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이볜 총통 '탈 중국' 행보 가속화… '독립 기초공사·선거용' 분석 엇갈려

천수이볜 대만 총통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은 정말 대만을 중국에서 독립시킬 생각일까.

최근 대만 정부가 잇따라 내놓고 있는 다양한 ‘탈 중국화’ 정책의 배경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내년 초 2기 정부가 끝나는 천 총통이 사실상의 집권 마지막 해인 올해 평소 신념대로 대만 독립을 위한 기초공사를 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올 12월 총선과 내년 3월 총통 선거(대선)를 위한 민심 결집용이란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내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올림픽이 대만 독립의 절호의 기회라는 주장까지 겹쳐 독립을 둘러싼 대만 정가의 정치적 담론은 내년까지 끊임없이 계속될 전망이다. 지향점과 종착지가 어디이건 간에 대만에서 중국을 탈색하려는 움직임은 점점 속도를 내고 있다.

천 총통의 ‘중국 지우기’는 크게 헌법 개정과 ‘정명(正名) 운동’ 두 가지 트랙에서 진행되고 있다.

2000년 본토가 아닌 대만 출신으로 처음 집권에 성공한 천 총통은 대선 승리 직후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중국을 대만의 영토로 규정한 헌법을 고치겠다고 공언해 왔다. 최근에는 개정 차원을 넘어 국민투표로 아예 새 헌법을 만들자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지난해 2월에는 통일정책기구인 국가통일위원회와 국시(國是)인 국가통일강령의 운용을 중단시켰다.

헌법개정이 대만 독립의 총론이라면 정명운동은 각론이다. 말 그대로 ‘이름을 바로 세운다’는 이 운동은 대만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각 분야에 깊이 뿌리내려 있는 ‘중국’이라는 이미지를 대만화한다는 것이다. 천 총통은 2004년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대만’으로 부르자며 정명운동의 시동을 걸었다.

모든 재외공관과 국ㆍ공기업의 명칭도 ‘대만’만 쓰라고 지시했다. 지난달 9일에는 국영기업에 붙은 중국이라는 글자를 모두 없애기로 한 방침에 따라 중국석유공사와 중국조선공사, 우편회사인 중국우정 등의 기업 명칭이 각각 대만중유, 대만국제조선공사, 대만우정 등으로 바뀌었다. 우표에 표기된 ‘중화민국’ 표기도 모두 ‘대만’으로 바꾸기로 했다.

중국과의 역사적 고리 단절 작업 추진

공기업 명칭뿐만이 아니다. 대만 정부는 역사교과서 개정을 통해서도 중국과의 역사적 고리를 끊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당장 올해 새학기부터 고교에서 사용할 역사교과서 제2책의 제목을 ‘본국사’에서 ‘중국사’로 고치고 ‘본국’, ‘대륙’이란 표현을 모두 ‘중국’으로 바꿨다. ‘본국’, ‘대륙’이 주는 중국과 대만과의 일체감을 없애고 중국을 제3자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겠다는 뜻이다.

이전 교과서에서 몇 개의 시기로 나눠 상세히 서술했던 중국 역사도 하나로 묶어 한 학기에 마칠 수 있도록 줄였다. 공화국을 설립해 국부로 추앙받던 쑨원(孫文)이라는 표현도 사라졌다. 타이베이(臺北) 고궁박물원의 문물설명서는 중국에서 왔다는 표현을 삭제하고 ‘중국 고대 문물’이라는 표현을 모두 ‘국내외 문물’로 바꿨다.

대만의 홀로서기 시도는 가장 보수적이라는 군부에까지 파고들고 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해 대만을 세운 뒤 75년 숨질 때까지 집권한 장제스(蔣介石) 전 총통의 동상이 군 기지에서 최근 퇴출된 것이다. 장제스의 동상은 20여 년에 걸쳐 대만 내 공원ㆍ학교ㆍ정부기관 등에서 꾸준히 철거돼 왔지만 군부만은 장제스가 공산당의 대만 침공을 격퇴했다는 이유로 동상을 철거하지 않았었다.

올해 ‘2·28 사건’ 60주년을 맞는 대만 정부는 동상 철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를 계기로 ‘장제스 격하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2·28 사건’은 국민당 정권이 중국 대륙에서 공산당 홍군과의 내전에서 패퇴해 대만으로 철수하기 2년 전인 1947년 2월 28일 발발한 것으로, 우발적인 치안사건이 원주민이 자치권을 요구하는 대규모 유혈 시민운동으로 번진 사건이다.

원주민에 대한 과잉진압으로 촉발된 대규모 시위가 국가기관 습격으로 확산되자 대륙에서 공산당과 전투를 벌이고 있던 장제스가 증원군을 파견, 이후 3개월간의 진압과정에서 2만여 명이 학살되는 대참사가 빚어졌다. 천 총통의 민진당 정부는 장제스 전 총통을 ‘2ㆍ28 사건’의 원흉으로 지목하며 야당인 국민당을 비난하는 빌미로 삼고 있다.

대만의 탈 중국 바람이 선거용일 수도 있다는 지적처럼 총선ㆍ대선을 향한 대만 정가의 움직임도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내년 총통선거 승리를 거의 목전에 뒀던 마잉주(馬英九) 국민당 주석이 타이베이 시장 재직 당시 특별비(판공비) 횡령혐의로 최근 기소돼 주석직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대선 정국은 더욱 혼미해졌다.

3선 출마 금지에 따라 천 총통의 민진당 대선 후보로 쑤전창(蘇貞昌) 현 행정원장(총리)과 셰창팅(謝長廷) 전 행정원장, 여우시쿤((游錫坤) 주석이 당내 경선출마를 선언했고, 이들과 함께 민진당 4대천왕으로 불리는 뤼슈롄(呂秀蓮) 부총통도 곧 여성총통을 향해 출사표를 던질 예정이다.

야당에서는 국민당의 마 주석과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국회의장)이 일찌감치 출마를 공식화해 6명의 대권주자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국민당은 지난 연말 가오슝(高雄)시 시장선거에서 민진당에 패배한 데 이어 ‘미스터 클린’이라는 이미지로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마 주석이 비리로 적잖은 타격을 받은 이후 당내 위기감이 팽배하다.

아직까지는 마 주석이 기소에도 불구하고 청렴성, 리더십 등에서 여전히 타 후보들을 압도하고 있고 이 때문에 국민당은 ‘기소자는 당내 경선에 참여할 수 없다’는 당헌까지 개정해 마 주석을 경선에 참여토록 할 방침이지만 왕 입법원장이나 롄잔(連戰) 명예주석을 대타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선거판도에 최대 변수

천 총통의 민진당은 민심 이반으로까지 발전했던 정권에 대한 불신임이 마 주석의 스캔들로 반전의 계기를 맞았다며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터져 나오는 천 총통의 잇단 ‘중국 지우기’ 정책은 선거 판도를 독립과 반독립 구도로 나눠 진보적 민족주의 진영을 결집하기 위한 정략이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민진당의 이런 ‘대륙풍’ 선거전략에 말려 패배했던 국민당으로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전통적으로 대만 총통 선거는 대중 강경성향의 민진당 거점인 남부와 대중 온건성향의 국민당 거점인 북부의 구분이 확연해 ‘51 대 49’의 싸움으로 전개돼 왔다. 천 총통이 대만 독립카드를 앞세워 4년 전처럼 다시 한번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대만 야당의원들이 지난해 10월 천 총통 가족의 비리를 단죄하는 모의탄핵투표를 하고 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