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으로 기존 질서 깨져… "일본·대만 등 핵무장 하나" 중국 초긴장

“북한이 국제사회의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멋대로 핵실험을 실시한 데 대해 중국정부는 단호한 반대 입장을 표시한다(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無視國際社會的普遍反對, 悍然實施核試驗, 中國政府對此表示堅決反對).”

지난 10월 9일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발표한 지 불과 2시간도 못되어 나온 중국 외교부 성명의 첫머리다.‘아랑곳하지 않고(無視)’와 제멋대로(悍然)‘란 단어 속에 중국의 분노가 물씬 배어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하자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에게 이는 ‘동북아 핵도미노’를 의미한다. ‘유령’과의, 공포와의 동거다. 중국은 일찍이 이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2003년 10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 방위 세미나에 참석한 중국 국방대학의 양이(楊義) 대교(大校, 대령)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사실이 확인되면 한국과 일본에서 어떠한 일이 발생할지를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두 국가는 핵무기를 보유하는데 불과 몇 개월 걸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는 핵실험을 통해서라야만 확인된다며 2005년 2월 10일에 있은 북한의 핵보유 선언을 ‘외교카드’로 애써 평가절하해 왔다. 그런데 이제 올 데까지 온 것이다.

한국과 일본, 대만은 경제력과 기술력에 있어 모두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특히 한국과 대만은 이미 1970년대와 80년대에 핵개발을 상당한 수준까지 추진한 전력이 있다. 세계 유일무이의 피폭국가 일본은 핵개발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강하다. 이들 3국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억제되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판도라 상자’ 속 일본의 핵개발 잠재력은 가공하다. 세계 3위의 원자력 대국 일본은 현재 핵무기 원료가 될 수 있는 플루토늄을 54톤이나 보유하고 있다. 가동 중인 52기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연간 1,000 톤의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한 결과다.

북한이 현재까지 추출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플루토늄의 양이 40~50 kg(국정원), 혹은 15kg(미국 ISIS)수준인 것과 비추어 보면 일본이 보유한 플루토늄의 양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알 수 있다. 핵폭탄 1개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 양은 4~5 kg이다.

일본은 그간 영국과 프랑스에 상당부분 맡겨 온 핵연료 재처리 작업을 자체적으로 소화하기 위해 내년부터 북부의 아오모리(靑森)현 로카쇼무라에 세계 최대의 핵재처리시설을 가동한다. 이 시설에서 매년 1,000개 이상의 핵폭탄 제조가 가능한 5톤의 플루토늄이 추출된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플루토늄 비축을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 내각 산하 원자력위원회는 2004년 11월 모든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의무화하는 ‘신(新) 장기계획’을 의결했다. 에너지 안보와 환경 문제를 내세웠다. 핵무기 제조를 위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북한식의‘불륜 재처리’가 아니라 환경과 에너지 자원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로맨스 재처리’라는 이야기다.

일본은 핵무기제조의 또 다른 방식인 고농축 우라늄에 관한 기술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단에서 핵 보유까지 미국은 1년쯤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총리가 되기 전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1년이면 족하다고 호언했다. 이미 4년 전의 일이다.

일본이 감히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은 국민의 강력한 거부감과 미국의 거센 비확산 의지 때문이다.

현재 일본 정부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공식 입장은 “자위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라면 헌법상 보유가 허용되나 세계 유일의 피폭국이라는 점과 비핵 3원칙을 고려해 일체 보유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비핵 3원칙이란 “핵무기를 보유하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것으로 67년 12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당시 총리가 중의회 연설에서 처음 제창했다. 중의원은 71년 11월 비핵 3원칙 준수 결의를 통과시켰다. 미국으로부터 오키나와(沖繩) 반환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결국 오키나와는 72년 5월 반환됐고 사토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미국의 동북아 핵전략은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비확산’의 ‘확산’이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나왔다. 이 선언은 일본의 비핵 3원칙보다 극단적이다. 재처리시설과 핵 농축시설을 아예 보유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비핵3원칙이 ‘휴화산’을 지향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사화산’이 목표다. 미국은 이에 앞서 남한에 배치된 전술핵무기를 철수했다.

80년 핵무기 개발 직전 단계인 고폭(高爆) 실험까지 한 대만도 2003년 핵무기개발금지를 기본방침으로 규정한 비핵추진법을 마련했다. 이를 위해 미국이 취한 사전 보상은‘대만관계법’을 통한 핵우산의 계속 제공이다.

미국의 이러한 동북아 핵전략은 역내에서 중국의 독점적 핵보유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다. 중국은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북한의 핵개발은 이처럼 미국이 추진하고 중국이 지지해 온 ‘비확산의 확산’ 전략에 대한 도전이다. 그리고 핵폭발 실험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일거에 무너뜨린 것이다.

북한의 핵폭발 실험에 대한 미·러의 대응은 중국과 차이가 있다. 러시아는 북한은 이제 9번째의 핵보유 국가가 되었다고 인정했다. ‘8’이 ‘9’로 변했을 뿐이라는 담담함이 느껴지는 반응이다. 미국은 핵 이전이라는 북한의 다음 카드에 신경을 쓰는 눈치이다. 이들 두 강대국에게는 북한의 핵실험은 레드라인을 넘어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에게 북한의 핵실험은‘적선(赤線)’을 넘어선 것이다. 동북아 핵 도미노를 일으킬 것이 불문가지인 탓이다.

가공할 핵 잠재력을 갖춘 일본에서 최근 나오는 말이 심상치 않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총리는 지난 9월 5일 “미일 안보조약이 깨지는 대변동에 대비해 핵문제를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운을 띄었다.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 전 경제산업상도 “전쟁의 최대 억제력은 핵”이라고 말했다.

핵무장을 줄곧 주장해온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 지사는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다. 2002년 5월 한 강연에서 “원자폭탄을 갖는 일은 일본 헌법상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한 사람이 바로 신임 총리인 아베 신조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 65%이상이 지지를 나타냈다. 궁지에 몰린 대만의 독립파가 북한을 벤치마킹을 하고 있을 것임은 안 봐도 뻔한 사실이다.

김정일의 ‘멋진 신세계’는 북한이 핵실험 발표 성명에서 강변한 것처럼 ‘북한의 핵보유가 한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데 이바지하는 세계’이다. 이 궤변이 성립하려면 핵도미노를 통한 ‘공포의 핵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중국에게 그것은 핵포위망에 둘러싸인 세계이며 양안 통일이 요원한 세계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중국이 가장 속타고 분주하다. 깨어난 ‘공주’를 다시 잠재울 ‘물레’를 마련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 일본이 내년부터 가동하는 아오모리현의 로카쇼무라 핵재처리 시설. 세계 최대급으로 연간 1,000개 이상의 핵폭탄 제조가 가능한 5톤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이재준 중국문제 전문 객원기자 hufs82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