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간선거 민주당 압승… 상·하원, 주지사 모두 과반 확보럼스펠드 경질 이라크전쟁 궤도수정 예고… 대북정책도 유연해질 듯

7일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가 공화당 참패, 민주당 압승으로 끝났다. 민주당이 승리하리라는 것은 예견된 것이었으나 이렇게까지 완승을 거둘 것으로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임기 2년의 하원의원 435명 전원과 임기 6년의 상원의원 100명 중 3분의 1인 33명, 50개 주지사 중 36명의 주지사를 새로 뽑았다. 개표함을 연 결과는 공화당에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하원에서는 민주당이 공화당으로부터 30개 의석을 빼앗고, 자신의 202석은 고스란히 지켜냄으로써 과반선인 218석을 훨씬 넘는 총 232석을 확보해 다수당 지위를 되찾았다. 상원은 민주당성향의 무소속 2석을 포함, 51석을 획득해 역시 다수당에 복귀했다.

1994년 공화당에 내줬던 상ㆍ하원 의회 다수당 지위를 12년 만에 탈환한 것이다. 주지사 선거에서도 선거가 실시된 36개 주 중 무려 20개 주에서 승리해 50개 주 중 28개 주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대통령 선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오하이오, 뉴욕, 메사추세츠, 콜로라도 주 등에서 승리해 2008년 대선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백악관과 공화당에는 선거 참패에 따른 후폭풍이 몰아쳤다. 선거 다음날인 8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전격 경질하고 후임으로 로버츠 게이츠 전 중앙정보부(CIA) 국장을 지명했다.

이라크전 실패가 사실상 이번 선거의 명암을 가른 만큼 이라크전을 기획한 책임자 격인 럼스펠드 장관을 문책하지 않고서는 수습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음 직하다. 부시 대통령이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임기를 같이 할 것이라고 확언했던 럼스펠드 장관을 선거 하루 만에 경질했다는 점만으로도 집권 공화당이 받은 충격을 짐작할 수 있다. 럼스펠드 경질의 배경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일회용 깜짝쇼는 아닐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 정도로 봉합될 수 있는 국면이 아니기 때문에 그보다는 부시 정부 대외정책의 전반적인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라크전은 민주당조차 비판은 하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을 내놓는 것은 아니어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했다 해서 당장 정책이 달라질 여지는 많지 않다.

그러나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를 비롯한 이라크 정책이 최소한 정부와 의회의 조율을 통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과거 정부 주도의 일방주의 정책과는 차이가 크다. 특히 후임 게이츠 전 국장은 이라크 정책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초당적으로

부시 미국 대통령이 8일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경질을 발표한 뒤 함께 집무실을 걸어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구성된 ‘이라크 연구 그룹’의 멤버라는 점이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민주당의 의회 장악으로 정부뿐 아니라 의회 지도부도 대폭적인 물갈이가 예고되고 있다. 우선 다수당이 모든 위원장직을 독차지하는 원칙에 따라 그동안 공화당이 쥐고 있던 모든 위원장직이 민주당으로 넘어간다. 우선 공화당의 데니스 해스터트 의원이 맡고 있던 하원의장이 진보성향의 낸시 펠로시 민주당 원내대표(캘리포니아)에게로 옮겨간다. 여성인 펠로시 대표가 대통령과 부통령에 이어 정치권 서열 3위의 하원의장에 오르면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이 된다.

외교정책을 주로 다루는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위원장에는 과거 북한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던 대북 협상파인 톰 랜토스 의원(캘리포니아)이 유력하다. 군사위원장에는 역시 대북 협상파로 분류되는 아이크 스켈톤 의원(미주리)이 거론되고 있다. 상원에서는 조지프 바이든 외교위 간사가 리처드 루가의 바통을 넘겨받아 외교위원장에 오를 가능성이 크고, 군사위원장에는 칼 레빈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이 두 사람 역시 적극적인 대북 협상파이다.

민주당의 주요 인물 면면이 말해주듯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도 어느 정도 궤도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우선 북한 핵문제에서는 지금까지의 압박과 제재 일변도의 강경론에서 벗어나 협상과 당근을 제시하는 유연한 입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북·미 직접협상을 통한 포괄적 해결을 이끌어 내자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에 대한 제재 강도가 약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협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하되, 북한이 끝내 핵 포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그 결과에 대해서는 더욱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기류이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약속한 상황이어서 회담 중 당장 큰 폭의 정책 변화는 힘들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부시 대통령이 다음달 중순까지 임명해야 하는 대북정책조정관의 역할도 기대된다. 내년부터 발효되는 ‘국방수권법’에 따라 임명되는 대북정책조정관은 정부와 의회의 조율에 의한 산물이기 때문에 대북 협상에서 의외의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민주당의 의회 장악으로 암초를 만날 공산이 농후하다.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중소기업과 노동자의 권익, 고용 보장 등에서 적극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대폭적인 시장개방이 불가피한 FTA 협상은 그만큼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 내 자동차산업 노조를 적극 대변하면서 FTA에 부정적인 샌더 레빈 의원이 하원 세입세출위원회 산하 FTA 담당 소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보여 앞으로의 한·미 협상은 더욱 험난한 길을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중간선거는 2008년 치러지는 대선에도 적잖은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집권 2기에 치러지는 중간선거가 대개 그렇지만 이번 선거는 특히 승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차기 대선을 노리는 대선 주자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뉴욕주 상원의원 재선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의원은 일찌감치 승세를 굳힌 뒤 다른 민주당 후보의 지원유세에 더욱 열의를 보이는 대권 주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일부에서는 다음 대선에서 힐러리 의원과 상원의 유일한 흑인이자 차세대 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배럭 오바마 의원이 러닝메이트가 돼 공화당의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존 매케인 상원의원 조(組)와 한판 대결을 벌일 것이라는 때이른 추측도 내놓고 있다.

한인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2년 전 대선 때의 9명보다 8명이 더 많은 17명이 각 주 상ㆍ하원과 선출직에 출사표를 던져 이 중 14명이 당선되는 호성적을 냈다.


황유석 국제부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