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낙마 이어 '문재인 법무' 시끌… 당내 親노-非노 기싸움

▲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민정수석.
청와대 감독의 ‘왕의 남자’는 흥행도 하기 전에 상영 13일 만에 스스로 막을 내렸다. 주연의 자격이 관객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해 무대에서 내려온 탓에 당사자는 물론 그를 발탁한 노무현 대통령도 큰 상처를 남겼다. 줄잇는 논문 의혹으로 사의를 표명한 김병준 교육부총리 얘기다.

청와대 인사를 놓고 이번엔 또 다른 ‘먹구름’이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천정배 법무장관 후임에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점쳐지면서부터다. 청와대는 “인사권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며 “검증도 하지 않고 ‘코드인사’라고 무조건 배격하는 것은 문제”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노 대통령은 ‘문재인 법무’ 카드를 강행할 태세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문재인 카드’를 둘러싸고 친노-비노 진영 간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김근태 의장 등 당권파를 중심으로 “김병준 파동이 재연될까 우려된다”며 임명을 반대하는데 반해 친노 그룹은 “대통령의 고유한 인사권을 여론재판으로 몰아가서는 안된다”고 반박한다. 한나라당은 “특정인(노무현 사람) 기용은 중립성, 객관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반대한다.

8ㆍ15 광복절을 앞두고 노 대통령의 386 최측근인 안희정 씨도 주목의 대상이다. 8ㆍ15 특별사면에 안씨가 포함되느냐 여부 때문이다. 정가에서는 벌써부터 안 씨와 관련 ‘정무특보설’,‘대선 역할론’ 등 견해가 분분하다. 청와대는 우리당이 사면을 공식 건의할 경우 당·정 협의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논의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당에선 안 씨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은 “당으로서는 경제·민생사범만 (사면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정치인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반면 호남의 한 중진은 “희정(안희정)이는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이번이 아니면 안 된다”며 바람몰이에 나섰고 이화영ㆍ백원우ㆍ조정식 의원 등 당내 386 의원들도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강재섭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은 “특별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너무 광범위하게 이뤄지거나 자신들을 도와준 사람들만 사면하는 방식이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최근 일부 정부기관들은‘낙하산 인사’로 시끌시끌하다. 노 대통령의 대선 공신이나 측근들이 무더기로 정부산하기관의 감사로 내정된 데 따른 내부의 비판이 거센 탓이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상임검사로 내정된 386 공인회계사 김영환씨는 노조의 반발로 주주총회가 연기되는 사태를 겪었다. 이에 반해 노 대통령이 주례를 선 인연이 있는 김남수 전 청와대 사회조정2비서관은 전기안전공사의 감사로 안착했다.

김병준ㆍ문재인ㆍ안희정ㆍ김영환ㆍ김남수씨 등은 노 대통령이 변호사, 정치인, 대선 후보로 있을 때 인연을 맺은 대선의 공신들로 이른바 ‘노무현 사람들’, 시쳇말로 ‘盧의 남자’들이다. 노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그들이 수난을 받고 있다. 물론 일부는 아직까지 각 방면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盧의 남자’들은 누구며 요즘 무엇을 하고 있을까.

‘노무현 사람들’은 노 대통령의 출신지인 PK(부산ㆍ경남) 인맥, 변호사 시절 몸담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노 대통령이 1993년에 만든 ‘자치경영연구원’출신, 386 참모진,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멤버,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인맥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김병준 교육부총리는 자치경영연구원 출신으로 노 대통령에 이어 연구원 이사장을 맡아 새 정부 혁신 태스크포스팀을 책임졌다. 청와대 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 정책실장 등을 거치면서 정부 출범 초기부터 국정운영 기조와 각종 정책을 관장했다.

그밖에 자치경영연구원 출신으로는 우리당 염동연 의원이 사무총장을 지냈고,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가 이사로 있었다.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 원혜영 우리당 사무총장이 연구원을 거쳐 갔고 이광재, 안희정, 서갑원 등 386 참모진인 연구원 실무진으로 있었다.

문재인 전 민정수석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PK의 대표주자로 법무부장관 외에도 비서실장설이 나오고 있다.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은 노 대통령이 허심탄회하게 말을 나눌 정도이고 윤광웅 국방장관, 해수부장관을 지낸 허성관 광주과학기술원 원장 등도 노무현맨으로 통한다.

부산 386세대 3인방인 정재윤 국무총리실 전 민정비서관은 천호선 대통령 의전비서관의 뒤를 이을 예정이어서 최인호 국내언론비서관, 송인배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 등과 함께 청와대서 노 대통령을 보좌하게 됐다.

386 참모진은 대표적인 ‘노무현 사람들’이다. ‘좌(左)희정, 우(右)광재’로 386 침모진을 대표하는 안희정 씨는 사면 시점이 논란인 가운데 최근 우리당 386 의원들과 유럽에 다녀오는 등 정치적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광재 씨는 국정상황실장을 거쳐 17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 ‘의정연구센터’에 속해 실용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대선 때 맹활약한 이화영, 백원우, 윤로중, 최재성, 선병렬, 김태년, 조정식, 정청래 의원 등은 국회의원으로 변신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7ㆍ26 재보선에 출마(경기 부천), 고배를 들었다.

‘통추’ 멤버로는 6선의 김원기 의원을 비롯 참여정부 초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의원, 원혜영 사무총장, 이호웅ㆍ김원웅ㆍ김부겸 의원,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 등이 있다.

‘민변’ 출신으론 강금실ㆍ천정배 전 법무장관, 전해철 청와대 민정수석, 참여정부 1기의 박주현 국민참여수석, 이석태 공직기강비서관, 17대 국회를 통해 등원한 임종인, 최재천 의원 등이 있다.

노 대통령이 해수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인연을 맺은 ‘노무현 사람들’도 있다.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은 노 대통령이 해수부 장관 재직시 감사담당관과 총무부장을 역임했다. 직무감찰과 각종 인사 등의 실무를 담당하는 자리에서 노 대통령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문해남 대통령비서실 인사관리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해수부장관 시절 비서관으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다.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은 노 대통령이 해수부장관 시절에 인연을 맺어 참여정부 들어 장관(기획예산처)으로 발탁됐다. 탁월한 업무추진으로 노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아 '관료 속의 노무현 사람'으로 꼽힌다.

‘노무현 사람들’은 탄핵, 17대 총선, 전당대회 등의 정치적 부침과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시각차 등으로 여러 형태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번 김병준 파동과 문재인 전 수석의 거취를 둘러싼 당·청 갈등에도 노무현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당내 양축을 형성하고 있는 정동영 전 의장계와 김근태 의장계 의원들은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비판적이고 당·청관계에서도 ‘당 우위’를 강조하는 입장이다. 정동영계인 김한길ㆍ이강래ㆍ이종걸 의원 등 중도성향의 ‘바른정치연구회’와 김근태계인 이호웅, 장영달, 문학진 의원 등 진보ㆍ개혁성향의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광철, 유기홍 의원과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이 속한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와 이광재, 이화영 의원 등이 속한 ‘의정연구센터(의정연)’ 등은 노 대통령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정동영ㆍ김근태계의 대항마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모임은 정동영, 김근태 두 대권 주자로는 권력 재창출이 어렵다고 보고 제3의 후보를 모색하고 있다.

당의 균형추 역할을 자임하고 발족한 ‘소통과 화합의 광장’(광장모임)‘은 문희상, 유인태 의원 등 중진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모임은 ‘정동영, 김근태로는 대선 승리가 어렵다’고 인식한다는 점에서 친노 그룹과 그 맥을 같이 하지만 정계개편 등에서는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노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민평연ㆍ바른정치모임의 상당수 의원들이 노 대통령의 탈당을 추동하는 경향이라면 참정연ㆍ의정연ㆍ광장모임은 탈당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치권 화두가 되고 있는 정계개편과 관련 바른정치모임ㆍ민평연ㆍ광장모임은 민주당과의 통합 내지 연대에 긍정적이다. 고건 전 총리세력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참정연ㆍ의정연은 우리당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개혁후퇴라는 이유로 민주당은 물론 고건 세력과의 연대에 부정적이다.

▲ 열린우리당 386 의원. 왼쪽부터 한병도, 김태년, 서갑원, 이광재 의원.
▲ 열린우리당 386 소장파 의원들로 구성된 "한국경제, 이렇게 살리자" 의정연구센터 창립총회 및 심포지엄에 참석한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 김혁규 의원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종철 기자
▲ 열린우리당 386 소장파 의원들로 구성된 "한국경제, 이렇게 살리자" 의정연구센터 창립총회 및 심포지엄에 참석한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 김혁규 의원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종철 기자

문재인 전 수석의 법무부 장관 기용에 대해 민평연ㆍ바른정치모임은 반대 내지 소극적인 입장이다. 김근태 의장은 2일 “문 전 수석이 훌륭하고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장관 같은 고위직은 국민들이 어떻게 보는 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고 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특히 우리당 호남 의원들은 문 전 수석의 ‘부산 정권론’ 발언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반면 친노직계 의원들은 “당이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에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 이광재 의원은 “문제는 대통령 측근이냐가 아니라 자질과 능력”이라고 지적했다.

‘노무현 사람들’의 개별적인 차이도 정치권 안팎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호남을 대표하는 염동연 의원과 영남의 상징성을 띤 이강철 정무특보의 정치적 입장과 동선은 다르다. 친노직계인 안희정씨와 이광재 의원의 향후 행보에도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당에서 ‘노무현 사람들’은 아직 소수다. 당내 친노-비노 갈등, 당-청 파워게임에서 밀릴 가능성이 있다. 노 대통령 임기 말이라 현안이 생길 때마다 ‘노무현 사람들’은 강한 도전을 받고 대선레이스가 가속화할수록 분화에 휘말릴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예상보다 빨리지는 레임덕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 하는 것도 ‘노무현 사람들’에게 고민거리다. 노 대통령이 레임덕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면 그들의 분화 폭은 좁거나 오히려 응집력을 발휘, 재집권에 힘을 보탤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는 ‘노무현 사람들’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거나 미미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여정부를 함께 이끈 ‘노무현 사람들’은 청와대, 정부기관 등에 있거나 정치 현장에서 뛰고 있다. 또 일부는 본래의 직장으로 되돌아가 본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는 노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