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동연·안희정·신계륜 등 경선후보 접촉 물밑 행보 분주靑 정무팀 강화… 盧 대통령, 대선 챙기기 나설지 주목

“선장이 안 보인다고 해서 너무 초조해 할 필요 없다. 당을 잘 지키고 있으면 좋은 선장이 탈 수도 있고 내부와 외부의 사람이 공정한 조건에서 경선도 하고 선장을 정하면 좋은 기회가 올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8월 6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청와대 만찬에서 거론한 ‘외부선장론’의 골자다.

당시 ‘외부선장론’은 대선레이스와 연계, 다양한 해석과 함께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왔다. 특히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정동영ㆍ김근태 전·현직 당의장측은 ‘노심(盧心)’을 파악하느라 부심했다.

친노 인사들은 “외부선장 영입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우리당이 튼튼해져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라며 “노 대통령의 후계구도와 정권재창출 시사는 억측에 불과하다”고 강조했지만 야당과 비노(非盧) 진영에서는 의심을 풀지 않았다.

외부선장론 다시 꿈틀

이후 수면 아래로 잠복한 ‘외부선장론’ 은 최근 친노(親盧)성향 여권 인사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친노 인사들이 직접 ‘튼튼한 배’를 만들려 하고 있고, 외부 인사를 선장 후보로 배에 태우려는가 하면, 노 대통령은 전함의 선두에서 ‘진군’의 나팔을 부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노 대통령이 당·청 간 소통을 통해 하반기 국정을 장악하고 우리당보다 확장된 틀로 범여권의 대선 구도를 관장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친노 진영이 당·청 장악과 때이른 대선 전선에 뛰어든 것은 당내 구조와 꿈틀대는 대선지형과 맞물려 있다.

우리당은 5ㆍ31 지방선거 패배 후 정동영 의장이 물러나고 김근태체제가 들어서는 과정서 당·청 갈등이 불거졌고 노 대통령의 6월 21일 국회 연설 취소와 김병준ㆍ문재인 인사 문제로 충돌하면서 파국으로 치달았다.

"오픈 프라이머리 선점 전략"

청와대의 양보로 가까스로 위기는 넘겼지만 노 대통령측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친노 세력의 결집과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논의 선점으로 대선 구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외부선장론’을 언급하기 며칠 전 친노직계 의원들과 접촉했고, 친노직계이면서 민주당 통합론자인 염동연 의원은 8월 6일 만찬에서 ‘선(先)자강론’으로 화답했다..

노 대통령의 386 측근으로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백원우 의원은 3일 뒤인 9일 ‘오픈 프라이머리’도입을 공론화하는 토론회를 개최, ‘외부선장론’에 힘을 실었다.

김혁규, 이화영, 백원우, 이광재 등 친노 성향의 ‘의정연구센터’소속 의원들은 8월 16일 모임을 갖고 대선 승리를 위한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내 대표적 친노그룹인 ‘국민참여1212’도 이날 ‘1219 포럼’ 창립식을 개최하고 차기 개혁정권 창출 의지를 다졌다. 국참은 노 대통령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 씨와 배우 명계남 씨,노 대통령의 후원자인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 등이 주도하고 있고 우리당 의원 30명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우리당 개혁성향 모임인 참여정치실천연구회(참정연, 대표 김형주)가 7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오픈 프라이머리’를 놓고 토론회를 벌인 점도 주목된다. 참정연은 그동안 기간당원 문제로 오픈 프라이머리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왔었다.

노 대통령이 최근 정무팀을 강화한 것은 당·청 간 소통을 넘어 당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정가에서는 노 대통령이 당ㆍ청 분리 원칙을 깨고 2003년으로 되돌아갔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또한 이강철 정무특보 외에 김병준 전 부총리, 문재인 전 민정수석, 신계륜 전 의원, 안희정 씨 등이 특보 물망에 올라 새 정무팀이 사실상의 ‘대선기획단’이 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노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신계륜 전 의원과 386 최측근 안희정 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신 전의원은 2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팬클럽 ‘신계륜을 사랑하는사람들의 모임’창립행사를 갖고 범여권의 통합에 나설 것을 밝혀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 전 의원이 민주당 의원은 물론, 고건 전 총리가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부시장을 지내는 등 막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반(反)한나라당 세력 연대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신계륜·안희정 모종 임무?

▲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8월 3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의원 워크숍에서 서로 인사하고 있다.

안희정 씨는 386세력을 네트워킹하면서 여당과 여권 내 친노그룹을 잇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에서는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여할 대선 후보들을 접촉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당에서는 안 씨가 당 부설 열린정책연구원에 적을 두고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설 것이라고 관측도 있다.

호남의 천정배 의원과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도 주목된다. 천 의원은 7월 25일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나 당에 복귀한 뒤 정중동(靜中動)의 행보를 해왔다. 정가에서는 천 의원이 당·청 간 가교 역할을 하면서 정동영ㆍ김근태측이 좌우해온 당에서 노 대통령을 대신해 균형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천 의원은 8월 이후 최근까지 전국을 누비며 각계 각층 인사들을 만났다. 일각에서는 천 의원이 당 의장을 맡아 호남 민심을 추스리면서 정동영 전 의장을 대신해 호남의 맹주로 부상, ‘오픈 프라이머리’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돌고 있다.

정세균 장관은 연말쯤 당에 복귀, 대선 후보로 나서거나 당 의장에 도전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부에선 정 장관이 친노 호남 좌장격인 염동연 의원과 함께 고건 진영에 ‘트로이 목마’로 들어가 고 전 총리가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여토록 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1일, 우리당 재선급 상임위원장들과 만찬 모임을 가진 자리에서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면서 “다만 민주적 절차가 무시되지 않도록 지켜보는 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일부 관계자들은 노 대통령이 민주적 절차를 거론한 것을 두고 ‘오픈 프라이머리’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대선후보 선출에 관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나아가 노 대통령이 새로운 경선 룰을 제시하고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서 ‘관리자’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 아니냐까지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노 대통령이 8월 이후 당·청 관계에서 청와대 우위를 강화하고 당 안팎에 친노세력이 포진하면서 머지않아 우리당에 노 대통령의 그림자가 깊고 넓게 드리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노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워낙 악화돼 있어 대선 지형에서 그의 영향력은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며, 이를 거스르고 친노세력을 앞세워 노 대통령이 나설 경우 당·청 간 대충돌은 불가피할 것이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