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상원의원 이어 힐러리 상원의원 공식 출사표 던져민주당 경선전 벌써 열기… 누가 대통령되든 정치사 새章

‘힐러리냐 오바마냐’.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뉴욕주 상원의원이 20일 내년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민주당 당내 경선이 본격 점화했다. 4일 전 출사표를 던진 배럭 오바마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에 이어 힐러리 의원까지 대선 경쟁에 뛰어들어 일찌감치 선거 모드로 전환한 민주당은 과거 미국 정치사가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정치혁명’에 가슴을 부풀리고 있다.

그것은 힐러리 의원이나 오바마 의원 모두 미국 정치권에서는 소수세력인 여성과 흑인이라는 점, 특히 이 두 후보가 당내 지지도에서 각각 1, 2위를 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중 누가 민주당 후보로 낙점받더라도 미국 정치사의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힐러리 선거자금, 조직력 앞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으로 퍼스트 레이디에서 상원의원으로 입성한 첫 사례라는 기록을 세운 힐러리 의원은 민주당 후보가 된다면 미국 역사상 첫 여성 후보라는 또 하나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여기에다 대선 본선에서도 승리해 백악관에 입성한다면 남편에 이어 부인까지 대통령이 되는, 미국 정치사에 ‘최초’라는 타이틀을 또 하나 추가하게 된다.

최초의 흑인 상원의원이란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오바마 의원 역시 대권 도전을 선언한 첫 흑인이라는 점에서 민주당 당내 경선이 갖는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둘 외에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도 출마를 선언했지만 민주당 흥행의 향배는 힐러리와 오바마 두 사람이 쥐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재 힐러리 의원의 지지도는 40%를 웃돌아 당내 경쟁자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17%대의 지지도로 2위인 오바마 의원보다 두 배가 훨씬 넘는 수치다. 선거자금 모금 능력이나 캠페인 조직 면에서도 당내에서는 경쟁자가 없을 정도다.

내년 말까지의 긴 대선 레이스를 생각하면 초반이긴 하지만 힐러리 의원이 이렇게 압도적으로 앞서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클린턴 대통령 시절 퍼스트 레이디로서 8년간 백악관을 지킨 경험이 있어 누구보다도 대통령 직무를 잘 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특히 힐러리 의원은 과거 전통적인 퍼스트 레이디 상에서 벗어나 정치 일선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통령인 남편을 제치고 의료ㆍ교육 개혁을 주도해 ‘공동 대통령(co_president)’이란 신조어를 낳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남편이 1992년 대선에 처음 출마했을 때 자신보다 더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던 아내 힐러리를 염두에 두고 ‘하나 가격에 둘을 사는 셈’이라는 슬로건을 내놓아 ‘빌러리(빌+힐러리)’란 말이 유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상원의원으로서 높은 의정 능력을 보여준 것도 그의 큰 재산이다. 대통령 재직 중 성추문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남편 클린턴의 후광도 그의 대중적 인기에 한몫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강점이 많은 만큼 약점도 많다. 무엇보다 그에 대한 ‘호불호’ 층이 뚜렷하다는 것이 최대 걸림돌이다. 젊은 여성층 같은 고정 지지층이 탄탄한 것 못지 않게 ‘힐러리는 안돼’라고 하는 심정적 안티 세력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의 정치적, 기회주의적 성향에 대한 불만이 바닥에 깔려 있다.

힐러리 의원이 대부분의 진보세력과 달리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안에 찬성표를 던지고, 민주당이 강력 반대하고 있는 미군 증파안에 대해서도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다. 보수언론의 대부격인 루퍼트 머독과도 손을 잡았다. 보수파 등의 표를 의식해 명분을 훼손하는 기회주의자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 등 안보불안이 어느 때보다 놓은 상황에서 ‘안보에 취약한 여성에게 군통수권을 맡길 수 없다’는 남성들의 불안심리도 극복하기 쉽지 않은 과제다. 이밖에 똑똑한 여성이 으레 풍기는 ‘차가운 여성’이라는 이미지도 유권자들이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오바마 전력 싸고 신경전 가열

힐러리 의원과 오바마 의원 간의 불꽃 튀는 선거전은 이미 시작됐다. 힐러리 의원은 아직까지는 지지도 면에서 여유 있게 앞서고 있지만 2위인 오바마 의원의 지지세가 하루가 다르게 확산되는 상황이어서 긴장을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언론에서는 힐러리 의원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당내 카드로 오바마 의원을 지목하면서 현재의 지지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오바마 의원이 어린 시절 급진 이슬람 학교에 다녔다는 한 잡지의 최근 폭로기사는 이런 팽팽한 긴장국면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보수성향의 잡지 ‘인사이트’는 “오바마 의원이 백인 어머니와 인도네시아인 계부와 함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살던 1967~1971년 극단적 이슬람 근본주의를 가르치는 급진 무슬림 초등학교인 ‘마드라사’를 다녔다”고 보도하면서 논란의 불을 댕겼다.

이 잡지는 특히 힐러리 의원측이 이를 폭로했다고 밝히고 나와 더욱 문제가 커졌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힐러리 의원측이 암암리에 오바마 의원에 대한 뒷조사를 하고 있었고,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결과를 흘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보도가 나가자 폭스뉴스, 뉴욕포스트, CNN 등에서 이런 의혹을 잇따라 거론했고 급기야 각종 정치 블로그에까지 오르내리면서 삽시간에 파문이 확산됐다. CNN이 인도네시아 현장에 기자를 파견해 확인한 결과 “오바마 의원이 이슬람 학교를 다닌 것은 맞지만 보도대로 급진적 종교학교는 아니다”고 확인해 논란은 진정됐지만 이런 흑색선전의 발원지가 어딘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힐러리 의원측은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의심의 눈초리에 펄쩍 뛰면서 “우익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오바마 의원과 힐러리 의원의 출마 선언을 계기로 주목받는 또 하나는 인터넷이다. 두 사람 모두 웹사이트 동영상을 통해 선거출마 의사를 밝혔는데, 이는 내년 대선이 네티즌의 표심을 누가 잡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의식한 것이란 해석이다. 인터넷의 위력은 미국 정치판도에서도 이미 입증됐다.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는 2004년 대선 경선 때 인터넷 선거운동으로 불리했던 판세를 일거에 역전시켰고, 공화당의 차기 대선 후보군 중 하나였던 조지 앨런(버지니아) 상원의원은 인종차별 논란을 빚은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려지면서 지난 중간선거에서 예상 밖의 패배를 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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