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전 총리 사퇴로 여권 내 역학구도에 변화, 정동영 의장 입장 일단 수용… 애증관계 향방 주목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3ㆍ1절 골프파문으로 여권의 권력지형이 출렁거렸다.

‘실세’총리가 낙마함으로써 당정청의 무게 추가 당(黨)쪽으로 급격히 기울었고 열린우리당 정동영(DY) 의장이‘실세’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골프 파문 직후 당내 여러 목소리를 잠재우면서 이 전 총리의 사퇴를 압박,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도 DY의 위상을 높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14일, 정 의장과 면담한 후 이 전총리의 사표를 수리해 DY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 이전까지 노 대통령은 이 전총리를 면담했을 때나 청와대 이병완 비서실장의 보고 때도 그의 거취에 대해 침묵했었다.

이 전총리 파문은 당청간, 그리고 당내 계파에 따른 권력지형의 밑그림을 복잡하게 하면서 새로운 권력투쟁을 잉태하고 있다. DY의 입지가 강화된 반면 반DY계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본래 3ㆍ1절 골프 파문에도 불구하고 이 전총리 카드를 유지하려고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이병완 실장,문재인 민정수석으로부터 이 전총리를 둘러싼 의혹이 근거가 없고 이 전총리가 골프를 통한 로비에 휘둘리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고 그대로 유임시키려 했다”고 말했다.

우리당 당권파가 이 전총리의 사퇴를 주장했을 때 청와대가 ‘국정운영’,‘대통령의 권한’등을 내세우며 반박한 것을 두고 노심(盧心)이 작용했다는 해석은 그래서 나온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도 이 전총리의 해임은 레임덕(권력 누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매우 고심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끝내 이 전총리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 전총리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각해 국정운영에 부담이 됐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무엇보다 5ㆍ31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참패할 경우 이 전총리 유임에 따른 책임을 노 대통령이 지게 돼 레임덕이 가속화하는 것을 우려했다는 분석이다.

당권파 대권정치와 충돌 가능성

노 대통령이 이 총리의 거취와 관련, DY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것은 5ㆍ31 지방선거를 위해서다.

노 대통령은 2004년 1ㆍ11 전당대회에서 그 해 4ㆍ13 총선을 위해 친노(親盧) 그룹에게 DY 지지를 독려한 적이 있다. 집권 초반, 원만한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집권여당이 다수당이 될 필요가 있었고 DY 간판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아울러 노 대통령은 DY의 입장을 수용함으로써 지방선거를 통해 권력게임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즉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참패할 경우 DY를 비롯한 당권파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고, 반대로 지방선거에서 승리해 DY의 대권 행보에 탄력이 붙을 경우 속도 조절에 나서는 등 정국흐름에 관여하겠다는 속내다.

노 대통령은 이 전총리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청와대 중심 정치를 고수함으로써 DY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의 대권정치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이 전총리의 퇴진을 부른 3ㆍ1절 골프 파문으로 노 대통령(靑)과 DY(黨)의 충돌이 앞당겨질 수 있는 셈이다.

노 대통령과 DY는 2002년 대선 경선서 ‘아름다운 완주’를 한 사이지만 참여정부 들어 불편한 관계를 자주 노정시켰다.

17대 총선 당시 DY계에서 친노 측 창당 공신에 대한 공천을 배제하려 한 것이나 DY가 노 대통령의 입당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그러한 예다. DY가 통일부 장관 시절 남북관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권한과 영역, 방식 등을 놓고 노 대통령과 시각차를 보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2004년 5월 원내대표 경선에서 노 대통령은 이해찬 후보를, DY는 천정배 후보를 밀어 DY가 간발의 승리를 거둔 적이 있다. 이후 이 총리체제가 들어서고 DY가 입각한 뒤로는 친노 그룹과 DY계의 대리전 내지 국지전이 이어졌다.

친노 그룹 중 문희상ㆍ유인태 의원 등 청와대 출신과 이광재ㆍ서갑원ㆍ이화영ㆍ백원우 의원 등 친노 386의원들이 비교적 중립적 행보를 취해온 반면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김두관 최고위원 등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는 김근태(GT) 최고위원 등의 재야파와, 이기명 전 노 대통령 후원회장ㆍ정청래 의원 등 ‘1219 국민참여연대(국참)’는 DY계와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친노 호남 좌장인 염동연 우리당 사무총장은 DY계로 분류된다.

이러한 우리당내 세력분포는 2ㆍ18 전대에서 뚜렷한 합종연횡을 선보였다.

DY는 국참과, GT는 참정연 등과 연대, 차기 대선주자의 대리전을 방불케 했다. ‘이해찬 파문’에서도 DY계가 이 전총리의 사퇴를 촉구한 반면, 참정연ㆍ친노 386ㆍGT계는 이 전총리를 옹호하는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이해찬 당 복귀로 대권레이스 가열 전망

기존 여권내 잠룡들의 경쟁에 입각 때부터 충청 출신(청양) 잠룡(潛龍)으로 평가를 받아온 이 전총리가 당에 복귀하면서 대권레이스는 또다른 양상을 보일 전망이다.

현재 DY가 당을 장악해 가장 앞서 가고 있지만 GT가 버티고 있고 이 전총리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보유했다는 평가다.

김두관 최고위원을 비롯해 당 밖의 천정배 법무장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등도 ‘제3 후보’로 DY를 위협할 만하다는 분석이다.

윤태영 청와대 연설기획 비서관이 올 초 국정일기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당의 차세대 또는 차차세대를 이끌고 갈 지도자 재목으로 정세균, 천정배, 유시민 의원 등을 주목하면서 장차 이들을 입각시켜 국정경험을 풍부하게 쌓도록 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밝혀 그 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당장 5ㆍ31 지방선거는 여권내 잠룡들의 위상은 물론, 권력지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선거에서 승리하면 DY의 대권행보엔 힘이 붙고 당 우위가 지속된다.

선거에 참패하면 DY가 책임을 면하기 어렵고 패배 책임을 둘러싸고 당청 간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 노 대통령도 정치적 승부수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고, 경우에 따라선 당청 결별 또는 정계개편이라는 정치판 전체의 변화가 올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5ㆍ31 지방선거를 분수령으로 노 대통령과 DY의 진검승부가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