 진 장관이 경기지사 출마에 나선 것도 대선 출마를 위한 정지작업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영남 출신(경남 의령)이어서 영남권의 거부감이 적은 데다 IT(정보통신)정책 사령탑으로 다른 잠룡들과도 차별화해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강금실 전 장관 거취따라 요동칠 가능성도

그밖에 강금실 전 법무장관,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 김혁규 의원도 제3후보로 거론된다. 강 전 장관은 대중적 지지도와 참신한 이미지가 강점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이미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서울시장 출마와 당선 여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 있다. ‘대한민국 사람이 진짜 원하는 대통령’의 저자인 황상민 교수(연세대 심리학과)는 “강 전 장관은 잠룡 중 잠재적 폭발력이 매우 크나 서울시장 출마와 같은 검증절차를 통해 실체를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두관 전 장관과 김혁규 의원은 영남 출신으로 여권의 취약지대에서 표를 얻을 수 있으나 다른 지역의 지지가 약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들이 명실상부한 잠룡 반열에 들기 위해선 이에 부합하는 경륜과 내공을 쌓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강금실·진대제가 움직인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 진대제 정통부장관이 변신을 꾀하고 있다. 5ㆍ31 지방선거에서 각각 여권의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강 전 장관은 지난해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과 경기여고 63회 동창인 열린우리당 조배숙 의원을 만났을 때만 해도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여론의 높은 지지율에 근거해 여권이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내자 최근 출마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올해 초 강 전 장관을 만났다는 한 경기여고 63회 동창은 “지난해와 달리 지방선거 출마에 관심을 나타냈다”면서 출마쪽에 무게를 두었다.

최근에는 강 전 장관이 사실상 출마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당(黨)ㆍ청(靑)과 공표 시기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우리당의 한 중진의원은 “강 전 장관 자신은 출마할 경우 이길 수 있는지 자신을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해 그것이 남은 변수임을 시사했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

진 장관은 경기지사 출마가 유력하다. 2월 초 이해찬 총리를 만나 출마의 뜻을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에서도 상당수 의원들은 김진표 교육부총리 대신 진 장관의 출마를 선호하는 상황이다.

당선 가능성과 김 부총리가 출마할 경우 치를 보궐선거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삼성전자 공장이 수원에 있어서 삼성전자 출신인 진 장관에 유리한데 반해 김 부총리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데다 보궐선거마저 지면 의석 1석도 잃어 당에 큰 타격”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진 장관을 차기 주자 반열에 올려 놓기 위해서는 경기지사 출마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