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계절… 누가 살아남을까親盧·反盧 등 돌리고 제갈길 채비… 당분간 군웅할거 시기 이어질 듯

2006년 12월 28일 열린우리당 정동영(왼쪽), 김근태 전 의장이 시내 한식당에서 회동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친노(親盧)와 반노(反盧)의 오월동주가 끝내 파국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지난 2월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당적 정리를 계기로 형성된 양측의 휴지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노 대통령과 정동영·김근태 두 전직 의장이 최근 주고받은 '구태정치', '분열정치', '변종 공포정치' 등의 극언은 범여권이 대선까지 걸어가야 할 험난한 여정의 예고편 격이다.

정·김 전 의장이 예고한 ‘5월 빅뱅’은 열린우리당 정세균 지도부에 위임된 통합추진 마감 시한인 6월 13일을 전후해 결판이 날 수밖에 없다.

‘노무현 대 정동영ㆍ김근태’ 싸움을 한발 비껴서 지켜보고 있는 60여 명에 달하는 관망파 의원들도 그때까지는 당에 남을지 떠날지에 대한 입장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거취에 따라 친노 진영과 반노 진영의 대선 역관계가 일차적으로 규정된다.

5월 빅뱅을 기폭제로 6~8월까지는 분열의 시기가 될 수밖에 없다. 범여권의 각 정파와 대선주자들이 저마다의 영역을 구축하며 군웅할거하는 시기다.

특히 임기 말에 오히려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노 대통령의 지지율을 바탕으로 결속력이 높아가는 친노 진영과 달리 반노 진영의 분열상은 대통합 자체에 대한 회의론으로까지 번져 있다.

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열린우리당과의 당 대 당 통합 및 제3지대 신당론에 심각한 회의를 밝히며 ‘민주당 중심의 통합’을 주장한 것이나 김한길 대표가 이끄는 세력이 독자신당을 창당한 대목은 세력이 중심이 된 대통합이 어려워졌음을 반증한다.

대선주자 진영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 등은 ‘후보 중심의 통합론’에 방점을 찍고 있으나 지지율 3% 미만의 대선주자들 중 누구도 강한 흡인력을 발휘하며 대통합의 깃발을 들기에는 난망한 상황이다.

이들이 후보 중심 통합론을 뒷받침할 수단으로 기대를 걸고 있는 ‘대선 후보 원탁회의’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주목도가 현저히 낮아졌다.

친노계와 난타전을 벌인 탓에 원탁회의가 성사된다 해도 고작해야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 등 반노 진영 기존 주자들만의 리그로 시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반노진영의 대선 주자들은 저마다의 독자세력화 구축에 박차를 가하며 소규모 연대전선 구축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 전 의장은 열린우리당 탈당 뒤의 행보에 대해선 입장을 뚜렷이 밝히지 않았지만 우리당 내 친(親)정동영 성향의 20여 명의 의원들과 이강래, 전병헌 등 김한길 신당에 합류하지 않은 탈당파 의원들을 규합해 제3지대를 선점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정동영-손학규로 압축되는 ‘2강 구도’ 형성에도 주력할 방침이다. 정동영 캠프에선 ‘정(鄭)답게 손(孫)잡고’라는 농반진반의 슬로건도 나온다.

그러나 이에 대해 손 전 지사 측은 냉담하다. 오히려 손 전 지사는 노 대통령의 비난에도 일체의 대응 없이 DJ와의 거리 좁히기에 여념이 없다.

평양 방문 등 표면적 행보 외에도 동교동계와 접촉이 잦다는 후문이 파다하다. 지난달 지식인 지지그룹인 선진평화포럼을 출범시킨 데 이어 6월 중순까지는 정치권 인사들이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선진평화연대를 결성해 독자세력화의 전진기지로 삼을 계획이다.

김근태 전 의장은 천정배 의원과 개혁연대를 구축해 노선의 선명성을 강조할 것으로 관측된다.

김 전 의장이 최근 분양원가의 전면 공개, 고위공직자들의 1가구 1주택 의무화 등 고강도 혁신 방안을 제시한 것은 이런 행보의 일환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매개로 천정배 의원의 민생정치모임과 김 전 의장의 민평련 사이에 접촉면도 넓다.

김 전 의장과 천 의원은 시민운동진영과 유일한 외부 주자로 남은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개혁연대에 합류해주길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통합과 번영을 위한 미래구상’은 여전히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문 사장 역시 최근 대선 출마에 적극성을 보이고는 있으나 정치권의 문턱을 넘는 시기를 서둘지는 않겠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친노·반노 극적 화해 가능성도

이처럼 당분간 각자의 깃발을 들고 난립하게 될 반노 진영 대선 주자들과는 달리 한명숙·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김혁규 의원 등 친노 주자들은 상대적으로 질서 있는 리그를 구축할 여지가 넓다.

후보 선출 방식 자체를 재구상해야 할 반노 진영과는 달리 이들은 열린우리당 내에서 오픈프라이머리 등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후보를 선출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 대통령의 영향권 내에 있는 이들 사이에는 노선과 정책이 크게 충돌하는 것도 아니다.

남은 문제는 9월 이후부터 펼쳐질 통합 국면에서 과연 친노와 반노 진영이 다시금 반(反)한나라당 전선에서 손을 맞잡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전망은 양측 공히 낙관적이지 않다. 친노 주자들과 반노 주자들, 외부 주자들이 함께 하는 통합 오픈프라이머리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대선이 코앞에 닥친 시점에 여론조사 등의 방식으로 범여권 후보가 단일화될 것이라는 관측과 친노와 반노 후보가 각자 출마해 대선 다자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는 관측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다만 이를 가늠할 잣대가 노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사이의 역관계라는 점엔 이견이 없다. 서부벨트 복원과 양자 구도를 구축해야만 정권재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는 DJ 노선과 원칙 있는 승부를 위해선 야당의 길도 감수해야 한다는 노무현 노선의 긴장이 범여권의 진로를 규정하는 근본 바탕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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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선진평화포럼 창립대회에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왕태석 기자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전 총리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