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목마' 자청한 영국 국적 파키스탄계 무슬림 액체폭탄 항공기 폭파 계획 거사 직전 적발… 세계가 "휴"

▲ 8월 10일 영국 경찰이 테러 용의자들이 살고 있는 런던 동쪽 웰스암스토우의 한 주택을 수색하고 있다. / 로이터=뉴시스
‘아프가니스탄-미국에서 파키스탄-영국으로’.

제2의 9ㆍ11 테러가 거사 막판에 분쇄됐다. 9ㆍ11 테러 5주년을 한 달 정도 남긴 10일 영국 당국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여객기 10대를 공중폭파하려던 무슬림 24명을 1년에 가까운 치밀한 추적 끝에 체포했다. 영국에서 대규모 테러 음모가 적발된 것은 2003년 두 차례, 2004년 두 차례에 이은 다섯 번째. 지난해 7월 7일에는 런던의 지하철과 버스에서 자폭테러로 52명이 희생된 ‘성공한 테러’도 있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을 근거지로 미국을 공격한 게 제1차 9ㆍ11 테러였다면, 최근의 잠재적인 제2 테러는 파키스탄계 무슬림이 영국을 상대로 벌이는 테러로 성격이 바뀌었다. 7ㆍ7 테러도 런던에 거주하는 영국 국적의 무슬림들이 저지른 자생적 테러였다.

알 카에다가 영국에서 빈발하는 테러 음모에 어떤 형태로 개입하고 있는지는 정황과 추측만이 무성할 뿐 드러난 물증은 없다. 따라서 초점은 알 카에다라는 정형(定形)의 테러단체가 아니라 영국 국적의 무슬림이 왜 자생적 테러리스트로 변질됐으며, 자생적 테러의 악순환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에 모아진다.

이날 체포된 24명(한 명은 무혐의로 석방됨)은 대부분 파키스탄 이민 2, 3세로 영국에서 태어났다. 나이는 30세 이상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1명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30세 미만의 젊은이들로, 이중 6개월된 자녀를 둔 주부를 포함해 여성도 2명 있다. 용의자 중 최소 3명은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피부색만 다를 뿐 여느 런던 시민과 다름없는 이들이 은밀히 9ㆍ11 테러를 능가하는 대참사를 착착 진행시켜 왔다는 것이 끔찍스럽다.

미국행 항공기가 테러 대상

이들은 체포된 다음날인 11일을 최종 ‘리허설’로, 16일을 D-데이로 계획했다. 테러 대상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콘티넨탈 등 미국 항공사로 도착지가 뉴욕, 워싱턴, 보스턴,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인 여객기였다. 이들은 10대의 항공기에 3명 정도씩 분승해 대서양 상공이나 도착지 도시 인근 상공에서 여객기를 공중 폭파해 인명피해를 극대화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번 테러에는 과거 테러에 주로 이용됐던 기체ㆍ고체 폭탄 대신 액체폭탄을 사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세계를 더욱 놀라게 했다. 이번 테러가 성공했다면 2,700여명이 희생된 9ㆍ11 테러보다 더 참혹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는 게 언론들의 분석이다.

그럼 이들은 왜 제2의 조국인, 자신들이 시민권을 획득한 영국을 테러무대로 삼으려 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영국에서 무슬림들이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는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워싱턴포스트가 13일 ‘영국이 무슬림의 분노를 생산하는 인큐베이터가 됐다’는 제목으로 보도한 기사는 여러 면에서 시사적이다. 이 신문은 무슬림들의 극단주의 경향은 영국 정부의 일방적 외교정책과 경제적 차별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키스탄 등 과거 영국 식민지에서 이민을 와 형성된 영국 내 무슬림 공동체는 공식적으로 160만 명이지만 실제는 2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16~24세 젊은층의 실업률은 28%로, 같은 또래 젊은이들의 전체 평균 실업률 12%보다 두 배가 훨씬 넘는다.

여기에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푸들’이라는 비아냥을 받는 토니 블레어 총리의 일방적인 반 이슬람 정책이 무슬림들에게 불러일으키는 분노와 절망이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키우는 토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9ㆍ11 테러가 터진 2001년부터 올 6월까지 ‘테러리즘 방지법’에 의해 체포된 사람은 모두 1,047명으로 이중 혐의가 인정된 경우는 불과 158명이었다. 체포된 사람 중 무슬림이 몇 명인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무슬림이 대다수를 차지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영국 시민이지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과거의 식민지 시대와 별 다를 바 없는 차별이 이들을 점점 극단으로 내모는 폭력의 씨앗이다.

일방적 외교정책·경제적 궁핍 등이 원인

이들이 알 카에다 조직원이냐 아니냐는 이런 점에서 부질없는 논쟁일 수 있다.

부시 정부가 대 테러정책에서 실패하는 근본적인 문제도 여기에 있다. 부시 정부는 영국 테러음모 적발 직후 “음모의 복잡성, 정교함, 국제적 규모, 용의자의 수 등으로 볼 때 알 카에다 수법과 특징을 답습하고 있다”며 알 카에다 배후설을 강하게 제기했다.

테러만 터지면 무조건 알 카에다의 소행으로 여겨진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해왔던 부시 정부의 지금까지의 대응으로 볼 때 그리 놀랄 만한 언급은 아니지만, 이번 경우는 당사자인 영국 테러 당국도 “아직 판단 내리기엔 이르다”며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의 안이한 인식을 더욱 부각시켰다.

▲ 8월 10일 영국 브리티시 항공 여객기가 헬스로우 공항에 착륙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이날 파키스탄계 테러 용의자들을 체포했다. / 로이터=뉴시스
▲ 8월 10일 영국 브리티시 항공 여객기가 헬스로우 공항에 착륙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이날 파키스탄계 테러 용의자들을 체포했다.
/ 로이터=뉴시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이번 테러 기도가 알 카에다에 의해 조종됐다고 보는 것은 복잡한 국제적 움직임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 파괴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알 카에다는 이제 없다”는 등의 분석을 내놓으며 “알 카에다는 테러조직의 단계를 넘어 반미로 조직과 자금을 충원하는 사회운동의 단계로 성장했기 때문에 조직의 리더를 제거하려는 단선적인 테러 대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관리들조차 아프간 전쟁으로 ‘초기 알 카에다’에는 이겼을지 모르나 자생적 테러리스트로 변모해 ‘트로이 목마’가 되려는 진화한 알 카에다와의 싸움은 이길 수 없다고 실토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던져준 실체적 위협은 액체폭탄의 등장이다.

제조나 운반은 용이하면서 탐지는 어려운 액체폭탄이 테러 도구로 가동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세계 각국의 보안 대책은 한층 난맥상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들은 액체폭발물을 스포츠 음료에 담아 반입해 기내 화장실에서 조립한 뒤 일회용 카메라의 플래시 장치나 MP3에 숨긴 기폭장치와 연결, 폭파시킬 계획이었다.

전문가들은 액체폭탄으로 잘 알려진 니트로글리세린, 니트로메탄, 니트로에탄, 메탈 니트레이트 등은 2~3리터의 소량으로도 비행기 측면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고 말하고 있다.

액체폭발물은 우리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악몽으로 남아있다. 1987년 미얀마 근해 안다만에서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한항공 폭파사건에 액체폭발물이 사용됐다. 당시 북한 공작원 김현희 등은 액체폭탄(PLX)이 담긴 술병과 일제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숨긴 C(컴포지션)4 폭약 등을 갖고 탑승, 기내 선반에 이를 두고 내렸다고 진술했다.

1995년에는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액체폭탄을 이용, 11대의 미국 여객기를 폭파하려던 ‘보진카 계획’이 사전에 필리핀 마닐라에서 발각되기도 했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