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최고 항소법원, 이례적 신속 결정 "대통령도 번복 못해"시아파 대규모 봉기 경고 등 후유증 커 실제 집행은 미지수

26일 이라크 고등법원의 사형선고에 후세인이 삿대질을 하며 거세게 항의를 표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 대한 사형 판결이 확정됐다. 이라크 최고 항소법원이 사형선고를 내린 1심 법원의 원심을 지난 26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라크 고등법원의 라에드 주히 대변인은 “사형은 27일부터 향후 30일 이내에 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주히 대변인은 “대통령이 법원의 판결을 뒤집을 수 없으며 사형집행 명령에 서명하지 않더라도 이라크 사법절차에 따라 사형이 집행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라크 사법체계는 2심제이기 때문에 이번 항소법원의 판결은 우리의 대법원과 같은 최종적인 효력을 가진다. 후세인 전 대통령은 지난달 5일 1심에 해당하는 이라크특별재판소(IST)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IST는 2003년 12월 후세인이 체포되기 사흘 전 미군 주도의 임시행정처(CPA)가 후세인의 23년에 걸친 철권통치 하에서 저질러진 반인륜범죄 및 전쟁범죄를 단죄할 목적으로 고등법원 내에 설치했다.

항소법원의 사형 확정 판결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지만, 집행 시한을 한 달 내로 못박은 것은 예상치 못한 뜻밖의 결과이다. 쿠르드족 학살 사건 등 후세인이 받고 있는 다른 혐의 사실에 대한 조사가 진행중인 상황이어서 최소한 이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될 때까지는 집행이 유보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단죄’보다는 ‘진실 규명’이 더 중요한 만큼 종신형이 나올지 모른다는 일부의 시각도 이 같은 맥락에서였다.

그러면 항소법원이 왜 이렇게 급박하게 후세인에 대한 사형 집행을 결정했을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조바심’이 판결에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라크전이 4년이 다 돼가는 데도 해법이 보이지 않는 데 따른 정치적 부담을 후세인 사형을 통해 일정부분 해소해 보겠다는 계산을 했음직하다.

이라크전의 최대 전리품인 후세인을 사형 집행하는 것보다 이라크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선전할 수 있는 더 극적이고 확실한 재료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정부가 새 이라크 정책을 발표하겠다고 한 다음달은 후세인의 사형집행 시한(1월 27일)과 거의 시기가 일치해 후세인 사형 집행과 미국의 새 이라크 정책이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불러 일으킨다.

이라크 정치 상황도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현재 이라크는 각 정파 간, 종파 간 연정 구성 논의가 활발하다. 누리 알 말리키 총리 정권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후세인 처리 문제를 현 정권이 마무리 지어 준다면 차기 정권은 과거의 족쇄에 얽매이지 않고 홀가분하게 ‘미래’에 집중할 수 있다. 사형 집행에 따른 단기적 충격은 있겠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식으로 정면돌파를 선택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후세인의 나이가 내년 4월이면 이라크 법으로 사형이 금지된 만 70세가 된다는 것도 사형 확정을 서두른 이유로 여겨진다.

그러면 후세인에 대한 사형이 실제 집행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법적으로는 법원의 판결대로 강행하는데 별 장애는 없다. 사형이 집행되려면 대통령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대통령과 2명의 부통령의 서명이 모두 필요하다. 잘랄 탈라바니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후세인 사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나 후세인 사형문제를 부통령에게 위임한다고 밝힌 상태고, 부통령 2명도 사형에 찬성하는 입장이어서 이대로라면 집행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후세인의 재판을 자문해온 케이스 웨스턴 리저버 대학의 마이클 샤라프 교수는 CNN 방송과의 회견에서 “일반적인 느낌은 처형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문제는 사형 집행으로 야기될 극도의 혼란을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내전 상태에 돌입해 있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 분쟁은 후세인 정권 시절 권력을 장악했던 수니파의 무장세력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의 침공으로 수십년 간 누려왔던 권력을 하루아침에 빼앗긴 수니파에게 후세인 처형은 대규모 봉기를 불러 일으키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명분이다.

후세인 정권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바트당은 “후세인을 처형한다면 미국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에 나서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사형 집행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은 이런 점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상황을 감안해 날짜와 장소를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후세인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뒤 추후 적당한 시기에 그 사실을 공개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사형 집행에 따른 후폭풍 외에 재판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도 큰 부담이다. 후세인이 받고 있는 더 큰 혐의의 많은 사건들이 여전히 규명되지 않고 남겨진 상태에서 후세인을 제거한다는 것은 그 사건들에 대한 심리 중단과 함께 역사의 실체를 영원히 묻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형 판결이 내려지게 된 시아파 두자일 마을 주민 학살 사건에 대한 1심 재판도 후세인이 1년 가까이 변호인 접견 없이 일방적인 심문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됐고, 채택된 증인도 익명으로 법정에 출두하는 등 국제 전범재판에서 보장하는 피고인의 권리가 박탈됐다는 의혹을 샀다. 이번 일련의 허술한 재판 과정 때문에 결론을 미리 낸 ‘승자의 재판’, ‘정치적 재판’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사형 판결이 확정된 다음날인 지난달 27일 후세인의 옥중 서한이 공개됐다. 지난달 5일 작성된 것으로, 요르단에 있는 변호인단에 의해 내용이 알려진 이 편지는 최후를 감지한 자신의 심정을 드러냈다. “위대한 이라크 국민과 모든 인류에게”로 서두를 시작한 후세인은 자신을 “현명하고 판단력이 정확하고, 공정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차별 없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

또 “내 죽음은 이라크를 위한 희생이며, 신이 순교자와 함께 내 영혼을 하늘로 보낼 것”이라고 해 자신의 무죄를 거듭 강조했다. 재판에 대해서는 “공정하지 못했다”고 주장한 뒤 “여러분 누구도 증오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투쟁하는 이라크인이여, 영원하라” “지하드(성전), 무자헤딘(전사) 만세” 등 저항을 촉구해 편지의 목적에 대한 다양한 상반되는 해석을 낳았다. “침략자들이 전범재판소라 부른 곳에서 최후 변론의 기회를 얻을 것으로 예상하고 편지를 썼지만 그럴 기회를 잃었다”고 편지 말미 추신에 밝힌 대로 인간 후세인의 시대는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황유석 국제부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