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대선 결과 불복종… 후유증 커질 듯

▲ 멕시코 선거관리위원회 위원들이 투표용지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멕시코의 앞날이 뿌옇다. 2일(현지시간) 치러진 대통령(임기 6년)선거에서 좌ㆍ우파 후보가 엎치락뒤치락하더니 결국 22만표(득표율 0.57%)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집권 우파 국민행동당(PAN) 펠리페 칼데론(43) 후보는 5일 공식 집계에서 35.88% 득표율을 얻어 좌파 민주혁명당(PRD)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52) 후보(35.31%)를 가까스로 이겼다.

선거는 끝났지만 치열했던 만큼 후유증 또한 크다.

멕시코 국민들은 좌우로 두 동강이 나버렸다. 게다가 오브라도르 후보 측이 개표 결과에 불복종, 선거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힌 상태라 최종 결과가 나오는 9월 6일까지 멕시코는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

오르락 내리락 롤러코스터 승부

이번 멕시코 대선은 선거 전부터 개표 과정 내내 살얼음을 걷는 듯했다.

유세 기간 동안은 오브라도르 후보가 앞서갔다. 멕시코시티 시장 시절 검소한 생활 태도에다‘모두의 선을 위해, 가난한 사람 먼저’라는 정치 신조로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던 오브라도르는 한때 지지율에서 칼데론 후보를 10% 포인트 이상 여유 있게 따돌렸다.

멕시코 역사상 첫 좌파 정권 탄생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던 그였지만 펠리페 후보 측이 ‘오브라도르=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라는 네거티브 전략을 펼치면서 지지율 격차가 빠르게 줄기 시작했다.

펠리페 후보 측은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 후 민영화했던 기업을 다시 국유화하는 등 급진 정책을 펴면서 나라를 불안하게 만들었다며 오브라도르 후보가 집권하면 멕시코도 그렇게 될 것이라며 불안감을 조장했고 그 전략이 먹혔다.

투표 직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2% 포인트(오브라도르 36%- 펠리페 34%)까지 좁혀졌고 박빙 승부가 점쳐졌다.

투표 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잠정집계(전체 13만 555개 투표소에서 시민 진행 요원들이 개표한 후 선관위에 알린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였다. 전체 4,100만 표 중 펠리페 후보가 겨우 1.04% 포인트(40여 만 표)를 앞선 것. 전체 투표소 중 7,281곳을 뽑아 개표한 표본 집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멕시코 선거 시스템은 1990년대 초반 만들어졌는데 이후 치러진 대선(1994년, 2000년)에서는 잠정 집계와 표본 집계만으로도 후보 간 격차가 상당히 컸던 까닭에 당선자를 확정했고 패한 후보측에서도 별다른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

이번에 달랐다. 1, 2위 후보 간 표차가 크지 않았던 탓에 선관위는 처음으로 공식 집계에 들어갔다. 이는 전국 투표소에서 잠정 집계하면서 만들었던 선거결과 보고서를 300개 지역 선관위에서 꼼꼼히 따져보는 재검토 형식이다.

5일 선관위가 진행한 재검토는 드라마였다.

공식 집계가 시작하면서 선두를 달린 것은 칼데론 후보가 아닌 오브라도르 후보였다. 오브라도르는 줄곧 2% 안팎으로 칼데론 후보를 앞서 갔고 선관위가 공식 집계를 97% 진행했을 때까지도 1위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칼데론 후보가 격차를 좁혀갔고 결국 개표율이 97.7%를 지나는 순간 역전에 성공했다. 개표를 시작한 지 20시간이 지난 6일 새벽 4시7분에 일어난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오브라도로 후보 결과 불복, 소송 제기

역전 드라마를 바라봤던 일부 국민들은 “독일 월드컵 경기보다 더 흥미진진하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이나 전문가들은 초박빙 결과에 대해 “나라를 위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고 걱정하고 있다.

당장 오브라도르 후보측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선거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재판관 7인으로 꾸려진 선거재판소가 선관위 개표 결과가 적법한지 여부를 최종 판결하는 9월 6일까지 앞으로 두 달 동안 멕시코는 법적 공방으로 시끄럽게 생겼다.

2001년 미국 대선 당시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와 엘 고어 민주당 후보 사이에 일어난 법적 공방으로 온 미국이 들썩였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특히 오브라도르 후보 진영이 요구하는 4,100만 장 전체 투표지에 대한 재검표 요구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루이스 카를로스 우갈데 선관위원장은 “첫 개표가 이뤄져 이미 봉인된 투표함을 다시 여는 것은 명백한 집계 오류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며 좌파 주장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날 재계도 대선에서 부정 행위가 일어났을 가능성은 없다며 모든 투표지에 대한 재검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대선에서 3위에 머무른 제1 야당 제도혁명당(PRI)도 개표 결과를 수용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상태다.

그러나 오브라도르 후보 진영은 물러설 수 없다며 비장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브라도르 후보는 공식집계 결과 발표 후 “우리는 승리했고 법정에서 이를 증명할 것”이라며 지지자들에게 집회를 열어 항의 시위를 벌일 것을 촉구했다.

특히 일부 강경파는 선거재판소 역시 믿을 수 없다면서 “거리로 나가자” 며 대규모 거리 시위를 주장하고 있어 자칫 폭력 사태로 번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많다. 국제기구에 제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어 자칫 국제문제로 커질 가능성도 있다.

여섯 달 동안 이어진 선거전에서 지지후보에 따라 좌우로 갈라졌던 국민들 역시 선거 결과를 쉽사리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이미 개발된 북부 지역은 시장 경제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칼데론 후보를, 개발이 안된 남부는 ‘가난한 자의 구세주’라는 별명을 가진 오브라도르 후보를 절대적으로 지지했고 실제 투표 결과 역시 남북으로 확연히 구분지어졌다. 지역 간 갈등의 골이 점점 더 깊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칼데론 당선자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도 바로 갈라진 멕시코를 어떻게 추스르느냐 하는 것.

그는 최종 개표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자신이 당선될 경우 오브라도르 후보를 각료로 쓸 것이라며 정치 세력 사이에 화해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칼데론 후보측은 연정 구성을 위해 다른 정당과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남미 좌파 바람 잦아드나

멕시코 대선이 관심을 끌었던 이유 중 하나는 지난해부터 중남미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좌파 바람이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까지 불어 닥치는 것이냐 하는 것 때문이었다.

오브라도르 후보가 당선될 경우 캐나다와 함께 영원한 미국 편으로 여겨졌던 멕시코에서 첫 좌파 정권이 나올 경우 미국의 중남미 정책 전반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예측도 많았다.

게다가 오브라도르 후보는 미국-캐나다와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고 미국산 콩, 옥수수 수입도 금지하겠다고 밝히며 미국을 곤혹스럽게 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래서 멕시코 대선이 좌파 바람이 거세지느냐 마느냐 하는 분수령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었다. ‘21세기형 사회주의’를 내건 차베스 대통령과 12월 대선으로 집권에 성공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주도하는 좌파 바람은 급진과 중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5월 콜롬비아 대선에서 친미 강경 보수주의자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지난달 페루 대선에서 ‘제2의 차베스’라 불리던 급진 좌파 오얀타 우말라 후보가 중도 좌파 알란 가르시아 전 대통령에 역전패하면서 급진 좌파 돌풍은 한풀 꺾였다.

▲ 7월 2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 시티에서 유세에 나선 집권 우파인 국민행동당 펠리페 칼데론 후보가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7월 2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 시티에서 유세에 나선 집권 우파인 국민행동당 펠리페 칼데론 후보가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단 친미 성향의 칼데론 후보가 이기면서 중남미 좌파 바람은 확실히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대외 정책이나 경제 정책에는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여 미국으로서도 한숨을 돌릴 수 있다.

다만 미국-멕시코 국경 문제가 걸린다. 600만 명에 이르는 멕시코 사람들이 국경지대에서 필사적으로 미국행을 시도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주 방위군까지 투입, 멕시코에서 넘어 오는 불법 이민자 통제를 강화하고 추가로 장벽 건설을 추진하면서 멕시코 국민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새 대통령으로서는 국민 정서를 감안하면서도 미국과 맞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멕시코 수출품 중 90%가 팔리는 곳이 미국이고 미국에 있는 멕시코 출신 이민자들이 고국으로 보내는 돈이 해마다 200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미국은 멕시코를 먹여 살리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