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 룰 기싸움' 박근혜 측 '말약설' 거론하며 반대… 분당 시나리오도 나돌아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5월 10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한 후 감학원 전국위원장이 발언하려 하자 회의 진행을 비공개로 할 것을 제의하며 제지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단 한 표로도 승패가 갈리는데 500표 차이가 별 것 아니라니…. 그게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유리하게 중재안을 만들었다는 증거가 아니고 뭡니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캠프의 한 핵심 관계자는 9일 강재섭 대표가 발표한 경선 룰 중재안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이 전 시장 측과 강 대표와의 ‘밀약설’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현행 경선 룰대로 해도 이 전 시장이 결코 불리하지 않은데 과욕을 부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박 전 대표는 강 대표의 중재안을 거부하고 경선 불참을 시사하는 등 이 전 시장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올해 초부터 불붙기 시작한 이 전 시장 측과 박 전 대표 진영 간의 대결이 예사롭지 않다. 최근 경선 룰을 둘러싸고 ‘치킨게임(chicken game)을 방불케 할 만큼 벼랑 끝 대결을 벌이고 양상이다.

당 안팎에서는 “이러다 경선도 치르기 전에 당이 깨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이ㆍ박 진영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식의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현재 이ㆍ박 양측이 첨예하게 격돌하고 있는 지점은 경선 룰, 그중에서도 ‘여론조사’ 부분이다.

한나라당의 현행 경선 룰은 당심(黨心)인 대의원 20%(4만) 및 당원 30%(6만)과 민심(民心)인 일반국민 30%(6만) ,여론조사 20%(4만)을 5대5 비율로 반영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여론조사 인원 4만 명에 방점을 두고 있는 반면 박 전 대표 측은 20%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ㆍ박 진영이 경선 룰 문제로 파국으로 치닫자 강 대표가 9일 중재안을 내놓았지만 기름에 불을 붓는 격이 됐다. 박 전 대표 측은 강 대표의 중재안이 이 전 시장에 유리하게 변질됐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당심과 민심의 계산법이 도대체 어떻길래 양측은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걸까.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현행안대로 계산해보면 이렇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의 민심 지지도가 현재처럼 40% 대 20% 안팎으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여론조사반영 투표수 2만6,000표(가중평균투표율 65%×4만) 중 이 전 시장이 1만 5,600표, 박 전 대표는 1만 400표를 얻게 돼 5,200표의 차이가 난다.

강 대표 중재안, 李 13,00여표 더 얻어

반면 강 대표의 중재안에 따르면 대의원 및 당원, 일반국민의 투표 참가율을 각각 80%, 70%, 50%로 가정할 경우 득표수(가중평균투표율 71.325%×4만 6,000=3만 2,832표) 중 이 전 시장은 1만 9,699표, 박 전 대표는 1만 3,133표를 얻어 6,566표의 차이가 난다. 즉 중재안에 따르면 이 전 시장이 1천 300여 표를 더 얻게 된다. 박 전 대표 측이 중재안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다.

박 전 대표 측은 경선 룰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중재안에 의거할 때 박 전 대표가 승리하기는 매우 어렵고, 현행안대로 할 경우에도 이 전 시장과의 여론지지율 격차를 10% 이내로 줄이고 당심에선 이 전 시장보다 10% 이상 지지율이 높아야만 역전승이 가능하다고 분석한다.

즉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간에 여론 지지율과 당 지지율이 현재와 같이 유지된다면 현행안에서도 경선 승리가 어렵다는 말이다..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가 3월 초 한나라당 대의원 500명, 19세 이상 남녀 1,000명 중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을 당원,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의 현장 투표에 참여할 의향을 밝힌 사람을 국민참여선거인단으로 간주, 한나라당의 현행 대선 후보 경선 방식으로 계산한 결과 이 전 시장이 박 전 대표를 13.4%포인트 앞서며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일반 여론조사에선 이 전 시장(48.8%)이 박 전 대표(26.8%)를 크게 앞섰으나, 대의원 조사에선 박 전 대표(40.0%)가 이 전 시장(38.6%)을 근소하게 제쳐 이 전 시장은 민심, 박 전 대표는 당심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보였다.

최근 한국갤럽,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미디어리서치, 리얼미티 등 5개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의 지지율 격차는 15~20% 포인트를 유지하고 있다.

당심에서는 박 전 대표가 앞서거나 뒤지기도 한다. 두 주자의 지지율 격차는 10% 이내로 좁혀지지 않아 이러한 구도가 8월 경선까지 지속된다면 현행안대로 하더라도 이 전 시장이 유리한 상황이다.

이명박-박근혜 진영 간 경선 룰 샅바싸움은 여론조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선 룰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대의원(20%, 4만), 당원(30%, 6만)의 구성에서 또 다른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그것도 계산해보면 이렇다.

한나라당 ‘2007 국민승리위원회’가 3월 27일 마련한 당헌 개정안에 따르면 8월 경선에 참여할 대의원은 1만 명에서 4만 명으로 늘어났다.

대의원 구성 관련안도 논란 여지

개정안에서 두드러진 점은 대의원 확대에 따라 시ㆍ도당 추천 몫이 신설(시ㆍ도당별 각 20인씩)됐고 당연직, 국회의원 추천, 최고위원회 의결, 시ㆍ도당 추천 몫을 제외한 수에 따라 당원협의회별 추천 수를 배분하게 했다.

또한 당원협의회에서 추천하고 시ㆍ도당 운영위원회에서 의결한 당원, 국회의원이 추천하는 당원이 대의원 총수의 50% 이상으로 구성토록 해(당헌 제12조) 당원협의회장(구 지구당위원장)의 권한이 더욱 막강해졌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측이 전국을 돌며 당원협의회장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전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의원 구성과 관련해 논란이 예상되는 것은 최소 인구의 당원협의회와 최대 인구의 당원협의회의 선거인단수 비율이다. 개정안에서는 그 비율을 1:2로 하였지만 인구의 상한과 하한을 놓고 첨예한 격돌이 예상된다.

지난해 한나라당 7ㆍ11 전당대회 때는 최소 인구 하한선을 유권자 14만 명, 최대 인구 상한선을 유권자 28만 명으로 하였다. 이에 따라 14만 명 이하 유권자 지역은 14만 명으로 끌어올려 14명의 선출직 대의원을 인정하고 유권자 28만 명이 넘는 지역은 28만 명을 상한선으로 하였다.

그리고 각각 청년, 여성, 장애인 몫의 대의원 1명씩을 추가로 인정하였다.

예컨대 지난해 5ㆍ31 지방선거를 기준으로 전국에서 유권자가 가장 많은 경기 용인시을 지역(27만 9,3338명)은 27명의 대의원에 3명의 추가 대의원을 더해 모두 30명의 선출직 대의원이 인정되었다.

유권자가 8만여 명에 불과한 전남 함평ㆍ영광군(8만 1,613명)이나 경남 남해ㆍ하동군(8만 5,942명)은 14명의 대의원을 인정하고 3명의 추가 몫을 더해 모두 17명의 대의원을 선출할 수 있다.

따라서 대의원의 상한, 하한 기준은 경선 룰을 정하는데 있어 이명박ㆍ빅근혜 측의 이해관계에 따라 논란의 소지가 크다. 수도권에 강세를 보이는 이 전 시장 입장에선 하한선을 낮추는 것이 유리하고 영남과 농촌의 지지가 높은 박 전 대표 측은 현행안을 유지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선 룰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당원 부분에서 이ㆍ박 양 측의 대립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특히 ‘책임 당원’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현행 당헌ㆍ당규에 따르면 당원 30% 중에 50%는 책임당원으로 채워진다.

그러므로 책임당원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선거인단의 규모가 달라진다. 당헌ㆍ당규에 책임당원은 1년에 당비를 6회 이상 낸 당원으로 규정돼 있다.

4월 30일 현재 한나라당 책임당원은 13만~14만 명, 일반당원은 110만~120만 명에 이른다. 책임당원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한나라당 지지기반인 영남권에 집중돼 있다.

책임당원 규정을 엄격하게 해석할 경우 수도권, 영남 지역 당원들에게 유리하지만 타 지역 당원에겐 불이익을 줄 수 있다.

당 조직국의 관계자는 “지난 5ㆍ31 지방선거와 7ㆍ11 전대에서의 전례에 비춰 8월 경선까지 기회를 부여하거나 책임당원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의원 및 당원 구성과 관련 지역 인구, 또는 유권자수가 유력한 기준이 된다고 볼 때 수도권을 최대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 전 시장에 유리하다. 지난해 5ㆍ31 지방선거와 한나라당 7ㆍ11 전당대회에서 수도권(서울ㆍ인천ㆍ경기)의 유권자와 대의원 비율은 각각 48%, 45%에 달했다.

지난 3월 우수당원협의회 포상에서 1위를 한 경북 경주시(당협위원장 정종복)을 비롯해 7곳의 당협위원장이 모두 이명박계인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한나라당 취약지역인 호남에서 박 전 대표보다 앞서 있고, 박 전 대표에 비해 열세 지역으로 꼽혔던 충청권에서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는 것도 이 전시장 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전 시장에 유리한 구도 해석

최근 경선 룰을 둘러싸고 이명박-박근혜 양측의 공방이 분당의 수위까지 치닫고 있지만 경선 룰과 이를 구성하는 선거인단의 구조를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이 전 시장에 유리한 구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선 룰의 기초가 된 당 혁신안을 만든 홍준표 의원이 10일 이 전 시장을 향해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인 분이 '만석꾼이 쌀 한 섬 더 가지려고 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다.

박 전 대표 진영은 경선 환경과 경선 룰이 이 전 시장에게 유리하다고 보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한편 이 전 시장 측이 경선 룰을 자꾸 문제삼고 나오는 것이 검증 공세의 화살을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판단, 앞으로 검증론을 다시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ㆍ박의 경선 룰 전쟁은 8월 본게임 때까지 전선을 넓혀가며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만큼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ㆍ박근혜 지지의원 분포

-이명박계(57명)-

■ 지역구 의원
이재오 정두언 이종구 공성진 박계동(서울) 정의화 이성권 이재웅 안경률 박승환 김희정 박형준 권철현(부산) 이명규 안택수 주호영 김석준(대구) 이윤성 이원복(인천) 김기현 윤두환(울산) 고흥길 심재철 임해규 차명진 안상수 이재창 정병국(경기) 허천 정문헌(강원) 홍문표(충남) 이병석 이상득 정종복 임인배 권오을 이상배 김광원(경북) 권경석 이방호 김정권 김양수 김영덕 박희태(경남)

■ 비례대표 의원
김애실 박찬숙 윤건영 송영선 정화원 이계경 김영숙 고경화 이군현 진수희 배일도 박순자 이성구 (이상 비례대표)

-박근혜(46명)-

■ 지역구 의원
이혜훈 김충환(서울) 유기준 김병호 김무성 허태열 서병수 엄호성(부산) 곽성문 주성영 유승민 이한구 박종근 이해봉 박근혜(대구) 이경재(인천) 정갑운 최병국(울산) 신상진 김영선 이규택 한선교 유정복 정진섭 고조홍(경기) 이계진 심재엽 박세환(강원) 이진구 김학원(충남) 김성조 김태환 정희수 최경환 이인기 김재원(경북) 안홍준 김재경 김학송 김용갑 김기춘(경남)

■ 비례대표 의원
황진하 전여옥 안명옥 서상기 문희(이상 비례대표)

-중립(24명)-

■ 지역구 의원
박진 홍준표 원희룡 고진화 권영세 맹형규 김덕룡(서울) 김형오 김정훈 정형근(부산) 강재섭(대구) 황우여(인천) 남경필 임태희 전재희 고희선(경기) 장윤석(경북) 이주영 최구식 김명주 이강두(경남)

■ 비례대표 의원
박재완 나경원 이주호(이상 비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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