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정책 안팎서 거센 도전… 부시 '대환영', 푸틴 '떨떠름'

6일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세골렌 루아얄(53) 사회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 당선을 확정한 니콜라 사르코지(52) 집권 대중운동연합(UMP) 후보의 당선 일성이다.

그러나 이 일성은 대통령 당선자로서의 의례적인 인사말이 아니었다. 자신의 등장으로 극단으로 분열될지 모를 국론을 의식한 우려를 담은 것이자, 국정의 최우선을 화합에 둘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반대시위 격화, 노조도 심상찮아

사르코지 당선자의 고민을 반영하듯 결선투표 결과가 확정된 6일 밤부터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는 취임도 하지 않은 당선자 신분의 사르코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연일 벌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화염병까지 등장해 마치 2년 전 고용문제로 촉발된 대규모 이민자 폭동을 연상케 했다. 이날 밤 파리 바스티유 광장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시위는 극좌파들이 합세해 주요 도시로 급속히 확산됐다.

남부 리옹에서는 집권당 건물이 화염병 공격을 받았는가 하면 9일 낮에는 파리 1대학(팡테옹 소르본) 학생들이 사르코지의 대학개혁에 반발해 수업거부에 들어갔다.

사르코지가 고등교육기간 개혁의 일환으로 대학자치 확대, 직업교육 강화, 성적불량 학생 퇴출 등을 공약으로 내세운 데 대한 반대가 표면적인 이유지만 본질적으로는 독불장군식으로 밀어붙이는 그의 우파적 ‘일방주의’ 개혁정책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사르코지가 당선 직후 지중해 몰타로 가 언론재벌의 최고급 요트로 유람성 휴가를 즐긴 것도 성난 민심에 불을 지폈다.

사르코지는 부인 세실리아, 아들과 함께 언론재벌인 뱅상 볼로레의 전용기를 타고 몰타로 가 역시 그의 요트를 타고 초화화 유람을 즐겼다. 이 요트는 1주일 빌리는 값만 20만 유로(약 2억 5,000만원)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프랑스인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당선되자마자 재벌의 호화요트를 타고 유람을 떠난 것은 그렇잖아도 의심받고 있는 그의 친기업적 재벌 유착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사르코지는 볼로레와 20년 지기로 “납세자들의 돈을 쓰지 않았다. 사과할 뜻이 없다”고 강하게 맞받아치며 “프랑스인이 정치활동과 실제를 구별할 것으로 믿는다”고 예의 뚝심 있는 역공을 하기도 했다.

노조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프랑스 5대 노조의 하나로 강성 평가를 받는 FO(프랑스노동자동맹)는 성명을 통해 “일방적으로 노동조건을 바꾸려 할 경우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르코지의 공공부문 최소근무제 의무화 공약을 염두에 둔 노조의 입장은 사르코지 노동정책의 핵심인 이 공약을 놓고 정면충돌도 불사한다는 강력한 입장을 담은 것이어서 정부와 노동계 간 파란이 예상된다.

공공부문 최소근무제는 운송 등 독과점 공공서비스 분야의 경우 노조가 단체행동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근무인력을 남겨두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사르코지 당선을 보는 각국 정부의 입장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사르코지 당선자의 친미적 발언과 미국식 경제공약으로 크게 고무돼 있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그의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외국 정상으로는 가장 먼저 사르코지에게 축하전화를 걸었다.

전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12년 집권 기간이 미국 정부와 사사건건 부닥쳤던 ‘불신의 시대’였던 것을 의식한 기대감의 표현이었다. 미국의 일간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부시 대통령과 사르코지 당선자 모두 성격이 급하고, 자부심이 강하며 술을 마시지 못하고, 사르코지는 조깅을, 부시 대통령은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스포츠 마니아라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 신문은 특히 ‘부시의 푸들’이라는 수모를 겪을 정도로 유럽 내 부시의 ‘최대 협력자’였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6월 27일 총리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식 발표한 상황에서 사르코지가 등장한 것에 대해 더욱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르코지의 프랑스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독일, 전통의 혈맹 영국 등 미국에 우호적인 3개 유럽 핵심국가가 미국의 대외정책을 뒷받침하는 유럽의 발판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실제 러시아와의 관계가 갈수록 긴장국면으로 빠져들고 있고, 중국, 인도의 영향력도 급속히 팽창하고 있는 시점에서 유럽과의 밀착은 미국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호재이다.

반면 러시아 정부는 정반대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사르코지 당선 이틀이 지난 8일에야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뒤늦은 축하’를 보낸 것은 러시아와 프랑스 관계가 냉랭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러시아 언론들의 평가처럼 양국 관계는 앞으로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미국이 체코와 폴란드에 설치하려는 미사일방어(MD) 시스템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노골적인 동진정책으로 미국과의 ‘신냉전’이란 말까지 나오는 마당에 친미적 사르코지 정권이 등장한 것이 러시아 정부로서는 반가울 리 없다.

앞으로 들어설 사르코지 정권보다 떠나는 시라크 대통령에게 “러시아와 유럽을 묶는 전략에서 같은 의견을 보여준 당신을 존경해 마지 않는다”는 더 진한 감정의 메시지를 보낸 것은 역설적이다.

아프리카는 사르코지의 강력한 이민억제 정책으로, 터키는 자국에 대한 유럽연합(EU) 가입 반대로 사르코지의 등장을 탐탁치 않게 보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언론들은 2년 전 이민자 폭동을 상기하며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우리 동포들이 떨게 됐다”는 노골적인 논평을 게재하며 ‘유럽 중심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사르코지를 맹비난했다.

7월 총선이 순항여부 시금석

사르코지 당선자의 발등에 떨어진 가장 급한 불은 다음달 실시되는 총선이다.

대통령과 총리의 임기가 달라 수차례 여와 야와 정부를 공동구성하는 불안정한 ‘동거정부(cohabitation)’를 경험했던 프랑스 정부는 이 같은 권력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 이번에 처음으로 대통령과 총리를 뽑는 총선을 같은 해 실시한다. 대선에서 이긴 정당이 총선에서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높임으로서 대통령에 보다 강한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조치이다.

다음달 10일 실시되는 총선 1차 투표는 사르코지의 최측근으로 사회ㆍ교육 장관을 지낸 프랑수아 피용(53)을 과도총리로 해 치러지고, 총선에서 승리하면 그가 총리에 오를 가능성이 유력하다. 그가 사르코지 진영 인사들 중 좌파로부터의 거부감이 가장 적은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사르코지 당선자의 임기 초반은 분명 프랑스에 분열의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가 노동, 이민, 경제 등에서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우파적 정책이 뚝심 있는 정책으로 뿌리를 내릴지, ‘복지와 성장의 충돌’이라는 해묵은 반목을 부르는 혼란을 부를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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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일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광장에서 사르코지 당선에 항의하는 한 여성이 진압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황유석 국제부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