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바람 앞에 주춤, 승패 따라 정치지형 · 대선구도 격변 예상

5ㆍ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한 5일 이후 봄날의 보라빛 여진이 출렁이는 가운데 뜻밖의 '황사'을 만난 까닭이다.

강 전 장관은 서울이라는 상징적 승부처에 출사표를 던진데다 그가 지닌 정치적 함의로 인해 출마전부터 화제를 불러왔다. 게다가 지지율 1위를 기록한 '강풍(康風, 강금실 바람)'의 세기는 그를 이번 선거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오세훈 전 의원이 9일 한나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나서면서 선거판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강 전 장관과 오 전 의원이 오차범위의 지지율 접전을 벌이면서 서울시장 선거가 안개속 국면으로 급변한 것.

올해 1월 말 실시된 SBS 여론조사에서 강 전 장관은 지지율 35.6%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이는 한나라당 후보로 거론된 맹형규(11.1%) 전 의원과 홍준표(10.9%) 의원의 지지율을 합친 것보다 높은 수치였다.

하지만 11일 MBC 여론조사에서 강 전 장관은 36.4%의 지지를 얻어 맹형규ㆍ홍준표 후보에는 앞섰지만 오 전 의원(39.0%)에 뒤졌다.

물론 오 전 의원이 당 경선(4월25일)을 통과할 지 두고 봐야 하지만 '오풍(吳風, 오세훈 바람)'의 위력은 강풍의 발목을 잡을 여지가 있다. 오 전 의원은 "만일 경선에서 지더라도 승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해 강 전 장관에 위협구를 던진 상황이다.

이번 선거에서 강 전 장관의 승패는 개인에 머물지 않을 전망이다.

대선의 전초전이자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을 띤 5ㆍ31 선거에서 서울이 그 분수령인데다 강 전 장관이 여권을 대표하는 주자로 나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이후 정치지형은 물론 대선 국면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돼있다.

강 전 장관이 승리할 경우 여당은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되고 그만큼 정계개편의 추동력은 약화된다. 설령 정치지형에 변화가 오더라도 그 폭은 크지 않고 여당이 주도하는 정계개편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강 전 장관이 패할 경우 우리당은 직격탄을 맞게 되고 정계개편에 가속도가 붙게 된다. 강 전 장관에 올인한 우리당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질 것이 확실하고 그 파장에 따라 당의 분열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민주당과의 통합을 둘러싼 계파 간 충돌이 재연될 소지가 크고 분당이라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나아가 노무현 대통령이 탈당할 경우 여당발(發) 정계개편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선레이스도 강 전 장관의 당락에 영향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강 전 장관이 당선될 경우 여권의 유력한 대권주자인 정동영(DY) 의장은 강 전 장관 영입에 전력한데다 '서울 승리=지방선거 승리'라는 상징성으로 입지가 한층 강화될 것이 예상된다. 또다른 주자인 김근태(GT) 최고위원 역시 몸값이 오르겠지만 당 간판인 DY에 비할바는 못된다.

반면 강 전 장관이 패하게 되면 DY는 책임론에 직면, 계급장(의장직)을 떼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대권레이스에서 속도가 떨어지는 것은 자명하다. GT도 패하면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상대적으로 DY에 비해 상처는 적을 수 있다.

주목되는 것은 고건 전 총리의 급부상 가능성이다. 강 전 장관이 패해 여당 위기론, DYㆍGT 한계론이 설득력을 얻게 될 경우 '고건 영입론'은 한층 탄력을 받게 된다. 이는 정계개편과도 맞물려 정치권은 아노미 상태로 빠져들 수 있다.

서울시장 선거 결과는 곧바로 한나라당 차기 주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한나라당이 승리할 경우 일단 박근혜 대표가 힘을 받겠지만 후보가 누구이냐에 따라 박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이 얻는 부산물이 달라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맹형규 후보는 친박근혜, 홍준표 후보는 친이명박, 오세훈 후보는 중립적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강 전 장관이 승리하면 한나라당 주자들에 미치는 충격파는 상상을 넘는다.

박근혜 대표는 공천비리 파문에 더해 지도력 부재 시비로 대선레이스에서 뒤쳐질 수 있다. 이명박 시장은 치명적이다. 이 시장의 재임 중 업적은 도전받게 되고 '청계천 효과'는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다.

결국 강 전 장관이 5ㆍ31 선거 이후의 정치지형과 대선국면의 변곡점에 서 있는 셈이다. 강 전 장관은 당내서 이계안 의원의 도전을 받고 있지만 사실상 서울시장 후보가 확정적인 상황이고 지지율도 여야 후보 중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한나라당에 15~20% 가량 뒤진 우리당 지지율이 최근 한나라당 공천비리 파문으로 격차가 좁혀지는 것도 강 전 장관에게 유리한 국면이다. 우리당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 초선은 "강 후보의 참신한 장점에다 정책만 보완하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강 전 장관이 '넘어야할 산'은 높다. 우선 강풍(康風)을 잠재울 기세로 등장한 '오세훈 바람'이다. 정치컨설팅 업체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강 전 장관과 오세훈 후보는 지지층이 겹치는데다 기존 한나라당표는 유동성이 적어 오 후보가 유리하다"고 전망했다.

다른 각도에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한귀영 연구실장은 "강 전 장관은 능력과 도덕성 모두를 갖춘 '제3세대 정치인'으로 인식되고 있는 장점이 있지만 주 지지층인 20~30대의 투표율이 낮다는 게 약점이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박주선 후보와 민주노동당 김종철 후보가 각각 호남표와 20~30대, 개혁층 표를 잠식하는 점도 강 전 장관에게 불리하다.

뒤늦게 태동한 강풍(康風)이 곳곳의 황사주의보를 뚫고 5월말까지 기세를 유지할 지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