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자원전쟁 시대… 전문인력 양성, 해외 자원개발에 역점'질 좋은 성장' 전략 추진, 불확실성 제거로 투자심리 회복 노력

정세균(56) 산업자원부 장관은 20년 가까이 경영 일선에서 활동한 실물경제통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브레인으로 참여정부 출범때부터 장관 기용이 점쳐졌다. 그래서 올 1월 산자부 장관에 지명됐을 때도 열린우리당 당의장이라는 신분이 논란거리가 됐을 뿐 군말은 없었다.

정 장관은 취임 후 산자부의 조직을 팀제로 전환하고 권한을 이양, 순발력 있고 소명의식이 강한 부처로 탈바꿈시켰다. 자신은 역대 어느 장관보다 짧은 기간에 세계를 누비며 자원외교를 펼쳤고 국내에서는 성장동력 산업 육성과 기업 간 상생 협력, 투자유치에 힘을 기울였다는 평가다.

정 장관은 15일부터 노 대통령을 수행해 베트남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데 이어, 인도를 방문 자원외교와 함께 현지 한국 기업인들을 격려할 예정이다.

북핵 사태 이후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고 고유가로 자원전쟁이 치열한 가운데 산업 현장의 중심에 서있는 정 장관을 8일 과천 정부종합청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 기업 경제연구소들이 내년 한국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가운데 이달 초(11월 1~3일) ‘외국인 투자주간’행사가 열렸다. 성과가 있었나.

“북핵 같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은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 평가해 투자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점이 가장 큰 성과다. 150여 명의 외국인 투자자들과 SOC, 부품·소재, 항공우주 분야 등의 투자상담회를 열어 제조업 부문에서 약 33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61% 수준 증가한 것이다. 또한 구글(Google), 킴벌리 클락(Kimberly Clark) 등 세계 유수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 10개를 비롯해 다이소 인터내셔널, AMB property 등의 물류센터 21개도 유치했다. 이러한 부품 소재, 생산시설, R&D센터, 물류센터 등의 투자 유치는 우리가 동북아 비즈니스 허브가 되는데 꼭 필요한 것으로 우리 경제의 고부가가치화, 구조고도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 그럼에도 북핵을 비롯해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들이 적지 않다. 투자 불안정성에 대한 대책이 있나.

“내년에는 북한 핵실험 여파, 미 달러화 약세, 미국발 세계경기 하강 가능성 등 전반적으로 대내외 요건의 악화가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국내외 시장변화에 대한 면밀한 점검을 통해 불확실성을 줄이고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회복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통한 성장이 다시 투자,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기업환경을 개선하고 노사관계를 안정화하는 한편 혁신형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외여건 악화로 인한 경기 급락시에는 조기에 재정을 집행하고 선제적 금리 인하 등의 경기부양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

- 기업의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개편안이 초미의 관심사인데 부처 간 시각차가 크다. 산자부의 입장은.

“국가 전체적으로 성장잠재력이 떨어지는 게 문제인데 원인 중의 하나는 투자가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출총제 때문에 투자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이 있듯 심리가 (투자에)영향을 미치는 측면도 있다. 2003년에 앞으로 3년 동안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면 출총제를 없앨 수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 연장선에서 출총제를 없애거나 완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다른 규제를 한다면 기업들에게 불확실성을 키워줘 투자가 줄고 이것이 성장잠재력를 떨어뜨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가능하면 출총제를 없애고 사후 규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사후 규제라면 어떤 게 있나.

“출자나 투자는 기업들이 의사 결정에 따라서 하도록 두고 사후에 잘못된 것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예컨대 지배주주가 회사를 이용해 자기 개인 이익을 취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이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는 것이나 이사가 회사 이익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이 6일 서울 롯데호텔서 나이지리아 다우코루 석유장관과 나이지리아 철도현대화 사업과 유전 개발을 연계한 협력약정(MOU)를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을 유용하는 것을 사후적으로 상법상의 규제조항을 두어 그런 일들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 자회사나 특정 기업에게 물량을 몰아주는 것처럼 부당하게 경영을 하고 영업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공정거래법을 통해서 중소기업들과 공정한 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대기업을 규제하는 것이다.”

- 고유가 시대에 자원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에너지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안은 뭔가.

“국제적으로 자원전쟁이 치열한 가운데 남미 좌파 정권, 러시아ㆍ아프리카 등의 ‘자원 민족주의’경향으로 자원 확보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금년에 정상외교 등을 통해 참여정부 지난 3년에 버금갈 만큼의 에너지를 확보하는 성과를 이뤘다. 앞으로도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해 지역별, 에너지원별 자원개발 전략을 마련하고 자원개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또 ‘자원 민족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나이지리아의 예처럼 산업 인프라와 자원개발의 동반 진출을 추진하는 한국형 자원개발 모델을 확산하고 국제경쟁력을 갖춘 자원개발 전문회사를 육성하려고 한다. 올 12월 ‘자원개발 전문인력 양성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부족한 인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 해외 자원개발은 에너지만의 문제가 아니고 외교, 국방 등과도 연계돼 있다. 그동안 우리의 자원개발이 특정 국가에 한정돼 러시아 등 주요 국가들을 소홀히 해왔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참여정부에서는 에너지ㆍ자원의 공급 다변화를 위해 세계 여러 지역에서 자원을 개발 중이다. 석유는 중동지역 외 러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에서 총 88억 배럴(추정)을 확보했고, 철광석은 호주, 인도, 브라질 등에서 총 7억 톤을 도입키로 했다. 특히 러시아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에너지 자원이 풍부해 한ㆍ러자원협력위원회를 통해 전략적인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 신재생에너지인 바이오디젤(BD)과 관련 지난 7월 시판하면서 당초 ‘BD5’(경유 95%에 바이오디젤 연료유 5%를 섞은 제품) 대신 ‘BD 0.5’(경유 99.5%에 바이오 연료유 0.5%를 섞은 제품)를 공급해 BD정책이 후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바이오디젤을 상용화한 것은 아시아에서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보급물량 결정 당시 BD업체가 안정적으로 생산가능한 물량이 9만㎘였으므로 정부가 정유사와의 자발적 협약을 통하여 올 7월부터 2년간 연간 9만㎘이상을 보급토록 협약하였다. 이 협약 물량을 수송용 경유로 균등혼합하면 혼합비율이 0.5%가 된 것이지 BD보급 정책이 후퇴한 것은 아니다. 실제 상용화 이후 4개월간(2006년 7~10월) 평가한 결과 BD 보급량이 시범사업 기간인 지난해 보급량(1.5만㎘)을 초과한 약 2.7만㎘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바이오디젤 사업은 품질문제를 비롯 공급, 기술적 문제, 비용문제 등 여러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 12월 미국에서 열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협상에서 미국의 공세가 예상된다. 산자부의 전략은.

“미국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파악해 상품 양허안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데 전력하면서 쟁점이 되고 있는 자동차, 섬유시장 개방 이외에 비관세장벽의 철폐도 집중 공략할 계획이다. 특히 미국은 반덤핑, 상계관세 등 무역구제 문제에 있어서 논의조차 곤란하다는 입장인데 입장차가 적은 이슈부터 이견을 좁혀나가되, 미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한 FTA에서 수용했던 사항을 중심으로 이 문제들의 개선을 위해 보다 공격적으로 협상에 임할 것이다.”

- 자동차의 경우 일부에서는 품목 간 연계를 통한 타결이나 빅딜 방식의 협상도 거론되고 있는데.

“전체적인 이해득실을 분석하고 부처 간 협의를 거쳐 결정될 사안이므로 당분간은 각각의 협상분과 내에서 합의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문제에 대한 해법은.

“북핵 사태가 개성공단 문제에 부정적 영향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으나 개성공단 물품의 원산지 인정 문제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해외시장 개척과 북한의 개방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정부는 그동안 한국-싱가포르, 한국-EFTA(유럽자유무역연합), 한국-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FTA에서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받았고, 이 같은 맥락에서 한·미 FTA 협상에서도 개성공단 제품의 원산지 인정을 미국에 제안할 생각이다.”

- 지난 2월 취임 이후 가장 역점을 둔 부분과 성과는 뭔가.

“과거의 양적 성장 위주의 경제발전 모델에서 벗어나 성장 회복, 일자리 창출, 분배 개선을 위한 ‘질 좋은 성장’ 전략을 추진해왔다. 고용ㆍ균형ㆍ혁신 주도의 신산업정책으로 대기업ㆍ중소기업 상생 협력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혁신형 중소기업이 증가하는 등 중소기업의 경쟁력 기반이 확충됐다.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을 중요한 정책목표로 설정, 금년 3월 에너지기본법을 제정하였고 러시아, 알제리, 카자흐스탄 등 자원부국과의 협력을 확대하였다.”

- 최근 정가에서 당 복귀설이 거론되고 있는데 사실인가.

“당 일부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 같은데 지금은 맡은 일에 충실할 때다. 당에서 필요로 한다면 그때 가서 고민해 보겠다.”

- 정계개편론이 정치권의 화두다. 당 의장을 지낸 입장에서 견해를 밝힌다면.

“개인적으로 그에 대한 생각이 있기는 하지만 국정을 책임지는 국무위원 입장에서 견해를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 통합의 리더십… 대선정국서 맡을 역할 주목

정치권이 정계개편론과 대선 주자들의 힘겨루기로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이 소리없이 주목을 받고 있다. 정 장관은 정치에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의 당 복귀설과 이후 행보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즉 정 장관이 내년 초 대선 정국에서 잠룡으로 부상하거나 다시 당 의장을 맡아 당내 복잡한 사정과 대선에 따른 계파 간 충돌을 조정ㆍ통제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한 말이 나도는 배경으로는 정 장관이 3선의 중진으로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당 의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데다 당 의장 재직시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준 게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후문. 1995년 국민회의에서 정 장관과 함께 정치를 시작한 열린우리당 문학진 의원은 “정 장관이 당 의장을 맡았을 때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았으나 다양한 의원들을 아우르면서 이해관계가 복잡한 당을 무리없이 이끌어가는 것을 보고 정 장관의 리더십을 새롭게 본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호남의 한 의원은 “DJ 이후 호남을 대표할 인물로 정동영 전 의장, 천정배 의원과 함께 정 장관이 거론되고 있다”면서 “내년 대선 정국에서 당 대표나 대선 주자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가에서는 우리당이 당의 진로를 정하기로 공표한 내년 2월을 전후해 정 장관이 당에 복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경제부총리로 옮겨갈 것이라는 견해도 나돌고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