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핵폭풍 덮친 한반도] "금융제재 풀면…" 북·미 협상 지렛대 활용 포석동북공정 앞세운 중국의 대북압박도 초강수 선택케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없다. 확실하게 만들었다는 증거가 있다면 우리는 당장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북한의 핵무기를 탈취해오겠다.”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이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가 닥쳤을 때 당시 외교부 부부장으로 있으면서 한국의 일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얘기다. 평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 국익에 보탬이 된다면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북한에 들어가겠다는 중국의 속내를 드러낸 대목이다.

그런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북한의 10ㆍ9 핵실험 이후 중국 고위 관료 중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탕 국무위원은 12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 후 주석의 메시지를 전한 뒤, 다음날 러시아로 날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그의 미·러 방문은 ‘북한을 어떻게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 핵무기 보유를 포기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을 협의하기 위해서다.

중국이 탕 국무위원을 특사로 파견한 것은 중국이 나서서 북핵 문제를 풀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였음을 보여준다. 미국 역시 당장 겉으로는 대북 강경 제재를 외치고 있지만 결국은 북ㆍ미의 실질적인 대화를 진전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탕 국무위원이 부시 대통령에게 북·미 대화를 진전시킬 수 있는 모종의 타결책을 제시했을 것이라는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중국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재자로 나서는 한편 다른 방식을 통해 북한 핵무기뿐만 아니라 북한 자체를 접수하려는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동북공정’이다.

러시아의 김일성대학 출신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국민대)는 “중국은 북한의 비상사태에 대비해 친중국 정권을 수립하려는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북핵뿐만 아니라 구소련 시대 동유럽 위성국가에 했던 것처럼 북한을 통제하려 한다”말했다.

이는 세계 경찰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이 북한 핵을 억제하려는 정책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커 개연성이 있다. 즉 중국이 북한 핵을 억제, 핵 확산을 방지할 수 있다면 미국은 중국의 북한 통제를 사실상 용인할 수 있다는 일부의 이른바 ‘빅딜설’이 단순히 설(說) 수준에 그치지 않으리라는 것.

그것이 맞다면 북한의 10ㆍ9 핵실험은 자신에 대한 최대 견제자이자 최강국인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핵실험은 미ㆍ중의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접근과 이에 반발하는 북한의 핵전략이 충돌하면서 발화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은 ‘핵 불용’정책을 고수하는 부시 정부에 끌려다니기보다는 핵실험을 강행해 핵 보유국 위치에서 향후 북·미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지렛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 군부를 비롯한 권력층에서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북한을 겨냥하고 있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다”면서 “중국이 북한 핵을 억제하려는 것도 그(동북공정) 연장선에서 북한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미국은 북한 핵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은 동북아 안정과 북한 지배를 위해 ‘북핵 불용’이라는 이해를 같이하는 반면 북한은 역으로 양국이 우려하는 핵을 최대한 활용해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북한 핵실험의 1차 타깃은 미국이다. 북한 외무성은 11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핵실험은 미국의 핵위협과 제재압력 책동 때문"이라며 미국을 분명히 겨냥했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이날 일본 언론과 만나 “(추가 핵실험 여부는) 미국의 대응 여하에 달려 있다”며 미국 책임론을 거론했다. .

베이징의 정통한 북한 소식통은 “미국이 지난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를 통해 본격화한 대북 금융제재가 북한을 크게 압박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북한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했다”며 “금융제재가 북한의 핵실험을 앞당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 외무성이 11일 담화에서 미국이 금융제재를 철회하고 북한과 대화에 나서겠다고 할 경우 언제든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북한 핵실험의 냉각기를 거친 후 북·미 대화가 재개된다면 금융제재 해제 여부가 제1 의제가 될 전망이다.

북한 핵을 제어하려는 중국의 압박과 북한체제를 위협하는 동북공정도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케 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중국은 2003년 후진타오 체제가 출범하면서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에 따라 대만을 복속시키려는 계획을 강도 높게 추진했다. 대만 핵무장의 빌미가 될 수 있는 북한 핵은 제거 대상이엇다.

중국은 북한 핵을 억제하기 위해 북한의 ‘생명줄’이기도 한 에너지와 식량 지원 중지라는 카드를 빼들어 북한을 강도높게 압박했다.

2004년 9월, 리장춘(李長春)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평양에 보내 중국의 뜻(북핵 불용)을 확실히 전달했는가 하면 북한이 반발하자 그해 11월 중국 단둥(丹東)에서 서평양으로 연결된 송유관을 통한 기름 공급을 중단, 북한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이듬해 2월 10일 ‘6자회담 무기한 불참과 핵무기 보유 선언’이라는 초강수로 반격 중국에 충격을 주었다. 나아가 4월에는 영변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고 5월에는 8,000개의 ‘사용 후 핵연료봉’ 을 人출해 핵실험 강행 의지를 과시했다.

그러자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5월 말 중국을 방문해 대북 압박을 요청했고 중국은 후진타오의 9월 방미를 고려해 7월에 개최된 4차 6자회담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에게 핵포기 결단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당시 김 위원장과 북한 군부는 중국의 압박에 크게 반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계획에 박차를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올 2월 설 이후 사업가로 위장한 다수의 중국인들이 북한 전역을 조사하고 다니다 보위부에 적발돼 양국 간에 비자전쟁이 벌어진 이른바 ‘2,3월 사건’이 발생, 북한은 이를 중국의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판단해 분노를 나타냈다.

이후 북한의 미사일 발사(7월 5일)-중국의 대북제재 유엔결의 참여(7월 15일)-핵실험 선언(10월 3일)-핵실험(10월 9일)으로 이어지면서 북·중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북한 핵실험은 미국보다 중국에 더 충격을 주었다. 북·미관계는 기존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지만 중국은 대북 정책을 제고해야 할 상황이고 대만이 핵무장할지 노심초사하게 됐다. 일본, 베트남 등 반중(反中) 성향 국가들도 핵무장하게 되면 골칫거리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커트 캠벨 부소장은 “북한이 핵무기를 1개 이상 갖고 있다면 중국을 겨냥하는 핵능력도 가질 것”이라며 “북·중 관계가 신뢰상실(distrustful) 단계에 와 있다”고 말했다. 북한 내 친중 정권을 수립한다는 동북공정 계획도 더 가속할지 중단할지 기로에 서 있다.

북한 핵실험 후 공은 미국과 중국에게 넘어갔다. 양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북한 핵실험 사태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