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2·13합의 막전막후중유 100만 톤 제공으로 2년 동안 협상국면으로… 美도 이란문제 전념할수 있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2월 15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베이징(北京)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 초기 이행조치’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진 지 이틀 뒤였다. 부시는 중국이 압력을 가해 북한이 회담 테이블로 나왔다고 말했다. 부시가 말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압력은 무엇일까.

우선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18호에 대한 중국의 신속한 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유엔결의안 1718호는 북한에 대해 핵 관련 물질과 기술의 이전을 금지하자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핵심은 사치품의 북한 이전을 금지하는 것이다.

미국은 김정일 정권이 주민의 대규모 아사에 눈도 꿈쩍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김정일의 식탁과 선물보따리의 ‘격’이 떨어지는 것에는 분명 조바심을 낼 것이라고 판단했다.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계좌 동결 조치를 통해 얻어진 초일급 대북한 정보에 바탕을 둔 판단이었다. 동결된 북한의 금융자산은 2,4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 문제를 6자회담의 진전과 연계시킴으로써 자신의 치명적 약점을 누설했다.

BDA는 6자회담과 무관하다며 미국의 딴청에 북한은 미사일 발사 실험, 지하핵실험 등 쓸 수 있는 카드를 모두 던지며 미국을 압박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북한 핵 능력의 속살이 드러났다. 칼집에서 나온 칼은 좀 무뎌 보였다. 대포동 2호는 실패했고 지하핵실험 규모는 예상보다 소규모였다.

후진타오 주석의 외교 브레인 왕지쓰(王緝思)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1월 18일 한국의 관훈클럽 창립 50주년 기념 세미나 강연에서 북한 핵실험 이후 미국의 마지노선이 핵 비확산으로 후퇴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북한의 현재 핵 수준에 대해 미국이 다소 안심했다는 의미도 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신속하게 입장을 정리함으로써 안보리 결의안 1718호가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결의안 통과는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지 불과 5일 후인 10월 14일에 이루어졌다. 김정일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BDA 동결에다 사치품 이전까지 금지됨으로써 김정일의 처지는 설상가상이 되었다.

중국이 취한 또 다른 압력은 석유공급 중단 시사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이 있은 다음 2006년 9월 중국의 대북한 석유수출은 세관통계상으로 ‘제로’였다. 이것만으로 중국이 북한에 대한 석유 수출을 중단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는 북한에게 중국이 ‘석유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음을 시위하는 효과는 충분히 주었을 것이다.

한국 정부도 쌀과 비료 제공을 멈췄다, 일련의 사태 진행은 김정일에게 ‘여민동고(與民同苦)’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김정일은 결국 발을 뺐다. 부시가 중국이 압력을 가해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됐다는 지적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미국과 중국 역시 6자회담의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가 아니었다면 2·13합의는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부시 정권은 상·하 양원을 모두 민주당에 내주었다. 이라크전 실패가 주요인이었다. 정권마저 내줄 심산이 아니라면 부시는 중동문제에 올인해야 했다.

북한 핵문제의 더 이상 악화는 금물이다. 부시는 BDA동결 일부 해제와 북·미 직접 접촉 수용을 통해 이를 실현하려 했다. 원리주의 성향의 부시로서는 이는 대단한 양보이다. 부시와 김정일이 적대적 공존을 도모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결국 힐과 김계관이 제네바에서 만났다. 이는 2·13 합의에 대한 ‘가조인’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역시 상습적 ‘파티 훼방꾼’을 달래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은 미국 230주년 독립기념일 오후를 망쳤고 핵실험은 중국의 국경절 연휴 마지막 날에 실시됐다. 당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신임 일본 총리가 중국을 방문, 고이즈미 전 총리 이래 냉각될 대로 냉각된 중·일 관계의 복원을 논의하는 때이기도 했다.

중국은 ‘나쁜 행동’, ‘제멋대로’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한동안 분을 삭이지 못하였다. 하지만 결국 ‘미운 놈’에게 효과적인 것은 ‘회초리’가 아니라 ‘떡’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중국은 북한과 미국 간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근본적 해결에 앞서 우선 시간을 벌 필요가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앞서 언급한 왕지쓰 원장은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해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정책이 단번에 바뀔 수는 없다”고 말했다. ‘회초리’를 들려던 중국의 기세는 어느 순간 ‘떡’을 안겨주는 쪽으로 전환했고 이는 6자회담의 재개와 합의 도출을 이끌어 내는 데 결정적 배경이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2·13 합의문’을 살펴보면 이 합의는 ‘시한부 휴전 조약’이라는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2·13 합의문에는 북한이 현재 보유한 핵무기, 2차 핵위기의 발단이 된 농축 우라늄(HEU) 문제, 그리고 과거 핵 활동 문제에 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고 있다. 골자는 현재 드러났고 북한도 인정한 핵 활동인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disablement)' 이행 수준과 연계하여 중유 100만 톤 상당의 지원을 북한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5개국이 균등하여 부담하도록 했는데 이는 2·13 합의가 1994년 북·미 제네바 핵 합의와 외형상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로 다른 결정적 요소다. 제네바 핵 합의는 북한과 미국이 약속하고 그에 상응한 부담은 미국과 한국이 대부분을 지는 구조였다.

한국부담 5분의 1, 영향력도 그만큼 축소

하지만 2·13 합의는 북한과 기타 5개국 간의 약속이고 부담도 나눠진다는 구조이다. 한국의 부담이 5분의 1로 줄어 들었지만 북한에 대한 발언권 지분도 5분의 1로 축소되게 됐다. 이는 북한 유사시를 상정할 때 우려되는 측면이다.

북·미 제네바 핵 합의에 따른다면 중유 100만 톤은 2년분이다. 2년 동안 북한 핵문제를 협상 국면으로 관리하자는 데 북·미·중 3국이 합의했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 기간 중에 한국의 대통령 선거, 중국의 베이징 올림픽, 그리고 미국의 대선이 치러진다. 한국의 대선 과정에 공공연히 개입하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는 유화국면이 당면한 경제위기를 타개하는 데나 자신에게 유리한 정세가 지속되게 하는 데 보탬이 된다고 판단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 핵문제가 다시 불거져 올림픽이 망쳐지는 사태를 막으려 노력할 것이다. 부시에게도 차기 대선까지 중동문제에 집중하려면 북핵의 안정관리가 절실하다.

미국과 북한이 동상이몽을 꾸고 있음은 2·13 합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드러났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불능화’를 ‘일시 중지’라고 보도했고 부시는 후진타오와의 전화회담에서 1718호의 계속적 이행을 강조했다. 시한부 공존은 약속했으나 계산은 여전히 제각각이다. 어렵게 이룬 합의의 이행이 제대로 이루어질까 하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불안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2·13 합의는 2년간은 벼랑 끝 항해나마 계속할 것으로 판단된다. 무엇보다도 이 합의가 김정일과 부시의 아킬레스건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김일성도 감히 하지 못했던 핵실험을 단행했다. 아들 부시 역시 아버지 부시가 주저했던 바그다드 진공을 감행했다.

그런 그들이지만 ‘식탁’과 ‘선거’의 압박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년간의 불안한 항해를 조심스레 낙관하는 보다 큰 이유는 중국 때문이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을 망치는 행위가 ‘레드라인’임을 북한에 주지시키며 핵문제 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지난해 중국과 미국의 파티에 재를 뿌렸던 김정일이 자신의 파티는 망치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2·13 합의는 그의 생일 3일 전에 타결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BDA 계좌 동결처럼 김정일의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과 중국은 이를 활용하지 않을까.


이재준 객원기자·중국문제 전문가 webmaster@chinawat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