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러, 한강·임진강 하구·연해주 공동개발 '그랜드 디자인' 추진

북한을 방북한 김혁규 한나라당 의원이 5월 3일 평양 만수대에서 김영남 북한인민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범여권 친노(親盧)그룹 인사들의 방북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3월 이해찬 전 총리, 이화영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평양을 방문,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을 만난 데 이어 지난 2일에는 김혁규 의원을 단장으로 이광재, 이화영, 김태년, 김종률 의원 등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회 소속 남북경제교류협력단이 방북해 북측과 남북 경제교류 확대 등을 논의하고 돌아왔다.

한명숙 전 총리가 지난 4월 25일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장례식의 조문사절로 러시아를 방문, 푸틴 대통령의 방한과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및 한반도 종단철도(TKR) 연계사업 논의를 요청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한 것이나 이해찬 전 총리가 5월 중순 미국 방문에 이어 6월 러시아 방문을 추진하는 것도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과 연계돼 있다.

이들 친노 인사들의 방북 행렬에서 두드러진 점은 ‘방북 의제’다. 기존 정치인들의 방북이 정치적 행사에 비중을 둔 데 반해 경제협력 부문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

김혁규 의원도 “방북 의제가 경제 부문에 집중돼 있다는 점은 정치적인 행보에 그쳤던 기존 정치인들의 방북과는 뚜렷이 차별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방북 의제 경제부문에 집중

친노그룹이 최근 북한 측과 협의한 방북 의제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지만 일부 공개된 내용들은 기존의 퍼주기식, 또는 구두언에 그쳤던 대북지원과는 달리 남북 간에 진전된 경협을 추진한다는 데 특징이 있다.

예컨대 임진강ㆍ한강 하구를 ‘공동평화구역’으로 설정해 32억 톤의 모래를 채취하고 개성과 서울을 잇는 남북 대운하를 건설하며 한강-개성-해주로 연결된 신황해권 경제특구 구상에 따른 경공업 중심의 제2 개성공단 조성 등이다.

TKR-TSR 연결 방안도 ‘동북아 경제 중심’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국가적 어젠다에 머물지 않고 남ㆍ북ㆍ러시아 3국이 TKR을 복원, 경제를 매개로 3국이 윈-윈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친노그룹이 새롭게 추진하는 방북 의제는 ‘한국판 마샬플랜’이라고 할만큼 경제에 큰 비중을 두고 있으며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국제적인 청사진이다.

이러한 남북관계의 로드맵을 처음 기획하고 실천 프로젝트를 마련한 장본인은 대북사업가 장석중(57) 씨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 장 씨의 ‘한반도 프로젝트’를 차용, 수순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장 씨는 1990년대 초부터 대북사업(주로 수산업)을 하면서 1995년~2000년에 남ㆍ북ㆍ러 3국이 공동발전할 수 있는 ‘그랜드 디자인’을 구상하였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38 접경 지역 7개 프로젝트’와 ‘극동러시아(연해주) 개발’로 압축된다.

38 접경 지역 7개 프로젝트 중 하나가 친노그룹이 방북해 협의한 ‘한강 하구 개발 프로젝트’다. 주내용은 한강, 임진강 하구의 교동도(인천)에 800만 평의 민족공단(공동평화구역)을 조성하고 연해주 개발 재원을 마련, 남ㆍ북ㆍ러 3국이 경협을 통해 발전하는 방안이다.

극동러시아 개발은 한강 하구 개발 프로젝트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으며 연해주를 물류기지화하고 남북철도를 복원하는 TKR-TSR 연결사업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로는 극동러시아 자원을 북한 및 남한에 공급하고 남북한 공동 생산품을 러시아ㆍ유럽 등에 수출하거나 남한의 생활필수품을 북한이 수입해 극동러시아 전역에 판매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장 씨의 ‘그랜드 디자인’은 참여정부 들어 노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 씨가 처음 활용하려고 했다. 이 씨는 2003년 초 17년 가량 알고 지낸 윤동혁 전 소명실업 회장을 통해 장 씨의 프로젝트를 접하게 됐다.

Y 전 의원이 장 씨의 프로젝트를 윤 전 회장에게 소개, 윤 전 회장이 곧바로 장 씨를 만나 구체적인 내용을 듣고 이 씨에게 전달했던 것.

장 씨는 “당시 윤동혁 씨는 자신이 이기명 씨의 양아들이라고 말할 만큼 관계가 돈독했으며 내 프로젝트는 국가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자료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장 씨의 프로젝트 자료가 이기명 씨에게 건네진 뒤 이 씨는 윤 전 회장을 통해 “자료를 노 대통령에게 전달하려고 하는데 사전에 브리핑이 필요하다”고 해 브리핑 준비를 했다는 것.

장 씨는 이기명 씨 측의 투자 지원을 기대하며 구체적인 준비를 했지만 그 무렵 터진 ‘경기 용인시 땅 사건’(이기명 씨의 용인 지역 땅을 윤동혁 전 회장이 거액으로 매입하고 그 과정에 노 대통령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관여한 것 등이 논란이 됨)의 파장이 확산돼 두 사람의 발이 묶이면서 장 씨의 프로젝트는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

장 씨의 그랜드 디자인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며 조명을 받은 것은 2004년 중반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과 연결되면서부터다.

2004년 6월, 강원도 출신 정치인 강 모 씨는 장 씨의 프로젝트를 접하고 투자자를 물색하던 중 부동산 사업을 하던 전대월 전 하이앤드 사장을 소개했다.

전 씨는 장 씨의 프로젝트 중 특히 연해주 개발과 관련한 사할린 유전사업에 관심을 보였다. 전 씨는 그해 7월 동향의 중학교 동문인 이광재 의원을 찾아가 러시아 유전사업 투자자를 구해줄 것을 요청했고 이 의원은 에너지 전문가인 허문석 박사를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씨는 2004년 8월 16일 장석중 씨와 함께 러시아 페트로사 유전 현장을 다녀온 뒤 “이광재 의원이 강원도 삼척에 바이오디젤 공장을 세우는 것을 비롯해 에너지에 관심이 많다”면서 장 씨에게 자료를 요청했다.

장 씨는 이기명 씨에게 전한 것과 같은 내용의 한반도 프로젝트 자료를 건넸다고 한다.

전 씨는 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광재 의원에게 직접 전한 장석중 씨 자료는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고 해 이 의원 측이 장 씨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이 의원을 비롯한 친노 인사들은 장 씨의 자료를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게 드러나고 있다.

이광재ㆍ이화영 의원이 2005년 3~4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권 대표인 콘스탄틴 폴리코프스키를 면담하려 한 것(주간한국 2005년 4월 14일자)이나 최근 친노그룹이 제시한 방북 제의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광재ㆍ이화영 의원이 폴리코프스키를 만나려 한 것은 주목할만한 사건이다.

폴리코프스키는 연해주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막역한 관계다. 2001년 9월 26일에는 장 씨의 프로젝트를 전달받고 모스크바에 보고, 푸틴 대통령 극동담당인 바오와슨이 같은 해 4월 20일 장 씨를 모스크바로 초청하도록 했다.

남·북러 정상 회동 가능성 언급

그는 2001년 6월 연해주를 방문한 이수성 전 총리가 교동도(한강 하구) 프로젝트를 언급하자 “그것은 장석중 씨 것 아니냐”며 무안을 줄 정도로 장 씨의 프로젝트를 잘 알고 있다.

이광재ㆍ이화영 의원이 폴리코프스키를 만나려 한 것은 그의 극동지역 영향력을 활용해 장 씨의 프로젝트를 진척시키거나 북한과의 접촉, 나아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발판 마련의 수순으로 해석될 수 있다.

두 의원을 포함한 방북단이 제시한 의제들이 장 씨의 프로젝트와 매우 흡사한 것은 그러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장 씨는 “이번 방북단의 핵심은 이광재 의원”이라면서 “이기명 씨나 이광재 의원 쪽에 건넨 자료 중엔 세부사항은 빼놓았는데 방북단이 언급하는 의제를 보면 바로 내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오류가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 씨는 “한반도 프로젝트는 푸틴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도 익히 알고 있고 이에 대해 특별 지시를 내린 바도 있어 구체적으로 실행될 경우 남ㆍ북ㆍ러 정상이 만날 수 있다”며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했다.

장 씨는 러시아와 북한 정보통의 소식을 전제로 러시아는 한국의 대러 차관(14억7,000만 달러)과 러시아의 대북 차관(89억 달러)을 상계하는데 적극적이고 이를 한반도 프로젝트와 연계시키려 한다고 덧붙였다.

한명숙 전 총리가 푸틴 대통령에게 전한 노 대통령의 친서에 한반도 프로젝트의 진행과 차관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을 것이라는 게 장 씨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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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러가 손잡고 추진중인 한반도 프로젝트가 경제계에도 관심을 끌고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