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모임, 민주당과 통합 막판 결렬로 독자 창당 작업 시작정동영·김근태 탈당 배제 못해… 정운찬·손학규도 세몰이 채비

김대중 전 대통련
범여권에 헤쳐모여 바람이 거세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탈당그룹인 신당모임이 내달 6일께 통합신당을 창당하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통합방식 및 주도권 문제 등을 놓고 막판에 결렬되면서 범여권 세력들이 각개로 세모으기에 나서고 있다. 통합신당 백지화로 신당모임은 일단 4월 20일 국회헌정기념관에서 중도개혁통합신당(가칭) 창당발기인 대회를 열고 독자행보를 시작했다.

여기에다 의 이해도 얽혀 범여권 재편구도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최근 친노 직계 인사들이 ‘참여정부 평가포럼’을 발족하려는 것도 그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정치평론가들은 추후 민주당과 중도통합신당이 다시 뭉친다면 호남에 여전히 영향력이 있는 DJ와 대선의 상수(常數)인 노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대선지형도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범여권 후보로 거론되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거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즉 손 전 지사나 정 전 총장이 범여권의 제 세력과 연대 내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거꾸로 노 대통령에 의해 고건 전 총리의 예처럼 중도하차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가에서는 민주당과 신당모임의 통합신당 시도는 지난해 거론된 DJ플랜과 연계됐다는 분석도 나돈다. DJ플랜의 핵심은 민주당-우리당 통합파가 범여권 세력을 규합, 통합후보를 내세워 정권을 창출하는 것으로 통합신당파의 ‘세력통합론’과 유사하다.

친노(親盧)그룹의 한 초선 의원은 “DJ플랜은 호남을 기반으로 충청까지 연대하는 ‘제2의 호남ㆍ충청연합(DJP)’을 추구하자는 것이며 97년 대선 때와 같은 ‘서부벨트’를 복원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친노 인사인 우리당 김혁규 의원은 “정계개편의 동력은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말해 DJ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한편 통합신당을 추진해온 정동영ㆍ김근태 전 의장 세력에게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넘기지 않겠다는 ‘노심(盧心)’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DJ의 막후 입김에 상응한 노 대통령 측의 전열정비도 주목된다. 최근 노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을 중심으로 27일 발족하는 ‘참여정부 평가포럼’이나 영남지역이 기반인 ‘영남개혁21’ 이 대표적이다. 친노 조직인 ‘참여정치연구회’, ‘의정연구센터’가 재보선 직후인 27일께‘해체’를 결정하고 노심(盧心)에 따른 대선후보 지원체제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우리당 정세균 의장이 정계개편에서 ‘후보중심 통합론’을 내세운 것도 노 대통령의 의중과 맞아 떨어진다는 해석이다. 후보중심 통합론은 단지 통합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친노 후보’를 부상시키겠다는 것. 우리당 김혁규ㆍ한명숙ㆍ유시민 의원, 김두관 전 최고위원 등이 해당한다.

정치컨설턴트 e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노 대통령의 대선전략은 우리당을 ‘영남 개혁신당’으로 친노 중심기지로 확고히 구축해놓고 범여권 대통합이나 한나라당과의 연대(연정)를 모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DJ의 ‘호남-충청 연대’를 토대로 노 대통령의 영남 일부가 결합하는 ‘3개 지역통합’도 가능하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범여권 개편에서 주목되는 또 다른 그룹은 진보개혁세력이다. 이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슈를 둘러싼 논란에서 반(反)FTA 입장에 섰다는 점에서 통합신당, 친노그룹과 뚜렷한 입장차이를 보인다. 우리당에서는 반FTA에 앞장섰던 김근태 전 의장의 ‘민주평화연대’, 천정배 의원의 ‘민생정치모임’소속 의원들이 중심이다. 이들은 최열 환경재단 대표, 정대화 상지대 교수 등 시민사회 명망가들이 대거 참여한 ‘창조한국 미래구상’과 70~80년대 초반 민주화운동세력의 주축들이 만든 ‘통합과 번영을 위한 국민운동’과 연대해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범여권 개편에서 대선주자들의 행보는 주요 관전 포인트다. 우리당 정동영ㆍ김근태 전 의장, 한명숙ㆍ김혁규ㆍ유시민 의원, 김두관 전 최고위원, 민생모임 천정배 의원, 그리고 범여권 영입 1순위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이 해당한다.

정운찬·손학규 누구와 손 잡나

정동영 전 의장은 “지금은 당 내에 머무르고 있지만 필요하면 결단할 생각이 있다”고 말해 탈당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정가에서는 신당모임 의원들의 상당수가 정동영계라는 점과 정 전 의장이 호남(전북) 출신이라는 점에 근거해 그가 탈당할 경우 통합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지만 손학규 전 지사, 정운찬 전 총장과 함께 중도개혁세력 연대를 도모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근태 전 의장 역시 친노그룹과 동행이 어려워 탈당이 예상된다. 그럴 경우 개혁적 시민사회세력과 연대하거나 손 전 지사와 손잡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김혁규ㆍ한명숙ㆍ유시민 의원은 친노그룹과 행보를 같이 할 것으로 전망된다. 친노그룹 중 부산 출신과 의정연은 김혁규 의원에 우호적이고 참정연은 한명숙 전 총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후문이다.

범여권 후보 중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손학규 전 지사와 정운찬 전 총리는 독자 신당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범여권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손 전 지사는 6월 초 ‘선진평화연대’를 발족하고 본격적인 대선행보에 나설 계획이다. 손 전 지사측 관계자는 “정계개편의 빅뱅이 일어날 경우 40명 안팎의 의원이 합류할 것이 예상된다”면서 “세(勢)를 확장한 다음 범여권 후보로 나서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운찬 전 총장은 “대선 출마를 하게 된다면 내가 깃발을 꽂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오는 방식이지, 현역의원들의 이합집산에 내가 가는 방식은 아니다”고 말해 기존정당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 노선을 걷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 전 총장측은 4월부터 각 분야별로 대선을 위한 세력을 구축하면서 전문가집단에 대선 공약도 의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측근 인사는 “6월쯤이면 정 전 총장의 진면목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해 그의 실질적인 대선행보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정 전 총장이 손학규 전 지사나 정동영 전 의장과 연대하는 것에 겉으로는 소극적이지만 범여권에서 추대할 경우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범여권의 개편은 6월 즈음 빅뱅이 일어날 전망이다. 통합신당을 비롯한 대선주자들의 본격적인 행보가 그때 이뤄지기 때문이다. 범여권 대선주자들은 지금 6월의 1차 대회전을 위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물밑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4월 4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 출판 기념회에서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문국현 유한킴벌리 대표가 악수하고 있다
4월 19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교수신문 창간 15년 기념식에 참석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정동영, 김근태 우리당 전 의장.
우리당 당직자 회의에참석한 한명숙, 김혁규 의원.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