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5세대 '떠오르는 별' 누구인가 ⑤ 쉬차이허우 - 2003년 방북 김정일과 회담… 차기 軍최고지도자될 듯
“총구는 당의 휘하에 있어야 한다”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말처럼 중국 인민해방군은 전통적으로 공산당의 통제 하에 있어 왔다. 현재도 군에 대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당 중앙 군사위의 주석직을 군 경력이 없는 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겸임함으로써 이를 구현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군 전략은 군출신인 나머지 10명의 위원에 의해 수립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들 중 가장 서열이 높은 인물은 궈보슝(郭伯雄) 부주석이다. 또 후진타오 최측근은 총후근부장을 겸임하고 있는 랴오시룽(寥錫龍) 위원이다. 하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군 지도자는 이들이 아닌 쉬차이허우(徐才厚) 부주석이다.
쉬차이허우는 국방부장을 겸하고 있는 차오강촨(曹剛川) 부주석에 이어 중앙군사위 서열 4위이다. 1943년생으로 군사위 구성원 중에서 가장 나이가 적다. 쉬차이허우를 주목하는 것은 우선 그가 일상적 당무의 집행기관인 당 중앙 서기처 서기를 겸하고 있어 당의 결정을 군의 행동으로 연결하는 교량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2003년 8월 6자회담을 앞두고 인민해방군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견한 적이 있다. 그때 김정일이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양국과 양군(兩軍)의 우호관계는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총정치부장을 겸직하던 쉬차이허우는 “양국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강화, 발전시키는 것은 당과 정부의 변함없는 정책”이라고 응수했다. 김정일이 국가와 함께 군을 언급했는데 중국의 군사위 위원은 ‘군(軍)’을 뺐다. 돌이켜 보면 쉬차이허우는 김정일 면전에서‘오늘’을 경고한 셈이다.
쉬차이허우의 이력에서 또 눈길을 끄는 대목은 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의 사장을 역임한 사실이다. 7월 20일 백두산 인근에서 실시한 미사일 훈련은 해방군보에 의해 곧바로 공개됐다. 이 같은 이례적 조치에서 ‘전 해방군보 사장’ 쉬차이허우의 입김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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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차이허우는 랴오닝(遼寧)성 와팡뎬(瓦房店) 출신으로 하얼빈 군사공정학원을 나왔다. 전자공학을 전공하였고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얼빈 군사공정학원은 당 간부의 자녀들이 많이 다녀 귀족학교로 불렸던 곳이다. 현재 정치국위원인 위정성(兪正聲)이 그의 동기동창이다. 귀족학교를 나왔지만 ‘귀족’이 아니었던 그는 해방군에 사병으로 입대했고 29세가 돼서야 장교가 됐다. 그의 후원자인 백락(伯樂)은 다름아닌 조선족 출신 조남기(趙南起) 전 상장이다. 총후근부장, 정협 부주석을 지낸 조남기는 지린(吉林)성 군구 정치부 주임일 때 쉬차이허우를 발탁, 해방군 정치학원에서 2년간 교육을 받도록 했다. 이것의 쉬차이허우의 오늘을 있게 한 계기가 됐다.
이재준 객원기자·중국국제 전문가 hufs82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