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5세대 '떠오르는 별' 누구인가 ⑫ 네이멍구 주석 양징(楊晶)전국 최고 경제 성장률… 한때 '자아비판' 시련 불구 건재

중국은 한족(漢族)을 포함해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이른바 다민족국가이다. 그러나 한족이 13억 인구의 92%를 차지한다. 때문에 중국 최고 지도부에서 소수민족 출신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회족(回族)인 후이량위(回良玉) 부총리가 10명의 국무위원급 이상 고위 관료 중 유일한 소수민족 출신이다. 28명의 각료(부장, 주임) 중에서는 조선족 이덕수(李德洙)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이 눈에 띌 뿐이다.

인구 8%의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은 중국 전체 국토면적의 절반에 이른다. 이것이 성(省)과 구별되는 5개 자치구를 설치한 배경이다. 위구르족의 신장(新疆). 티베트족의 시짱(西藏), 몽골족의 네이멍구(內蒙古), 회족의 닝샤(寧夏), 좡족(壯族)의 광시(廣西) 자치구가 바로 그렇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한족 우위의 원칙은 변함없다. 해당 지역의 권력서열 1위인 서기는 한족이 맡고 정부 주석, 인대(人大) 상무위원장, 정협 주석 등을 그 지역의 소수민족이 맡는다.

네이멍구 자치구 주석 양징(楊晶)은 몽골족으로 이러한 관행에 의해 발탁되었지만 다음 몇 가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우선 그는 ‘후진타오(胡錦濤)의 아이들’에 속한다. 1953년 12월생인 그는 만 49세이던 2003년 4월 네이멍구 주석에 임명되었다. 2002년 11월 총서기에 선출된 후진타오는 다목적 포석 아래 지방 지도자에 자신의 사람들을 심기 시작했다. 2003년 1월에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출신의 멍쉐눙(孟學農)을 베이징 시장에 임명한 후진타오는 그해 4월에 역시 공청단 출신인 양징을 네이멍구 주석에 발탁하였다.

다른 자치구의 소수민족 출신 주석이 모두 40년대 출생인 반면, 양징은 50년대 출생이다. 후진타오가 이처럼 네이멍구를 세대교체의 시범지역으로 삼은 배경을 살펴보자면 후가 2003년 벽두 네이멍구의 가장 빈한한 마을을 방문한 것과 연결시켜 생각해야 한다. 후진타오는 한족과 소수민족 간의, 또 연해지역과 내륙과의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자신의 정책의지-이는 최근 ‘허시에(和諧 : 조화)’라는 슬로건으로 대변되고 있다-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집권 원년의 첫날을 몽골족의 파오에서 보냈던 것이다. 수도 베이징에 이어 우선적으로 자신의 사람을 네이멍구에 심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멍쉐눙은 사스(SARS) 복병을 맞아 좌초했지만 양징은 지난 11월 23일 자치구 주석이 겸하는 부서기에 재선되는 등 순항하고 있다.

양징이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대목은 몽골족으로는 드물게 한화(漢化)한 이름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중국에 동화하고자 하는 의욕을 드러낸 것으로 후진타오가 ‘허시에’와 함께 강조하는 ‘통일 다민족국가’ 이념에도 부합한다.

양징은 추보(儲波) 서기와 황금콤비를 이루고 있다. 후난(湖南) 성장으로 있다 2001년 장쩌민(江澤民)에 의해 네이멍구 서기로 승진 임명된 추보는 안후이(安徽)성 퉁청(桐城) 출신으로 후와는 지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추보-양징 콤비가 이끄는 네이멍구는 중국의 31개 성, 시, 자치구에서 몇 년째 성장률 수위를 고수하고 있다.

네이멍구의 국내총생산(GDP)은 2004년 2,712억 위안에 달했는데 이는 2000년에 비해 87.9%가 성장한 것으로 전국 수위였다. 올해 상반기 성장률도 18.2%로 1위다. 2위인 장쑤(江蘇)성(15.4%), 3위인 산둥(山東)성(15.3%) 보다 3% 포인트 가까운 격차를 벌일 정도로 압도적 1위다.

연해지역 성들을 제친 네이멍구의 고성장은 중앙정부가 제동을 걸 정도다. 국무원은 지난 8월 17일 양징에 자아비판서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중앙정부의 비준 없이 30만 KW의 발전소 2기를 지었다는 이유다, 발전소의 건설도 중단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양징을 부서기에 연임시켜, 여전히 신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양징의 과속질주가 ‘좌절’이 아닌 ‘시련’으로 귀결됐음을 알린 조치이다. ‘네이멍구의 기적’을 연출한 양징의 다음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양징의 학력은 다채롭다. 전문대학 과정인 네이멍구 공업학원에서 동력학을 배웠고 네이멍구 대학에서 단기 중국어 과정을 연수했다. 이어 네이멍구 당교(黨校)에서 경제관리학을 연수했고 중앙당교 청년간부 훈련반 과정을 이수한 뒤 사회과학원 대학원 과정에서 기업관리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이재준 객원기자·중국문제 전문가 webmaster@chinawat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