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5세대 '떠오르는 별' 누구인가 ⑦ 류옌둥(劉延東) 전국정협 부주석·통전부 부장태자당 출신, 천안문 사태로 11년간 정치적 좌절 겪기도

“여자가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도록 하겠다((婦女能頂半邊天).”

마오쩌둥(毛澤東)이 1949년 한 이 약속은 공교롭게도 반만 지켜졌다. 중국의 취업인구는 2005년 말 현재 3억 3,7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취업인구의 44.8%로 절반의 문턱에 와있다. 하지만 권력 피라미드 속에서 여성은 여전히 ‘홍일점(紅一點)’의 처지다.

중국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9명의 위원 가운데 현재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정치국 위원(후보위원 1명 포함) 16명 중에서 여성은 우이(吳儀) 한 사람뿐이다. 원자바오(溫家寶)내각의 각료급 이상 38명 중에 여성은 3명이다. 우이와 천즈리(陳至立)가 4명의 부총리와 5명의 국무위원 중 각각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고, 우아이잉(吳愛英) 사법부장이 28명의 부장, 주임 중 유일한 여성이다.

차기 지도부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크게 변할 것 같지 않다. 정치국에 진입할 수 있는 당정 고위직에 있는 여성이 손꼽을 수 있을 만큼 적기 때문이다. 개혁·개방으로 여성의 진출이 크게 늘어나긴 했지만 공산당 내 여성 당원 비율은 2005년 말 현재 19.2%에 불과하다.

17대에 정치국 진입이 유력시되는 여성으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 류옌둥(劉延東) 전국정협 부주석 겸 공산당 통일전선부 부장이다. 우이가 1938년생으로 연배상으로는 3세대에 속한 것처럼 류옌둥 역시 1945년생으로 5세대보다 한 세대가 앞선 4세대이다.

류옌둥은 칭화(淸華)대학 화학공정학과 출신으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대학 후배이다. 젊은 시절 후 주석이 경극(京劇)배우 메이란팡(梅艶芳)을 연상시키는 수려한 용모로 유명했다면 류옌둥은 당내 대표미인-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미스 중국 공산당’-으로 꼽혔다. 후 주석과는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에서 함께 활동했으며 그로부터 공청단 상무서기(공청단 제2인자)와 전국청련(全國靑聯) 주석직을 인계받았다. 바로 이런 이력 때문에 천량위(陳良宇) 전 상하이 서기의 후임으로 리커창(李克强)과 함께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공청단 시절 후 주석과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다. 근본 요인은 서로 다른 출신 성분 때문이다. 류옌둥은 문혁 당시 농업부 부부장을 역임한 류루이룽(劉瑞龍)의 딸이다. 태자당인 것이다. 류옌둥은 공청단 시절 다른 태자당과 함께 차(茶) 상인의 아들로 소(小)상인 계급 출신 후진타오가 중용되는 것에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후진타오가 공청단 제1서기를 역임한 뒤 구이저우(貴州)와 티베트와 같은 오지를 전전한 것은 태자당의 견제 때문이었다는 설도 있다. 비록 전화위복이 되었지만 후진타오가 류옌둥을 비롯한 태자당 그룹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었을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류옌둥의 이력은 단조롭다. 1991년 공청단을 떠나 당 중앙 통일전선공작부로 옮겨 비서장을 거쳐 부부장에 임명된 뒤 장장 11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통전부는 홍콩, 마카오 및 대만과의 관계, 소수민족, 종교 문제를 다루는 부서이다. 1989년 천안문 사태가 후진타오에게 도약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면 류옌둥에게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였다.

천안문 사태 당시 공청단의 일부 간부들이 학생 시위에 동조, 시위대열에 합류했는데 그에게 지휘책임을 물은 것이다. 류옌둥의 부친이 장쩌민(江澤民)의 양부(실제론 숙부)인 장샹칭(江上靑)의 동료였고 그 자신 쩡칭훙(曾慶紅)의 모친 덩류진(鄧六金)이 운영한 화둥(華東) 보육원 출신으로 쩡과 가까웠음에도 장쩌민 시대 내내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통전부장으로의 승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후진타오가 총서기에 오른 16대에서 이루어졌다. 양안 문제, 홍콩과 마카오 문제, 종교 문제와 소수민족 문제 등을 관장하게 된 그는 대내외적으로 활동의 보폭을 크게 넓혔다. 태자당이면서 단파인 자신의 이중적 위상을 활용, 쩡칭훙과 더불어 장쩌민과 후진타오 간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 결과 하늘의 절반을 떠받칠 ‘0순위 후보’의 위상을 차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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