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와 본리독립… 독립 찬·반 세력 간 갈등 등 진통 예상

▲ 포드고리카 시내의 푸쉬킨 동상에 몬테네그로 국기를 상징하는 수건을 걸어놓았다. / AP=연합
2006 독일월드컵은 유럽 발칸에 있는'세르비아-몬테네그로 국가연합'의 마지막 본선 무대이다.

몬테네그로가 국민투표를 거쳐 세르비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결정, 지도에서 사라진 지 88년 만에 독립국가로 부활하게 됐기 때문이다. 인구 65만의 신생 독립국가 몬테네그로의 탄생으로 1990년대 말까지도 민족전쟁의 참화를 겪으며 피로 물든'유럽의 화약고 발칸의 지도는 새로 그려지게 됐다.

이로써 6개의 공화국, 5개 민족, 4개의 언어, 3개의 종교가 하나의 나라를 이뤘던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의 마지막 페이지도 완성됐다.

독립국가 몬테네그로의 앞날은

21일 실시된 몬테네그로의 국민투표에서 분리 독립 찬성표는 55.5%로 공식 집계돼, 유럽연합(EU)이 정한 독립 가결 기준 55%를 가까스로 넘겼다. 정치 생명을 걸고 독립을 추진해온 밀로 듀카노비치 몬테네그로 총리는"몬테네그로 국민 다수는 독립국가를 되찾는 것을 선택했다"라면서 독립을 선언했다.

세르비아와 EU 등 국제사회는 몬테네그로 국민의 독립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다.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23일 "연방의 존속을 지지했으나, 몬테네그로 국민들의 자유의지에 의한 표현을 인정한다"고 몬테네그로 독립을 인정하겠다는 뜻을 밝히며"긴밀히 협력해나가자"고 요구했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등 옛 유고 연방의 지도자들도 몬테네그로 국민투표 결과를 일제히 환영했다.

몬테네그로는 앞으로 국방ㆍ외교에서 자치권을 회복하고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국제기구의 독자 가입에 가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몬테네그로는 대외적으로는 세르비아와 묶인 연방국가였지만 외교, 국방 등 극히 일부분만 연방정부에 맡겨놓았을 뿐 대통령과 총리를 따로 선출하고 입법은 물론 경제 등 국가의 주요 정책 90% 이상을 스스로 결정해왔다.

세르비아의 반대 속에서도 몬테네그로는 2002년 도입한 유로화를 공식 화폐로 계속 사용할 정도로 양국의 연방체제는 느슨할 대로 느슨해져 있었다. 2003년 신유고연방에서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국가연합으로 국명을 바꾼 베오그라드 협약에서는 몬테네그로의 독립 선택권도 보장했다.

하지만 세르비아와는 한 세기를 형제같이 지낸 만큼 몬테네그로의 홀로서기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주민 구성도 몬테네그로계와 세르비아계가 각각 43%와 32%로 엇비슷해 국론 분열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신유고연방 잔류 지지파들은 부정투표 의혹을 제기하고 재검표를 요구하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아, 독립 찬ㆍ반 세력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세르비아계 정치인, 정교회 지도자, 내륙 산악의 세르비아 접경 지역 주민들은 정치, 경제뿐 아니라 혈연 등으로도 유대가 깊은 세르비아와 관계 악화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며 경제 성장과 EU 가입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독립해야 한다는 독립 지지파와 팽팽하게 맞서왔다.

듀카노비치 총리는 독립국가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의 인질'에서 '발칸의 스위스' '제2의 몬테카를로'로 바뀔 것이라면서 경제 성장의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밀거래와 돈세탁, 도박, 러시아 마피아의 온상이 되리라는 우려도 크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유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몬테네그로의 독립 가결을 두고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전쟁 등을 벌여가면서까지 옛 유고연방 공화국들에 대한 지배를 지키려 한 세르비아 소(小)패권주의의 패배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몬테네그로의 독립은 '티토이즘'이라는 독자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냉전 시대에 비동맹 체제를 주도했던 요제프 티토(1892~1980) 대통령이 건설한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과의 역사적 단절이라는 것이다.

▲ 세르비아와의 독립을 지지하는 한 여학생이 포드고리카 시내에서 차에 올라 몬테네그로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 AP=연합

몬테네그로는 90년대 초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독립 선언과 민족 정화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발칸전쟁으로 옛 유고가 뿔뿔이 흩어지는 와중에도 92년 세르비아가 주도하는 신유고연방에 잔류, 유고의 명맥을 꿋꿋이 지켰다.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전쟁 등을 일으킨 전범국가 세르비아와 동맹이라는 이유로 몬테네그로는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경제제재도 당했다. 이 때문에 신유고연방을 탈퇴해 국제무대에서 독자노선을 걷는 것이 정치,경제적으로 국익에 훨씬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도 몬테네그로 국민들의 독립 의지를 부추겼다.

몬테네그로를 마지막으로 세르비아를 종주국으로 한 옛 유고 연방의 6개 공화국은 모두 제각각의 길을 가게 됐다. 유고 해체 이후에도 발칸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세르비아 남부 자치주 코소보의 분리 문제도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98년 알바니아계 주민들에 대한 세르비아인의 인종청소로 시작된 코소보 전쟁, 그리고 알바니아계의 보복테러로 1만여 명이 목숨을 잃고 알바니아계 주민 수십만 명은 고향을 등지고 난민 신세로 전락했다.

전쟁 이후 유엔 관할에 들어간 코소보의 독립이냐 자치냐를 결정할 최종 지위 협상이 연내 타결을 목표로 2월부터 시작됐다. 미국과 EU 등 강대국들도 코소보 독립을 지지, 코소보가 세르비아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세르비아의 자존심을 건 저항도 만만치 않다. 코소보는 이슬람 교도인 알바니아계 주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면서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인에게도 종교적 성지이다.

세르비아의 입장으로서는 몬테네그로의 독립보다도 코소보를 잃게 될 경우 더 큰 상처를 받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유럽의 분리주의 운동 열기 고조

몬테네그로 독립을 계기로 유럽에서는 그간 잠복해있던 분리주의 운동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스페인의 바스크와 카탈루냐 지방,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스르프스카 자치공화국, 이탈리아령 남티롤, 몰도바의 트란스드니스터, 그루지야의 압하스 공화국 등이 소수민족들의 독립 운동의 불씨를 안고 있는 지역들.

AFP통신은 대(對)스페인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는 바스크와 카탈로냐의 분리주의자들은 몬테네그로의 독립을 자신들의 분리 활동에 최적의 징조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트란스드니스터, 압하스, 남티롤 등의 정치 지도자들은 몬테네그로의 국민투표나 이와 유사한 방식을 모델로 독립 추진을 본격화하겠다고 시사하고 있다.


문향란 국제부 기자 iam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