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대화 통해 위기국면 벗어나려는 의도… 발사 '키'는 군부에

전 세계에 월드컵 열기가 가득한 가운데 한반도 상공은 북한미사일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먹구름을 걷어내는 해법을 놓고 당사국들이 이견을 보이면서 한반도를 넘어 태평양까지 돌출성 폭우라도 쏟아질 판이다.

먹구름은 지난 5일 일본 언론이 북한 대포동 2호 시험발사 준비를 언급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미국은 북한이 조만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 불안감을 키웠다.

북한이 느닷없이 미사일 카드를 꺼낸 배경에 해석이 분분하고 미ㆍ일의 호들갑스런 몸짓도 수상한 구석이 있어 북한미사일 문제는 짙은 안개 속에 비상등이 켜진 형국이다.

우선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대해서는 미국의 압박과 제재에 맞서려는‘벼랑끝 전술’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즉 북한이 1998년 8월 중거리 미사일(대포동 1호)을 일본열도 넘어 태평양으로 발사해 세상의 주목을 받은 뒤 이듬해인 99년부터 대포동 2호 발사를 준비하는 동작만으로도 미국에게서 얻은‘큰 떡’을 이번에도 다시 받아내려 한다는 것이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는 “98년에 대포동 1호를 발사했을 때나 지난해 핵보유 선언과 같이 북한이 벼랑끝 전술을 사용했을 때 오히려 협상 국면이 조성됐던 과거의 경험이 있다”며 “이번에도 ‘미사일 발사’라는 전술을 협상 국면으로의 전환을 위한 카드로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98년 미국의 클린턴 정부는 페리 특사를 파견해 북한과 협상에 나섰고 북한이 미사일개발에 모라토리엄(중단)을 선언하는 조건으로 대북 경제제재를 부분적으로 해제하는 데 합의했다.

중동에 쏠린 미국의 관심 유도 전략

북한이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위기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미사일 문제를 의도적으로 부각시켰다는 해석도 같은 맥락이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북한이 미사일로 위협하는 것은 중동에 쏠린 미국의 관심을 유도함과 동시에 북미 양자 직접 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압박카드로써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6ㆍ1 담화’를 통해 미국측 수석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을 다시 촉구한 것이나 한성열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가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 시험할 권리가 있다면서도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한 것은 그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큰 떡과 북미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북한의 ‘미사일 모험’은 성공할 것인가.

일단 부정적인 견해가 일반적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전문가는“99년의 클린턴 정부와 지금의 조지 W 부시 정부는 전혀 다르다”면서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불량국가들에 대한 미국 사회의 최소한의 관용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998년은 미국이 핵 문제로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경제제재까지 동원해 북한을 옥죄고 있지는 않았다”면서 “현재 부시 행정부의 기조는 ‘대북 적대 정책’이라는 것이 큰 차이”라고 말했다. 북미간 직접대화나 큰떡은 가능성이 낮다는 설명이다.

반면 김근식 교수는“이란 핵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이라크 전쟁의 장기화로 여론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부시 정부가 ‘더 세게’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부시 행정부가 이란과 마찬가지로 북한과 직접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 군부를 비롯해 최고위층과 선이 닿아 있는 베이징의 북한전문가는 전혀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다.

“현재 한국의 언론들이 미국의 태도에 따라 미사일 문제나 북한의 입장이 달라질 것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실제‘키(key)’는 북한이 쥐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미사일 카드가 상투적인‘벼랑끝 전술’이 아니라 고도로 계산된, 그리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꺼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여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보다는 군부에 달려있으며 군부는 미국의 경제제재, 인권을 통합 압박 등에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장기로 치자면 북한이‘장’을 부른 겁니다. 다음 수는 미국이 둬야 하는데 마땅히 둘 자리가 없는 형국이지요.”

즉 북한 군부는 미국의 태도를 봐가며 미사일 발사 시기를 조절하고 있는데 미국이 먼저“북한이 곧 미사일을 발사한다”고 세계에 공표해 북한이 미사일 발사시기를 늦출 경우 미국은 거짓말을 한 것이 되고 발사하더라도 명분을 갖추게 되면 미국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김정일 위원장을 타깃으로 했다면 압박전술이 통할지 모르지만 군부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2004년 미국이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폭격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이 백두산 아래 삼지연 비밀 대피소로 한 달 이상 피신한 데 반해 군부는 대미 항전 의지를 불태웠다고 전했다. 대화든 큰 떡이든 이번에는 미국이 먼저 언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북한 군부 입김이 최대 관건

북한이 미사일을 과연 발사할 것인지, 발사한다면 사정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도 관심사다.

고유한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준비는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에 대한 초대장”이라면서 “당장 시험발사 가능성은 없고 이것을 카드로 삼아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도“북한은 미국과 일본이 위기를 조성하고 있으며 자신들은 대화하려 한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면서 “발사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아 발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베이징의 북한전문가는“미사일 발사가 김정일 위원장이나 행정 관료의 손에 있다면 유예도 가능하겠지만 군부의 영향권에 있어 군부를 설득 할만한 ‘대가’가 없으면 발사하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미사일을 자위 수단으로, 특히 미국이 전방위 제재로 생존권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미사일 발사를 통해 자위권을 대내외에 알리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성열 차석대사가 미사일과 관련해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도‘발사를 위한 명분쌓기용’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미사일은 러시아 영공을 지나 일본 열도를 넘어 미국과 가까운 태평양으로 날아갈 것입니다. 당사국인 러시아가 침묵하고 있는 이유를 헤아려 보세요.”

러시아는 남북한 및 미ㆍ일-중의 파워게임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 자국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묵인하고 있으며 설령 미ㆍ일이 미사일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게 그는 덧붙였다.

대포동 2호의 사정거리는 최소 6,000㎞, 최대 1만2,000∼1,5000㎞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KDA) 북한연구실장은 “98년 대포동 1호 발사 후 8년이 지난 현재 북한은 사거리 6,700㎞ 이상의 3단계 추진체 미사일을 개발한 것으로 미국 정보당국이 판단하고 있다”며 “사거리 기준으로 보면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거리 5,000㎞가 넘는 탄도미사일) 보유국에 들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일부 국제문제 전문가는“미국과 일본이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이면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어체제(MD) 구축을 비롯한 군비증강과 군수산업 확대를 고려한 측면이 있다”면서 “한국은 북한 미사일에 냉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제재 숨통 남한이 터줘야

북한과 10년 이상 무역을 해 북한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미국과 일본이 경제제재를 비롯해 전방위적으로 북한을 옥죄는 상황에서 남한이 유일한 통로가 될 수 있다”며 “미ㆍ일의 눈치를 보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그‘통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8ㆍ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한 북한 대표단이 파격적으로 국립현충원을 방문한 것이나 2004년 7월 출범한 ‘고려민족경제위원회’가 산하에 ‘임가공복무총국’을 둔 점, 2005년 7월에 제정ㆍ공포한 ‘북남경제협력법’등은 북한이 남한과의 대규모 경협을 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남북경협이 활성화돼 북한이 미국의 제재에서 벗어나거나 압박을 줄일 수 있다면 핵이나 미사일을 통한 대외 전략에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베이징의 북한전문가 도 “북한은 아직도 군(軍)의 영향력이 구석구석 미치는 병영국가 형태로 군이 자국민을 먹여살릴 수 있는 권한과 자부심을 부여할 수 있으면 군사적 모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미사일을 발사하면 쌀ㆍ비료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속좁은 생각과 단견으로는 남북관계 발전은커녕 국제무대에서 조연조차 제대로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북한 미사일 일지

▲ 1975 = 중국서 액체연료 사용 탄도미사일 DF(동풍)-61 구입해 미사일 연구 시작
▲ 1981 = 이집트서 스커드 B형(R-17E) 미사일 및 발사대 도입해 역설계 통해 모방생산 착수
▲ 1984 = 스커드 B형 복사형인 사거리 280㎞의 개량형 스커드 A형 시험발사 성공
▲ 1985 = 사거리 320∼340㎞의 개량형 스커드 B형 미사일 개발
▲ 1989 = 사거리 500㎞의 스커드 C형 미사일 개발
▲ 1993.5 = 중거리탄도미사일 '노동 1호' 동해상 발사(사거리 1,300㎞ 추정)
▲ 1998.8 = '대포동 1호' 발사(북한에서는 '광명성 1호' 인공위성 발사 주장. 사거리 1,800~2,500km 추정)
▲ 1999.9 =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선언(미국이 대북 경제제재를 완화한다는 북미합의 결과)
▲ 2000.7 = 김정일 국방위원장 "위성 대리발사 시 미사일계획 재고하겠다"고 공표
▲ 2001.5 = 김정일 국방위원장 "2003년까지 시험발사 유예하겠다"고 천명
▲ 2002.9 = 북ㆍ일 정상회담'평양선언'서 "미사일 발사 보류를 2003년 이후로 더 연장할 의향이 있다"는 내용 삽입
▲ 2003.2 = 동해안에서 동해상으로 중국제 실크웜 추정 지대함 미사일 시험 발사
▲ 2005.5 = 北, 동해상에 소련제 단거리 미사일 SS21 개량형인 KN-02 발사
▲ 2006.5 = 日언론, 북한 대포동 2호 시험발사 준비 언급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