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통합신당파 갈등 겉으론 잠잠하지만… 노 대통령·김근태·정동영 등 동상이몽… 의원들도 이합집산 불가피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근의 정치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초 정치권 일각에서는 느닷없이 ‘노무현 당(黨)’설이 회자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2008년 총선에 출마하는 등 독자정당을 통해‘노무현식 정치’를 계속 추구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당시 황당하게 여겨진 말이 나돈 것은 노 대통령이 그해 8월 30일 열린우리당 의원들과의 청와대 만찬에서 “새로운 정치문화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면 2선 후퇴나 임기단축을 통해서라도 노무현 시대를 마감할 수 있다는 결단도 생각해 봤다”며 ‘중도사퇴’가능성을 시사한 게 단초가 됐다는 분석이다.

그때만해도 노 대통령의 임기전 ‘하야(下野)’발언은 같은 해 4ㆍ30 재ㆍ보궐선거로 여대야소 구도가 붕괴되고 한나라당에“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면 검토하겠다”고까지 하면서 제안한 ‘대연정(大聯政)’이 무산된 데 따른 ‘울분’의 토로 정도로 해석됐다.

그로부터 1년 3개월 가량 지난 11월 28일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며 극단적인 상황에 몰릴 경우 하야도 할 수 있음을 슬쩍 내비쳤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당의 진로와 정계개편을 놓고 당ㆍ청 갈등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나온 고도의‘승부수’ 성격을 띠고 있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당내 제 세력 간 갈등이나 당·청 관계에 직접 나서지 않았다. 10ㆍ25 재보선 참패 이후 김한길 원내대표가 11월 7일 "열린우리당 창당의 정치실험을 마감하고 지켜가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려내야 한다“며 우리당 해체를 기정사실화하고 통합신당론을 공식화할 때도 관망만 했다.

그러나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인사파동과 정계개편 논란이 당의 진로와 노 대통령의 거취 문제로까지 비화되면서 숨겨두었던 비수를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당내 친노(親盧)-비노(非盧) 진영 간 파워게임에 노 대통령이 발을 담그면서 우리당의 최대 현안인 당 진로와 정계개편, 대선지형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됐다.

우리당 내부는 헤쳐모여식 신당을 추진하는 통합신당파와 당을 리모델링, 또는 재창당하자는 당사수파가 힘겨루기를 하는 가운데 신당파는 민주당 및 고건 신당과의 연대에 긍정적인 반면 당사수파는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신당파가 대선주자인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 세력을 두 축으로 하고 당사수파는 노 대통령을 가장 든든한 후원자로 두면서 양측의 대립은 차기 대선구도와도 맞물려 있다.

신당파는 우리당의 현재 모습이나 당사수파의 리모델링, 재창당 수준으로는 내년 대선은 물론 이듬해 치러질 총선에서도 승산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비관적 전망에 노 대통령의 책임이 큰 만큼 노 대통령과 ‘결별’하거나 거리(노 대통령의 탈당)를 두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한 이면에는 우리당의 주도권을 잡아 정계개편을 주도하고 대선후보 선출은 물론 2008년 총선에서도 ‘생존’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복안이 내재돼 있다.

최근 김근태 의장이 노 대통령과 맞장을 뜨는 데는 그러한 배경도 한몫하고 있다. 당ㆍ청 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던 11월 28일 노 대통령이 임기단축, 탈당 가능성을 시사한 다음날 김 의장이 “원내 1당으로 민심을 북극성으로 삼고,오직 민심에 복종하는 정치를 하겠다"며 맞대응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집권여당’이란 말 대신 ‘원내 1당’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우회적으로 노 대통령의 탈당을 촉구한 것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11월 30일 “신당을 하자는 것은 지역주의 정당으로 가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하자 김 의장은 다음날 “통합신당을 지역당으로 비난하는 것은 제2의 대연정 발언”이라며 맞받아친 뒤 "당이 나갈 길은 당이 정한다. 당이 결론을 내면 당원은 결론을 존중해야 한다"라며 노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노 대통령과 김근태 의장의 대리전으로 비쳐지던 신당파와 당사수파의 대립은 12월 1일 우리당 지도부가 당의 진로를 ‘의원 설문조사’를 통해 결정한다는 방침을 정한 데 대해 4일 노 대통령이 정면으로 반박하는 ‘노무현식 편지정치’를 펼치면서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노 대통령은 ‘당원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열린우리당의 진로와 방향이 당 지도부나 대선 후보, 의원들만으로 결정될 수 없다”며 승부수를 띄었다. 당원이 당의 중심이라는 메시지라며 당내 친노 그룹은 맞대응에 나섰고 당 밖 친노 세력이 속속 결집했다.

친노 성향의 중앙위원과 당원협의회장 등 270명은 5일 김근태 의장이 이끄는 당 비상대책위원회를 즉각 해체하고 당 진로를 결정하기 위한 '전당대회 준비위원회' 구성을 촉구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섰다.

김혁규, 이광재, 이화영 등 친노 의원들은 “향후 정계개편에서 노 대통령과 뜻을 같이한다”며 “전당대회에서 지도부를 뽑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해찬, 이강철, 문재인, 오영교 등 노 대통령의 정무특보 등은 당 중진과 각 지역 출신 의원들을 만나 ‘노심(盧心)’을 전하는 데 앞장섰다.

친노 진영의 총공세가 거세지자 당 비대위는 6일 “내년 3월 이전에 전당대회를 개최하겠다”며 한 걸음 물러섰다. 전당대회 이전의 비대위 해체 여부, 정기국회 종료 직후 설문조사 실시 문제, 전대의 성격과 의제 등을 놓고 공방전을 계속하고 있지만 신당파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노 대통령은 당의 진로 및 내년 대선과 관련 나름대로의 그림을 그리면서 당 진로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전언이다. 당 진로와 대선 모두 참여정부가 일관되게 추구한 지역주의 타파, 금권정치 청산, 국가균형 발전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당 사수를 천명하고 신당파가 추진하는 통합신당을 지역주의로의 회귀로 보는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다. 한나라당에게 대연정과 중대선거구제를 제안한 것이나 최근 호주, 인도네시아 순방에서 내각책임제, 연합정치 등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발언한 ‘잔여 임기 포기’결단도 현실화될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친노 직계인 백원우 의원은 “노 대통령은 ‘원칙’을 중시한다. 원칙을 위해, 그리고 역사 앞에서 떳떳할 수 있다면 대통령직을 내놓을 수도 있다”고 말해 그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노 대통령은 차기 대선에서 참여정부가 추구해온 가치를 유지하는 데 ‘재집권’의 진정한 의미를 두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재집권이 가능한 대선 지형을 만들고 당선 가능한 후보를 출마시켜야 한다는 것.

노 대통령이 당 사수를 주장하는 이면에는 영남 개혁세력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한 호남과 충청에서 100%의 지지를 받아도 집권이 어렵다는 현실론에 근거한다는 게 측근 의원의 설명이다. 그는 “정동영ㆍ김근태 주자는 재집권을 위한 대선 지형을 만들고 영남표를 얻는 데 부족하다는 게 친노 진영의 공통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과 김근태 의장의 대리전 양상을 띠며 전개된 신당파와 당사수파의 전선은 6일 열린우리당 비대위가 내년 3월 이전에 전당대회를 개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겉으로는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반면 물밑에서는 내년 초 전당대회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세몰이가 치열해지고 있어 또 다른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든, 통합신당파든, 사수파든 전대 결과에 승복해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정치적 무덤’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전대와 관련 최근 정동영 전 의장과 잠룡으로 꼽히는 천정배 의원이 주목받고 있다. 신당파의 또 다른 축인 정 전 의장은 노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도 탈당에는 소극적인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해왔다. 이는 정 전 의장이 당내 친정동영계 비주류 의원이 다수 있고 ‘국민참여1219’ 등 지지그룹이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당 주변에서는 김근태 의장이 노 대통령 진영의 압박과 정 전의장의 견제에 밀려 탈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최근 불거진 ‘선도탈당론’에 김 의장측 의원들이 다수 거론되는 것도 그러한 소문을 뒷받침했다..

정 전 의장은 7일 MBC라디오에 출연, “정치에 올인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하며 노 대통령에 포문을 열고 김근태 의장에게 손을 내밀어 주목을 받았다. 신당파의 두 축이 새롭게 공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뒤따랐다.

천정배 의원은 김 의장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지만 전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김근태-정동영-천정배 연대도 점쳐진다.

신당파는 전대를 통해 통합신당 추진을 공식화하려는 계산인 반면, 친노 그룹은 이를 저지하고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해 정계개편 작업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노 대통령과 김 의장, 정 전 의장의 대선 그림은 동상이몽이다. 내년 초 우리당 전대는 차기 대선과 관련한 정계개편의 향방을 가를 시발점이 될 전망이다.

열린우리당 세력분포

<당 사수파>

■ 친노그룹

*의정연구센터 : 이광재

이화영 백원우 서갑원

*참여정치실첨연대 : 이광출 유시민 김형주 유기홍 김태년 강기정

*영남권(부산ㆍ경남) : 김혁규 조경태 조성래 윤원호 최철국 강길부

신진보연대

신기남 이원영

<중립>(친노중진)

문희상 유인태 염동연 이해찬 배기선 김원기

<통합신당파>

*‘민주평화연대’ 및 친김근태

장영달 문학진 임종석 이인영 오영식 유선호 이목희 정봉주 최규성 이기우 우원식 유승희 선병렬 윤호중 임종인 홍미영 노영민

*새로운 모색(재선 중도개혁 그룹)

송영길 김영춘 김부겸

*‘바른정치실천연구회’ 및 친정동영계

김한길 이강래 박명광 민병두 이종걸 최성 채수찬 최용규 김영주 김현미 박영선 노웅래 우윤근 정장선 김희선 최규식 김낙순 정청래 강청일

*‘안정적 개혁을 위한 모임’‘희망21포럼’ 등(중도실용그룹)

유재건 안형근 이근식 박상돈 정덕구 강봉균 조배숙 박병석 홍재형 양형일 조성태 김명자 김성곤 우제창 박기춘 김선미 장경수 강성종 서재관 신학용 심재덕 오재세 우제항 이계안 유필우 홍창선 주승용 정의용 변재일 이시종

*‘처음처럼’‘국민의 길’(초선중심 중도개혁 그룹)

조정식 최재성 김동철 김재윤 김교흥 장성호 지병문 한병도 양승조 우상호 노현송 안민석 이상경 제종길 전병헌 장복심 한광원 이상민

*천정배



7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6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의 밤'행사에서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