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본질을 몸으로 구현했죠.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래요.”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100일 민심대장정’을 마치고 서울역에 도착한 10월 9일, 그에 대한 무언의 후원자인 김진홍 목사는 ‘민심’을 안고 돌아온 손 전 지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난 6월 30일 도지사 퇴임과 동시에 시작한 100일 민심대장정 동안 손 전 지사는 농촌, 어촌, 재래시장, 중소기업 등 민심의 알몸을 찾아 낮고 깊이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평범한 인간 손학규로 변신, 국민과 땀 흘리며 뒹굴었다. 여느 정치인과 다른 그의 진정성에 국민은 박수를 보냈고 ‘희망’이 가려진 시대에 그 불씨를 보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선의 길에 들어선 손 전 지사에게 지지율은 아직 낮다. “내 자신이 세상을 보는 게 중요하다”며 그에 연연해 하지 않지만 ‘저평가 우량주’인 손 전 지사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여전히 크다.

"금강산 관광은 당분간 중단해야. 국민이 힘들어 하는 것은 오늘의 고통보다 내일의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국민 속에서 들어가 국가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해법 찾을 터"

국민 속으로 제2대장정을 준비하고 있는 손 전지사를 10월 19일, 마포 자택 서재에서 만났다.

- 북한 핵실험 후폭풍이 거세다. 국론이 양분되는 양상이고 한미 관계는 여전히 삐걱거린다.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보나.

“북한 핵실험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미국을 상대로 핵을 앞세워 대북 제재를 풀겠다고 협박하는 게 아닌가. 거기에는 북한 동포에 대한 고려도 없고 남한과의 관계는 아예 관심 밖이다. 더욱이 핵이 아닌가. 그런 북한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분명한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기본적으로 세 가지 원칙을 갖고 대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북핵 절대 불용의 원칙이다. 둘째는 예쁜 짓을 하면 사탕을 주고 나쁜 짓을 하면 매를 준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셋째 국제 공조의 원칙이다. 북한 핵문제는 우리 혼자 해결할 수 없다. 철저히 국제 공조를 긴밀하게 유지하고, 특히 한국과 미국 간의 긴밀한 협조에 의해 해결하려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 대북 제재 수위, 예컨대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놓고 시각차가 큰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남쪽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기업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지만 북핵 사태가 터진 지금은 북측에 단호한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금강산 관광은 물론 사업 참여자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국민들에게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므로 당분간 중단해야 한다고 본다.

개성공단 사업은 금강산 관광과 구분한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발언이 일리가 있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북한에 끌려 다니거나 굴복하는 듯한 자세를 보일 게 아니라 나쁜 짓을 했다면 응분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줘야 할 때다.”

- 경기도지사 재임 때 북한의 벼농사와 수해를 지원하는 등 포용적 자세를 취하던 입장과는 대조적인데.

“나는 소속 당과는 상관 없이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에 대해 지지해왔다. 경기도지사를 할 때 북한에 대해 인도적 지원은 물론이고 벼농사 시범 사업을 했다. 그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내야 하며, 그것이 남북통일의 기반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북한이 핵실험을 한 마당이다. 북한 동포들이 굶어 죽건 말건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런 북한에 커다란 배신감을 느낀다.”

-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에 대한 입장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기본적으로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을 지지한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북한동포와 세계를 볼모로 핵실험을 한 북한에 대해 지금은 접어야 할 때다.”

- 북한 핵실험 후에도 한미 공조보다 남북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지않다. 북한보다 미국에 더 책임이 있다는 여론도 만만찮은데.

“북한은 핵실험을 하고,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고 한다. 북한이 의도하는 바는 미국과 통하고 남쪽은 봉쇄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면 한반도를 쥐락펴락하며 남한을 위협할 수 있다. 한미 공조가 붕괴되고 북한과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해도 그들의 상대는 한국 너머 미국이다.

한미 관계가 튼튼하면 북한은 미국을 향하기 전 한국을 거쳐야 한다. 북한이 국제사회 일원으로,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북한이 핵장난을 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정치권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북한 핵실험은 여야를 떠나 국가안위에 관한 중차대한 문제다. 말장난으로 표 가르기를 할 사안이 아니다.”

- 한나라당이 호남표를 의식해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과 참여정부의 포용정책을 구분해 비판한다는 지적이 있다.

“북핵 문제가 경쟁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지금은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북핵 문제에 대해 단호한 결의를 하고, 국민적 단합을 꾀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다. 북한이 절대 핵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 핵실험을 했지만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하도록 저지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 공조 체제를 통해 북한이 도발을 할 마음을 갖지 않도록 전쟁 억지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적으로 단합하고, 국가적으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 100일 민심대장정을 마치고 제2 대장정을 준비 하는 것으로 아는데.

“민심대장정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정리하면서 새삼 우리나라 국민들이 참 좋은 분들이란 생각을 하게 됐고 국민들은 행복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분들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길, 대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 민심대장정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과 아쉬운 점은.

“소득은 국민과 같이 생활하면서 그 분들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생활정치의 가능성이랄까. 정치의 발판이 국민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내 자신의 마음가짐. 스스로 자성하면서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이 고마운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100일 동안 매일 하루 한군데씩 옮기다 보니 ‘체험 삶의 현장’처럼 되거나 주마간산격으로 지나친 곳도 적지 않다.”

- 민심은 어떠한가.

“가는 곳마다 ‘서민들 잘살게 해달라’,‘서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해달라’는 소리를 들었다. 국민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오늘의 고생이 아니라 내일의 희망이 없다는 좌절이다.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도자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깨달은 게 많았다.”

- 국민들이 정치를 불신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정치가 자신들과 상관없다는 인식이다. 정치가 자신들에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쉬울 때만 생색내기용, 표얻기 위해 발걸음을 했지 진정 낮은 자세로 자신들에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 노무현 정부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아예 얘기를 안 한다. 무능하다는 생각이 대부분이고 호남에서는 ‘배신’이란 말이 자주 나왔다.”

- 개인적 입장에서 노무현 정부를 본다면.

“국민들 생각과 별 차이가 없다. 무능한 정부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좌표를 잘못 설정하는 게 문제다. 급박한 동북아 정세에서 우리나라가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지, 경제 정책도 그렇고 ‘성장이냐 배분이냐’를 따질 때가 아닌데 마치 선진국이 다된 것처럼 불필요한 논쟁을 벌이는 등 대한민국을 자꾸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가는 게 문제다.”

- 국민들의 한나라당에 대한 시각은 어떤가.

“노무현 정부가 잘못하니 한나라당이 집권해서 정치를 잘해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한나라당을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정당과 마찬가지로 자신들과 관계 없고 ‘한나라당이 우리한테 해준 게 뭐 있느냐’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이 서민과는 거리가 있는 당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 당내 박근혜 전 대표나 이명박 전 시장에 비해 민심의 바다에 가까이 오래 머물렀음에도 지지율은 소폭 상승하는데 그쳤다. 아직 갭도 크다.

“지지율의 성격을 생각해보라.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일 뿐이다. 흥미있는 조사에 불과하다. 민심대장정 했다고 해서 당장 지지율이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민심대장정)출발할 때부터 내가 세상을 보는 게 중요하지 남이 나를 알아주느냐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었다.”

-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어떤 지도자가 시대를 이끌어야 한다고 보나.

“우리나라가 국내외에서 처한 현실에서 최대 과제가 시대정신이 될 것이다. 21세기 세계화시대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국가경쟁력이다. 국내적으로 국민통합, 남북문제, 경제회생 등이 시대정신의 한 축을 형성할 것으로 본다.

지도자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의 대선은 부정부패 단절이나 군사독재 단죄와 같은 식이어서 국가운영 능력을 소홀히 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다보니 대한민국의 좌표를 잘못 설정해 국민이 고통을 받는 결과가 적지 않았다. 또 그동안 산업화, 민주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이뤘는데 그 혜택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아우르는 지도자가 돼야 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깨끗하고 유능하며 시대 흐름을 읽을 수 있고 세계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 그런 지도자가 시대정신에도 부합하다.”

- 정치권에서 대선과 관련해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가 담론이 되고 있고 한나라당에서도 관심이 높다.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한 생각은.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생각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얘기할 때가 아니다. 지금 북핵 문제를 비롯해 국민 생활이 아주 어렵다. 지금은 대선에 대해 얘기하는 게 부적절하고 국민을 향하는 데 전력하는 것이 도리이고 자세라고 생각한다.”

- 최근 정치권 화두가 되고 있는 정계개편에 대한 입장은.

“정치는 정도(正道)를 가야 한다. 여당이 주장하는 정계개편은 어떻게 하면 정권을 연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민 생활을 이렇게 도탄에 빠뜨려 놓고는 집권 연장을 위해 정계개편을 생각한다는 게 말이 되나. 남은 기간이라도 경제 살리고 서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면 집권의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된다는 식의 정치적 야합은 그만두어야 한다.”

- 제2 대장정을 앞두고 있는데 계획은?

“이번 민심대장정을 통해 우리나라가 크게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농ㆍ어촌은 미래가 안보이고 재래시장은 완전히 죽어가고 있다. 중소기업은 내일을 보지 못하고, 유망한 대기업조차 10년 후를 알 수 없다. 국가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가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국가 자원을 개편하는 일이 나의 관심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국민 속에서 찾아야 하고 새로운 대장정이 될 것이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