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헤즈볼라, 이스라엘 공격으로 아랍권 내 정치적 위상 높아져이스라엘 올메르트 총리, 온건정책 비난 피할 절호의 기회로 활용

이스라엘과 아랍권이 다시 붙었다. 이번에는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와 레바논 2곳에서 동시에 전투가 벌어졌다. 2개 전쟁 동시수행은 미국이 오랫동안 견지해온 국방전략의 전매특허였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대 테러전을 수행하고 있는 것도 이 개념의 일환이다.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이 군사전략에서도 미국의 흉내를 낸 것일까. 아랍권에 비해 압도적인 이스라엘의 화력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상은 좀 다르다.

2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모양새는 비슷하지만, 주도권을 쥐고 공세적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과 달리 이스라엘은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간 측면이 없지 않다. 내키지 않은 전쟁을 하는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중동 분쟁이 주목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으레 인근 아랍국가를 때려 부수는 이스라엘과, 이로 인해 민간인이 대거 희생됐다며 국제사회의 비난을 유도하는 아랍권의 해묵은 구도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분쟁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에 맞서고 있는 시아파 무장세력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정부의 정략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불씨가 확산됐다고 할 수 있다.

헤즈볼라, 이스라엘과의 계산된 맞장

먼저 헤즈볼라를 보자.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군에 의해 거의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을 줄 알면서 왜 이스라엘에 맞장을 뜬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맨처음 가자지구에서 터졌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싸움이 왜 레바논으로까지 번졌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헤즈볼라는 12일 이스라엘군을 기습 공격해 이스라엘 병사 8명을 사살하고 2명을 납치했다. 이스라엘군이 하마스에 의해 납치된 자국병사 1명의 석방을 요구하며 가자지구에서 대대적인 공습을 가하던 와중이었다. 이스라엘군 병사의 무조건 석방을 명분으로 한때 철수했던 가자지구를

맹폭하던 이스라엘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이 테러에 대한 응전이라든가 정치적 이유를 들어 분쟁을 유발한 과거와 달리 헤즈볼라가 먼저 도발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인질극을 벌이며 이스라엘군의 군사 개입을 유도한 헤즈볼라는 다목적 카드를 쥐고 분쟁을 이끌고 있다.

먼저 이스라엘이 50여 년간 지켜온 아랍권과의 무력충돌은 국경 밖에서'라는 원칙을 일거에 뒤흔들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군의 대대적 공습에 맞서 이스라엘의 제3의 도시인 북부 하이파에 연일 로켓 공격을 가했다. 이 공격으로 이스라엘 민간인도 다수 희생됐다. 아랍권 민간인만 피를 보는 '아랍 영토내에서만 하는 손해보는 싸움'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민간인이 희생됨으로써 이스라엘 정가에 분쟁에 대한 정치적 논란을 촉발시킨다는 속셈도 내포돼 있다. 사실 이스라엘 정부는 헤즈볼라가 뜻밖에 자국 영토로 미사일 공격을 해오자 당혹해하고 있다. 헤즈볼라가 이렇게까지 반격해 올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헤즈볼라가 확전을 유도한 데는 이처럼 군사적 측면에서의 자신감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지금까지 헤즈볼라의 주요 무기는 사정거리 25km 이하의 단거리 로켓포가 고작이었다. 이것으로는 양측 완충지역을 넘어 이스라엘 역내로 공격을 감행하기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국경에서 30~35km 떨어진 하이파 중심부와 티베리우스까지 수천 개의 로켓포(이스라엘측 주장)를 쏘아 올렸다. 또 이스라엘 군함에 적지않은 피해를 입히는 등 상당한 장거리 타격능력을 과시했다.

이 미사일은 헤즈볼라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란 정부가 제조에 관여했을 것이라는 게 미국 등의 시각이다. 헤즈볼라는 자신의 달라진 공격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이스라엘군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일방적인 우세를 점할 수 없다는 경고를 보낼 필요가 있었다.

핵문제로 서방과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는 이란 정부 입장에서는 이란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한층 복잡한 국제정세의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위하는 효과도 노렸음 직하다.

헤즈볼라의 아랍권내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헤즈볼라가 얻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소득이다.

1982년 창설된 이래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주도했던 헤즈볼라는 2000년 5월 이스라엘이 19년에 걸친 레바논 남부 점령을 포기하고 철군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를 계기로 450만 레바논 국민 중 3분의 1인 150만 명의 지지를 받으면서 현재 14명의 의원과 장관 1명을 보유한 제도권의 유력한 정치 결사체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의 이라크 전쟁, 미국의 중동에서의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외교적 공세로 인해 아랍권 왕정국가들이 미국에 대해 소극적, 수세적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이스라엘과의 분쟁은 헤즈볼라의 아랍권 내 위상을 더욱 선명히 하는 정치적 이득임에 틀림없다.

헤즈볼라의 지도자 셰이크 하산 나스랄라(45)의 리더십과 투쟁력도 헤즈볼라의 도덕적 명분에 힘을 보태주는 요인이다.

그는 1997년 9월 당시 18세였던 아들 하디가 이스라엘과 싸우다 죽었을 때 "이제 아들을 잃은 다른 부모의 눈을 바라볼 수 있게 돼 자랑스럽다"고 연설해 레바논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녀를 안전한 유럽으로 보내던 레바논의 다른 이슬람 지도자와는 달랐던 그의 면모가 14년째 헤즈볼라를 이끄는 힘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올메르트 총리 국면전환 호기

이스라엘은 어떤가. 헤즈볼라의 도발이 있기 전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병사 석방과 하마스의 로켓 공격 중단 등을 요구하며 3주째 가자지구를 폭격 중이었다.

그러나 하마스의 완강한 저항으로 진전이 없자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의 온건한 정책이 화를 불렀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군대 경험이 없는 신출내기 총리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인신공격성 비난까지 나돌았다.

야당은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와 요르단강 서안의 보안장벽 설치를 밀어붙인 것이 안보를 위해 적절한 것이었는가”라는, 아리엘 샤론 전 총리 시절 단행됐던 중동정책까지 들먹이며 올메르트 총리를 압박했다. 한마디로 올해 초 권좌에 오른 올메르트 총리의 최대 위기 국면이었다.

이 와중에 헤즈볼라가 도발을 감행해 왔으니 올메르트 총리로서는 일거에 국면을 전환함과 동시에 이스라엘 안보의 골칫거리를 없앤다는 공세를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는 헤즈볼라가 오히려 올메르트 총리의 구원투수가 됐다”는 뉴욕타임스의 논평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올메르트 총리에게는 이번 분쟁이 자칫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 헤즈볼라와 달리 찜찜한 구석이다. 미국이 이라크전에 발목잡혀 적극적인 개입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어떤

명분이나 실리를 얻지 못한 채 장기전에 들어갈 경우 “민간인만 살상한다”는 국제적 비난과 고립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뉴욕타임스가 “지금 상황은 올메르트 총리에게 양날의 칼”이라고 한 것처럼 시간은 이스라엘 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황유석 국제부 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