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7월 전당대회

“시간이 요즘처럼 더디게 간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4월 초 한나라당 내 김덕룡(DR) 의원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기자와 5ㆍ31 지방선거 얘기를 하다 문득 ‘시간’얘기를 꺼냈다. 그는 5ㆍ31 선거보다 7월 전당대회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7월 전대는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이 계급장을 뗀 가운데누가 대선레이스를 선점하느냐 하는 중요한 시발점이다. ‘당권’의 주인공에 따라 박ㆍ이ㆍ손 잠룡들의 위상과 레이스의 굴곡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5ㆍ31 선거의 분수령이자 차기 대선의 승부처인 서울ㆍ경기의 당내 경선이 박근혜ㆍ이명박 두 유력 주자의 대리전 양상을 띤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박ㆍ이 간 1차 대리전격인 3월 원내대표 경선에선 이명박계인 이재오 의원이 큰 표차로 박 대표계인 김무성 의원을 눌렀다. 반면 7월 당권 경쟁에서는 DR이 나서는 박 대표의 우세가 점쳐졌다.

정가에서는 한나라당 7월 전대에 나설 당권 후보로 DR을 비롯해 5선의 박희태 국회부의장, 강재섭 의원, 이상득 의원, 3선의 이재오 원내대표, 40대의 남경필ㆍ원희룡 의원, 외부인사 등이 거론돼 왔다.

하지만 박희태 부의장은 DR이 출마할 경우 불출마할 가능성이 높고, 강 의원은 대권 도전을 선언한 상태다. 이상득 의원은 이 시장의 친형으로 사실상 출마가 어렵다고 관측되고 국회부의장 쪽으로 방향을 잡은 상태다.

따라서 7월 전대에서 당권 경쟁은 친박근혜계인 DR과 친이명박계로 분류되는 이재오 원내대표, 남경필 의원 간의 대결이 예상됐다.

정가에서는 박 대표의 지원을 받는 DR이 당 안팎에서 일정한 계보를 형성하고 있고 호남 출신 중진이라는 대선 프리미엄 때문에 승산이 높은 것으로 전망됐다. 앞서 DR계 의원이 ‘시간이 더디다’고 한 것은 7월 당권전에서 DR의 승리를 확신하는 데서 오는 넋두리인 셈이다.

DR은 7월 전대에서 박 대표 쪽에 설 것을 자처했고 당 안팎에선 두 사람 간에 ‘대권=박근혜, 당권=김덕룡(킹메이커)’이라는 묵계가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회자됐다.

하지만 DR이 13일 공천비리 의혹과 관련해 당에 의해 검찰에 고발되면서 그의 꿈은 한순간에 날아갔다. 동시에 박 대표의 대권 행보도 큰 타격을 받았다. 박 대표는 공천비리 후폭풍이 5ㆍ31 선거에 먹구름을 몰고 올 것을 우려해 DR을 읍참마속(泣斬馬謖)했다.

DR이 낙마함에따라 7월 전대의 당권 예상도도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DR계인 3선의 김무성 의원이 당권 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고 박희태 부의장도 강력한 도전 의사를 밝히고 있다.

김무성 의원측은 DR계를 그대로 물려받고 박 대표가 지원하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한 인사는 “원내대표 경선 때는 이명박계가 이 원내대표를 조직적으로 밀었고 사학법 장외 투쟁이라는 마이너스 변수 때문에 패했지만 당권 경쟁은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박희태 부의장측은 “박 대표나 이 시장 어느 쪽도 아닌 중립적 인사가 당을 이끌어야 한다”며 “당 대표 경험도 있지 않냐”고 주장했다.

정가에서는 당 대표라는 중량감에서 ‘박희태-이재오’2파전을 예상하면서 조심스럽게 박 부의장의 우세를 예상한다. 반면 지난해 말 논란이 됐던 박 부의장의 탈세 시비가 재연될 경우 대선과 맞물려 결정적인 악재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5ㆍ31 지방선거 결과는 7월 당권 판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권 주자뿐 아니라 당권 도전자들이 5월 대전에 올인(all in)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