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P "세계 6명 중 1명이 깨끗한 물 공급 못 받아"중동·수단 등 분쟁 원인 … 중국·한국도 식수난 예고

물 부족에 의한 재앙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물 부족은 지구 온난화와 그에 따른 기상이변의 한 결과이지만, 인간 실생활에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다른 환경재해와는 차원이 다르다. “21세기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물로 인해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는 경고 차원을 넘어 실제 지구촌 곳곳에서는 물로 인한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물 문제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위협에 비례해 점점 더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지구의 3분의 2가 바다인데 왜 물이 부족하다는 것일까. 바닷물은 염분 때문에 식수로 사용할 수 없다. 식수로 사용 가능한, 즉 염분이 없는 물은 지구 전체 수자원의 2.5%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중 3분의 2는 북극과 남극의 빙하에 갇혀 있는 상태이고 나머지 물의 20%도 사용할 수 없는 지역에 있거나 홍수 등으로 제때 사용하지 못한다. 이를 모두 감안하면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물은 지구 전체 양의 0.08%이다. 극소량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수치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이달 초 깨끗한 물을 얻지 못해 죽어가는 전 세계 어린이가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으로 사망하는 어린이의 5배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2006 인간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세계인구 60억 명 중 10억 명이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고, 26억명은 기본적인 공중위생 시설을 갖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매년 어린이 1,800만 명이 더러운 물로 전염되는 설사병으로 사망하고 있으며, 이런 더러운 물은 전쟁이나 무력충돌, 에이즈보다 인류의 생명이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태라면 2025년에는 물 부족을 겪는 인구가 10억 명에서 30억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 보고서가 더욱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수자원에서 특히 심각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 부국의 국민이 하루 변기 이용에만 쓰는 물은 50리터인데 비해 빈곤국 국민은 하루 5리터도 안 되는 물로 식수와 생활용수를 충당하고 있다. 특히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아프리카 인근의 사막화는 심각해져 빈국의 물에 따른 재앙은 예상하기 힘들 정도다.

유엔도 앞서 1일 아시아 지역이 만성적인 가뭄으로 위기에 봉착했다는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환경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의 물 수급량은 1명당 3,920㎥로 남극을 제외하고 가장 심각했다. 호수와 강, 지하수의 총량은 북미의 4분의 1, 남미의 10분의 1, 호주와 태평양 연안국의 20분의 1에 불과했다.

9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개막한 유엔개발계획(UNDP)의 '2006 인간개발 보고서' 회의 모습.
최근의 보고서에서 잇따라 지적되는 물 부족 현상은 이미 각국의 생존의 위협하는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엄청난 인구와 함께 경제가 폭발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중국이 대표적이다. 중국이 경제동력을 뒷받침할 에너지 자원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졌지만,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물 부족이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수자원 총량은 2조8,300억 톤으로 브라질, 러시아, 미국, 캐나다,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 6위였다. 그러나 1인당 수자원은 2,140톤으로 세계 평균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그나마 이 중 1조7,000억 톤은 홍수 때 그냥 흘러가거나 지하로 빠져나가 이용 가능한 수자원은 1조1,000억 톤으로 1인당 840톤에 불과했다. 그렇다보니 중국 전역 669개 도시 중 400여 도시가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인구로 보면 3억2,000여 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4%가 넘는다. 강물도 말라가고 있다. 홍콩의 일간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황허(黃河)강에서 바다로 흘러간 물의 총량이 1960년대에는 평균 496억 톤이었는데, 90년대는 141톤으로 줄더니 2002년 이후에는 46억5,000만 톤으로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40년 전에 비해 무려 90.6%가 줄어든 것이다.

이 때문에 황허강의 강물 이용률은 강물의 이용 한계치인 40%를 넘어 주변 생태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60%대로 올라갔다. 화이허(淮河)강, 랴오허(遼河)강 역시 수자원 이용률이 60%선에 이른다. 베이징(北京)을 거쳐 톈진(天津)으로 흘러가는 하이허(海河)강은 수량 전량이 바다에 이르기 전 모두 사용된다.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중동지역은 이미 ‘물 전쟁의 화약고’가 됐다. 인구는 전 세계의 5%를 차지하지만 수자원은 1%에 불과해 지질학적으로 물 부족에 따른 불안이 내재해 있는 곳이다. 영토분쟁으로 수차례 전쟁까지 치른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주민들은 요르단강의 수자원을 놓고 매일같이 물 전쟁을 벌이고 있다. 67년 발발한 3차 중동전쟁이 시리아가 요르단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려 한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최근 수십 만 명의 희생자를 낸 수단의 다르푸르 대학살도 물 부족이 한 원인이었다. 터키와 시리아, 이라크는 유프라테스강, 중국과 인도는 브라마푸트라강, 앙골라 나미비아 보츠와나는 오카방고강,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갠지즈강을 놓고 충돌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2개국 이상을 지나는 국제하천은 50개국에 241개. 이는 세계 인구의 40%가 인접국의 물에 의존한다는 뜻이어서 물을 확보하기 위한 각국의 쟁탈전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유엔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연간 1인당 사용할 수 있는 수자원 총량이 1,500㎥로 이집트, 모로코, 리비아, 레바논, 남아공, 체코 등 10여 개국과 함께 ‘물 부족(water stressed)’국가로 분류돼 있다. 세계 평균의 10분 1에 불과한 수치다. 인구밀도가 특히 높은 탓이다.

지난달 말 세계은행 부총재 출신의 영국 정부 수석 경제학자 니컬러스 스턴 경이 작성한 7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온난화 보고서가 지구 환경에 대한 암울한 전망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온난화에 따른 폐해는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결국은 물 부족 사태로 귀결된다는 게 이 보고서의 요점이다. 사막화, 경작지 감소, 이로 인한 식량 부족 사태는 모두 물 부족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유엔개발계획은 각국이 국내총생산(GDP)의 1% 이상을 깨끗한 물을 확보하는 데 쓸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최소한에 불과한 하루 20리터의 물에 해당하는 재원이다. 물 부족은 개별 국가뿐 아니라 지구적 차원의 문제라는 인식이 자리잡을 때만 해결될 수 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