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핵폭풍 덮친 한반도] 김정일 매제 장성택 의문의 교통사고로 군부 소행설 등 분분북·중 갈등 맞물려 핵실험 강행과 관련있는지도 주목

▲ 최근 의문의 교통사고로 크게다친 장성택.
북한판 권력투쟁이 시작된 것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의 교통사고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장 제1부부장은 지난 9월 말 평양 시내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는 평양 모란봉 구역 인민군 교예극장 앞 사거리 주변에서 일어났으며 달리던 장 제1부부장의 벤츠 승용차를 북한군 외화벌이 기관의 화물차가 들이받았다는 것. 장 제1부부장은 목숨에는 이상이 없으나 이 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쳤고 그가 탔던 벤츠 승용차도 폐차해야 할 정도로 심하게 파손됐다고 한다.

그러나 사고 원인이 뚜렷하지 않고 사고 장소가 여성 교통보안원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곳이어서 교통사고가 잘 일어나지 않음에도 실세인 장 제1부부장이 교통사고를 당하자 여러 억측이 떠돌고 있다. 게다가 북한의 10ㆍ9 핵실험으로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장 제1부부장은 이전에도 권력투쟁과 관련된 소문의 장본인으로 등장하곤 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김경희) 남편으로 한때 ‘권력 2인자’로 불렸을 정도로 잘 나가던 그가 2004년 초 공식석상에서 갑자기 사라진 예가 대표작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장 제1부부장이 권력욕 때문에 좌천됐다는 설, 김정일 처 고영희(2004년 사망)와 후계 구도를 둘러싼 갈등에서 밀려났다는 설, 신병 때문에 물러났다는 설등 소문이 무성했다.

그러나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결과 장 제1부부장은 2004년 중순부터 평양 시내 모처에 칩거하면서 특수팀과 함께 북한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측 전문가들도 장 제1부부장이 당 학교 책임자로 좌천됐을 당시 “개방 정책과 자본주의를 연구해보라는 임무를 김 위원장에게 받았다”고 했다. 2005년 7월에 제정ㆍ공포한 ‘북남경제협력법’은 장 제1부부장이 칩거 중에 마련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장 제1부부장은 올 1월 말 김 위원장이 평양 주재 우둥허(武東和) 중국대사 등 중국대사관 관계자들을 초청해 개최한 연회에 2년만에 모습을 나타낸 이후 지난 3월과 8월 각각 중국을 방문, 경제시찰을 하였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연형묵 국방위 부위원장이 사망(2005년 10월)하지 않았다면 연 부위원장이 전면에서 나서고 장 제1부부장은 뒤에서 북한 경제를 이끌어 갔을 텐데 연 부위원장의 사망으로 장 제1부부장이 전면에 나서 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상당수 대북 소식통들은 장 제1부부장의 9월 교통사고에 대해 그의 일정과 북한 내부 사정, 북·중 관계 등을 종합할 때 의문을 가질 만하다고 말한다.

북한과 12년째 무역을 하면서 평양의 고위층과도 잘 알고 지낸다는 한 인사는 “교통사고의 내용을 살펴보면 분명 의심가는 부분이 적지않다”면서 “윤전기사가 작심을 했다면 (장 제1부부장을)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위협만 가한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 군부와 권력엘리트에 밝은 한 인사는 “북한이 7월 5일 미사일을 발사한 후 북·중 간에 갈등이 고조됐고, 북한 내에서 중국과의 관계 설정을 놓고 이견이 대립한 것으로 안다”면서 “그것이 장 제1부부장의 교통사고와 관련있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중국 군부 및 고위층과 채널이 있는 한 인사는 “북한은 지난 8월 말, 9월 중순 미사일 발사로 야기된 중국과의 균열을 메우고 중국으로부터 물적 지원을 받기 위해 북ㆍ중 정상회담을 추진했다”면서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에 장 제1부부장이 베이징에 있었는데 그가 귀국하자마자 교통사고가 난 것은 의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북 소식통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북한의 7ㆍ5 미사일 발사는 잠재된 북·중 갈등을 증폭시켰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장 제1부부장이 베이징에서 북ㆍ중 정상회담을 추진했으며 이것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무산됐으며, 평양으로 돌아간 장 제1부부장이 누군가로부터 교통사고로 위장된 테러를 당했다는 것이다.

앞의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장 제1부부장은 베이징에서 머물며 북ㆍ중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정상회담)장소를 베이징이 아닌 랴오닝성(遼寧省) 선양(審陽)으로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이 8월 말과 9월 중순 신의주에 두차례나 온 것도 북ㆍ중 정상회담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ㆍ중 정상회담이 무산된 것에 대해“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북한의 요구사항을 중국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북한 역시 중국의 요청(핵실험 중지 추정)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경제를 계획하는 장 제1부부장 입장에선 내년 농사를 위해 농업용 비닐, 트럭 기름, 식량 등이 필요했을 텐데 중국이 북한 핵과 관련한 과도한 주문(압박)을 해 틀어진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고 덧붙엿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동북공정(북한 내 친중정권 수립)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북한 권력층이 북ㆍ중 정상회담을 무산시켰다는 분석을 제기한다.

대북 소식통은 장 제1부부장의 교통사고에 대해 북한 내 과격 친중파의 소행으로 해석했다. 장 제1부부장이 중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 반중파의 입지를 넓혀준 데다 북한이 핵실험을 간행할 경우 북한 내 친중 정권 수립이 어려워 질 것을 우려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장 제1부부장 교통사고를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군부 강경파의 소행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한 북한전문가는 “장 제1부부장은 친중파로 분류할 수 있으며 그가 북ㆍ중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도 그런 맥락”이라면서 “그가 실제로 친중 정권의 구심점이 될 것을 우려한 반대 진영에서 테러를 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장 제1부부장을 앞세워 친중정권을 세우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김정일 위원장과 군부 강경파가 손잡고 테러를 가했다는 분석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이들이 중국의 압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10ㆍ9핵실험을 추진했다는 견해도 뒤따른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는 고(故) 성혜림 씨가 낳은 장남인 정남(35), 고(故) 고영희 씨가 낳은 차남 정철(25)과 삼남 정운(22) 세력과 이들이 걸림돌로 여기는 장 제1부부장 간의 알력이 교통사고로 분출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김정일 사후 북한은 집단지도체제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후계구도를 둘러싼 권력투쟁은 약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대다수 북한 전문가들은 장 제1부부장이 김정일 위원장과 군부의 중간에서 북한 경제를 조율해 가는 입장에 있으며 친중파로 분류하는데 부정적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민족주의파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앞으로 북한의 권력투쟁은 중국에 동조하는 친중파와 이에 맞서는 자주파의 힘겨루기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장 제1부부장의 교통사고는 그런 흐름의 전초전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