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핵폭풍 덮친 한반도] 핵통제 기능 상실 다시 확인… 각국 질타 쏟아져"미국 등 핵클럽 이중잣대가 불신 원인" 논란 가열

북한의 전격적인 핵실험 강행은 핵 비확산과 핵 군축을 목적으로 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얼마나 부실한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됐다. NPT가 조금이라도 기능했더라면 북한이 두 차례나 NPT를 탈퇴를 선언하면서 핵무장하려는 야심을 속수무책으로 두고 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북한이 NPT를 탈퇴한 것은 국익이 중대하게 침해된다고 판단되면 탈퇴할 수 있도록 한 10조 1항에 근거한 것이어서 이를 마냥 비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 NPT의 손발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강제사찰이 핵 주권을 침해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어서 NPT 체제 자체가 모순을 안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핵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 핵의 평화로운 이용을 목적으로 태동한, 거의 유일무이하고 광범위한 국제사회의 핵 규범이 허수아비로 전락했다는 것은 교통신호등 없이 차들이 질주하는 위험한 상황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북한 핵실험 이후 NPT의 무기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북한이) 국제사회가 지켜온 사실상의 핵실험 모라토리엄을 10년 만에 깨뜨렸다”며 “핵무기 능력을 보유한 국가가 새로 등장함으로써 핵무기를 감축하려는 국제적 노력은 명백히 후퇴하게 됐다”고 한탄했다.

NPT 무용론은 ▦핵무기 비보유국으로의 핵확산 금지 ▦핵보유국의 핵군축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NPT의 3대 중심축이 핵보유국과 비보유국 간의 태생적 불평등 조약이라는 논란 때문에 회원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같이 NPT에 아예 가입조차 하지 않은 나라들은 핵실험을 하거나 핵무기 보유가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데도 아무런 통제를 하지 못하고, 더욱이 핵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 나라들에 대해 미국이 이중잣대를 들이대 협력을 하고 있다는 것은 NPT에 가입한 대다수 비핵보유국들의 분노를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또 핵보유국의 군축은 비강제조항으로 해놓고 사찰의무도 없게 한 반면 비보유국에 대해서는 핵무기 제조ㆍ보유 금지는 물론, 사찰까지 받도록 의무화했다. 핵무기 보유를 공식 인정받은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핵클럽 5개국이 자신이 지켜야 할 핵군축은 외면한 채 핵 비확산만 강요하는 이율배반적 행위가 NPT를 어기는 ‘범죄국가’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5월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렸던 NPT 7차 평가회의(5년마다 개최)는 NPT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결정판이었다.

평가회의에서 188개 회원국은 ▦핵군축 ▦국가별 핵프로그램의 안전장치 검증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등을 의제로 내세웠으나 어떠한 합의는 물론, 상징적인 문구의 성명조차 채택하지 못했다. 핵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은 자국의 핵확산 가능성에 우려를 표명하는 문건 채택에 반대했고, 이집트는 비회원국인 이스라엘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한 NPT 탈퇴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된다며 탈퇴를 어렵게 하자는 제안에 제동을 걸었다.

▲ 북한 영변 핵시설.
▲ 지하 핵실험.

미국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발효와 핵무기 제조물질의 생산금지 조약 마련 등의 핵무기 감축 공약을 최종문서에 포함시키는 데 반대했다. 핵 비보유국들은 보유국들이 핵무기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문서로 확약할 것을 요구했으나 핵보유국들은 북한과 이란 등을 의식, NPT 의무를 준수하는 국가만이 안전보장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논리로 반박했다. 사분오열이었다.

그렇다면 NPT의 대안은 없는가. 유엔은 1996년 총회에서 CTBT를 채택했다. 이 조약은 우주공간, 대기권내, 수중, 지하 등 장소를 막론하고 모든 형태의 핵실험을 금지하고 있다.

70년 발효돼 수십년 간 이어온 NPT가 존재하고 있는데 CTBT를 채택한 것은 NPT 체제의 태생적 불평등을 보완하자는 국제여론 때문이었다. 기존 핵보유국은 논외로 하고, 비보유국으로의 핵확산을 막는 NPT의 ‘수평적 금지’의 한계에서 벗어나 보유국까지 포함, 더 이상의 핵실험을 금지하는 ‘수직적 금지’ 로 핵안전을 도모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CTBT 역시 채택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발효되지 못하고 개점휴업 상태에 있다. 발효되려면 핵개발 능력이 있는 44개국 모두의 비준이 필요한데, 핵클럽 국가인 미국과 중국은 비준을 거부하고 있고 파키스탄, 인도, 북한 등은 아예 서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10일 현재 이들 44개국 중 41개국만이 서명했고 비준국은 34개국에 머물고 있다.

미국은 ▦핵실험을 하지 않고는 핵전력 우위와 핵억지력을 확보할 수 없고 ▦다른 나라들이 비밀리에 핵실험을 할 수도 있는 검증체제가 불완전한 상황에서 자국만 규정을 지킬 수는 없다는 이유를 비준 반대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한마디로 다른 국가는 지켜야 하지만 미국만은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횡포다.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이 북한 핵실험 후 “CTBT가 조속히 발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CTBT가 유명무실화한 NPT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핵실험으로 들끓고 있는 국제사회의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다음에는 미국 등 핵보유국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미 지난달 20일 55개국이 참여한 ‘CTBT의 친구들’ 외무장관 회의에서 미국의 맹방인 호주마저 미국에 직접적으로 CTBT 비준을 요구했다.

핵보유국이 힘과 기득권을 무기로 핵권리에 관한 불평등을 고수하려 한다면 제2, 제3의 북핵 사태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