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폭넓은 인맥으로 폭발력 클 듯… "정치 지형 바꾸는 계기" 전망도

▲ 김재록씨
금융계 마당발로 알려진 김재록 전 인베스투스글로벌 대표의 로비 의혹 사건이 재계를 넘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3ㆍ1절 골프 파문과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테니스’논란으로 뒤숭숭하던 정치권은 ‘김재록 쓰나미’경보에 가슴졸이고 있는 양상이다. 어느 당이 더 피해를 입을지 아직은 예측불허라 더욱 그러하다.

김재록 사건은 5ㆍ31 지방선거를 두 달 가량 앞두고 터졌지만 겉으로 드러난 정치권과의 관련성만으로도 정치지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설(說) 수준에 머물고 있는 내용들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전망이다.

김재록 사건은 지난해 10월 벤처투자기업 S투자평가원 정모 사장(42)이 국가청렴위원회에 한나라당 최병렬 전 대표와 권철현 의원이 금품을 수수했다는 내용의 제보를 한 게 단초가 됐다.

검찰은 제보를 토대로 내사를 했으나 증거 부족으로 결국 최ㆍ권 두 전현직 의원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은 정 사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수확을 거뒀다. 정 사장이 2002년 6월 신동아화재 M&A를 놓고 김재록과 부정한 거래를 한 정황을 포착한 것.

검찰은 올해 1월 김씨를 체포해 조사하고 난 뒤 일단 석방했다. 그리고 2개월에 걸쳐 김재록과 관련된 사안들을 철저하게 조사해 칼을 빼들 시기를 조율하던 중 현대차 비자금에 대한 내부 제보를 접수, 지난달 24일 김씨를 전격 구속했다.

검찰 수사는 애초 정치권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지만 김재록의 로비 대상으로 거론되는 정·재계 인맥은 그 실체에 따라 폭발력을 갖기에 충분하다.

김재록 파문은 이미 5ㆍ31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해찬 전 총리 골프 파문과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테이스’논란으로 부침을 거듭하던 여론은 김재록 사건으로 또다시 요동칠 조짐이다.

5ㆍ31 지방선거와 관련, 정가에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영남과 호남을 장악하고 충청권에서 국민중심당의 선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열린우리당이 기대하는 수도권의 강금실(서울) 전 법무장관,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경기도) 카드도 낮은 당 지지율과 표 분산(민주당-호남표, 민주노동당-개혁표) 등으로 낙관할 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야당 수사 시기에 의구심

그래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김재록 사건이 5ㆍ31 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터진데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김씨가 김대중(DJ) 정부의 인맥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당에 유리하도록 민주당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호남의 초선 의원은 “김재록 사건으로 민주당이 추락할 경우 지지세력이 겹치는 여당에 이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역시 지금은 DJ정부와 여당을 겨냥하는 듯 보이지면 결국 한나라당을 겨냥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대차그룹 로비의혹 수사 과정에서 서울시가 거론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

이계진 대변인은 “왜 이런 권력형 비리가 선거에 임박해서 일어나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며 “이번 선거가 ‘검찰선거’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재록 사건은 대선지형 변화에도 ‘뇌관’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명박 시장의 경우 이 시장과 가까운 한 의원이 수억원을 수수했다는 검찰발(發) 의혹제기와 함께 현대차 그룹 양재동 연구개발센터 인허가와 관련한 서울시 로비 의혹 등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신경이 곤두서 있다.

서울시가 2001년 유통시설지구로 묶여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다가 3년 뒤인 2004년 교통영향 평가, 건축심의, 환경영향 평가 등의 절차를 3개월 만에 끝내고 건축허가를 내준 게 의혹의 핵심이다.

이번 사건은 고건 전 총리를 노린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 김재록씨 사건의 수사방향에 대하여 정·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26일 서초동 대검청사에서 정상명 검찰총장이 점심을 먹기위해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 홍인기 기자
사건의 수사방향에 대하여 정·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26일 서초동 대검청사에서 정상명 검찰총장이 점심을 먹기위해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 홍인기 기자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 이른바 ‘이헌재 사단’이 고건 라인에 합류할 것을 우려한 현 정부에서 이를 흔들어 놓기 위해 김재록 사건을 터트렸다는 것이다.

5ㆍ31 지방선거와 이후 정계개편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민주당을 주저앉히고 고 전 총리와의 연대를 차단하기 위해 DJ정부에서 활동한 김재록을 앞세웠다는 해석도 같은 맥락이다.

김재록 사건이 여당의 유력 주자인 정동영(DY) 의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청와대가 DY로는 본선이 어렵고 노무현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갈 것으로 보고 김재록 카드를 빼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김씨는 2002년 4월 대선후보 경선을 전후해 DY캠프에 들어간 동생 김재갑씨를 통해 DY와 인연을 맺은 뒤 관계를 지속해 왔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김씨가 호남권 금융인사와 벤처기업을 통해 DY를 후원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수도

결국 김재록 사건이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여의도 주변서 조심스럽게 나온다.

이번 사건은 김씨의 인맥과 김씨가 관여한 기업ㆍ금융 M&A 및 구조조정 등이 DJ정부 고위 인사, 여당내 민주당 출신 의원, 나아가 DJ의 친인척까지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검찰의 칼끝은 과거 DJ정부을 향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검찰 주변에서는 김재록이 16대 선거 당시 여당 중진인 K의원에 선거자금을 지원하고 L 의원을 직간접으로 도와주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정가에서는 5ㆍ31 선거 후 정계개편 논란에서 여당과 민주당의 통합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민주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친노그룹과 찬성하는 DY 및 김근태 최고위원 진영이 맞설 경우 파열음은 분당으로 점화될 수 있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청와대의 386 비서관은 “현재 구도와 인물로는 차기 대선에서 재집권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이쪽(청와대) 분위기”라며 “정치지형을 바꾸고 새 패러다임에 맞는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지방선거가 정계개편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면서 “호남표를 의식해 정치지형을 바꾸는데 주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김재록 사건에 검찰의 창이 어디까지 향하든 청와대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DJ정부에 흠집을 내도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재록 사건에 대한 수사는 이제 첫 장을 넘겼을 뿐이다. 검찰의 칼끝이 예리해지면서 수사 배경 및 정계개편과 관련된 소문도 갈수록 무성해지고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