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제 VS 김문수 - 벽촌서 태어나 같은 중학교 · 대학교 다닌 '친구'

▲ 경기도의 교육행사장에 나란히 참석한 김문수 의원(왼쪽)과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진대제 장관은 세계적인 반도체 전문가인데 이런 훌륭한 기술을 가진 분이라면 외국인이라도 공직에 앉혀야 한다. 아들의 국적 문제는 유학생활로 인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진 장관은 정치인이 아니고 본인도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은 2003년 3월 진대제 신임 정통부 장관이 아들의 2중 국적 문제로 낙마 위기에 처했을 때 동료 의원들을 설득했다. 진 장관이 세계적인 엔지니어이고 정치인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진 전 장관은 정치인으로 변신, 그것도 여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사표를 던져 김 의원과 정면충돌이 불가피하게 됐다. 김 의원은 3일 인터뷰 중 “어허 참, 인생은 오묘한데가 있다”며 진 전 장관과 의 오랜 인연을 에둘러 언급했다.

김 의원과 진 전 장관은 오랜 친구다. 경상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두 사람은 같은 중학교와 대학교를 다닌 동문이다. 그래서 친구들이 서로 겹치고 사석에서는 이름을 부를 만큼 가깝다.

하지만 김 의원과 진 전 장관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분명하다. 우선 출생지가 김 의원은 경북 영천시 임고면이고 진 전 장관은 경남 의령군 부림면으로 두 곳 모두 말 그대로 벽촌이다. 어렵던 시절 어머니가 가족을 부양하다시피한 점도 유사하다.

두 시골 천재는 지방 명문이던 경북중학교에서 만난다. 그리고 3년 내내 선두권에서 경쟁을 벌인다.

진 전 장관은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스킨십이 있을 정도로 가깝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김 의원은 “진 전 장관은 3년 동안 조용히 공부를 잘했는데 난 3학년 때 사회의식에 눈떠 가끔 대외적인 발언도 하는 등 적극적이었다”고 술회한다.

▲ 경복중 51회 동창인 진대제(왼쪽), 김문수(오른쪽)

중학교 졸업(1967년) 후 진 전 장관은 전국의 수재들이 모이는 서울의 경기고로 진학했고, 김 의원은 지방 명문이던 경북고를 선택했다.

두 사람은 70년 서울대에 진학하면서 다시 만났다. 김 의원은 경영대에, 진 장관은 공대에 차석으로 나란히 합격했다. 김 의원은 “(진 전 장관이)공대에 들어간 것을 알고 당시 공대가 있던 공릉동 캠퍼스를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대학 입학 이후 두 사람의 삶은 크게 달랐다. 김 의원은 제적과 복학을 거듭하다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진 전 장관은 세계적인 반도체 전문가로 성장했다. 김 의원은 “대학에서 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문제아’였지만 진 전 장관은 트러블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71년 10월 학생시위로 제적되자 고향에서 야학 등 농민운동을 하다 복학했지만 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으로 다시 제적됐다. 김 의원은 서울대 입학 후 25년이 지난 94년에야 졸업장을 받았다.

김 의원은 75년 3월 청계천 피복공장 재단보조공으로 노동운동에 투신, 한일도루코 초대 노조위원장(78~80년)과 서울노동자복지협의회 부위원장(84년)을 맡았고 민중당에서 핵심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96년 총선을 앞두고 문민정부의 개혁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신한국당에 입당, 경기도 부천 소사에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김 의원은 한나라당 원내부총무(98년), 기획위원장(2002년)과 17대 총선(2004년)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으며 3선의 중진급 의원으로 성장했다.

반면 진 전 장관은 77년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79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83년 스탠퍼드대 박사(전자공학)가 됐다.

이후 미국 실리콘밸리의 휴렛팩커드(HP)와 IBM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85년 “조국의 반도체 산업을 일으켜 일본을 집어 삼키겠다”며 삼성전자 미국 현지법인 수석연구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87년 4M D램을 개발하고 89년에는 세계 최초로 16M D램을 개발,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이끌었다.

진 전 장관은 입사 2년 만인 87년 이사로 진급한 뒤 상무(92년), 전무(93년), 부사장(95년)을 거쳐 2000년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에 올랐고 2003년 2월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제9대 정보통신부 장관에 임명됐다.

김 의원과 진 전 장관은 각각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동문들 사이에서 자랑거리가 됐다. 경북중 51회 동창회의 한 간부는 “김문수가 국회의원이 된 96년에 진대제 역시 반도체 신화를 이룬 CEO의 위치에 있어서 동문들 사이에 단연 화제의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진 전 장관은 “김 의원에 대해서는 대학졸업 후 까많게 잊고 지내다 96년 총선 때 화제의 인물로 부각되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고 말했다. 그 이후 두 사람은 공ㆍ사석에서 만나면서 동창의 우정을 이어왔다.

진 전 장관이 올 초까지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것이나 출마지역을 놓고 서울과 경기도를 놓고 고민한 이면에는 김 의원과의 특별한 인연이 적지않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김 의원 역시 상대 후보가 진 전 장관이라는 게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세계 최고 반도체 전문가로 그 분야에서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게 정치하는 것보다 낫다고 보는데…”라며 부담감을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하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김 의원의 당내 경선 통과가 확실시되는 가운데 두 동창의 5ㆍ31 대첩은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김 의원이 10~15% 포인트 정도 진 전 장관에 앞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진 전 장관은 ‘CEO형 도지사론’을 앞세워 ‘공인론(公人論)’을 주장하는 김 의원을 추격한다는 입장이다.

두 사람의 40년 우정이 5ㆍ31 선거에서 어떤 형태로 투영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