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레바논·이라크 최악의 치안위기… 종파간 갈등, 내전으로 확대 조짐

중동이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혼미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여전히 끝 모를 종파 간 내전이 계속되고 있고, 팔레스타인은 의회를 장악한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최대 정파인 파타당이 정국 주도권을 놓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면서 이스라엘의 코 앞에서 적전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 레바논에서는 반(反) 시리아계 유력 정치인이 또다시 암살돼 전국이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하마스와 파타당의 충돌은 지난 11일 파타당 계열 무장단체인 알 아크사의 지도자 자말 아부 알자디안이 하마스의 무장요원들의 공격으로 사망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파타당 소속으로 추정되는 무장 괴한들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각료회의가 열리던 내각 청사에 총을 난사하고 이어 12일 아침 이스마일 하니야 자치정부 총리의 자택에 박격포 공격을 가했다.

그러자 하마스 역시 이날 파타당 소속의 마흐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의 군대가 거주하는 건물 두 곳을 폭격했고, 이어 가자지구 북쪽의 파타당 보안군 본부를 점령, 이 지역 일대를 장악해 버렸다. 13일에는 남부로 진출, 파타당 보안군과 곳곳에서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 팔레스타인 공동내각 붕괴 위기

양측의 충돌로 11일부터 불과 사흘간 80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방의 경제제재로 이미 생활이 파탄상태에 이른 민간인들은 바깥 출입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집안에서 공포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주민의 3분의 1이 유엔의 구호식량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데, 교전이 격화하면서 유엔의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의 식량배급소와 진료소도 12일 폐쇄됐다.

하마스 소속의 파이디 샤바네 교통차관은 파타당 요원들에 납치돼 살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교전으로 지난 3월 가까스로 출범한 하마스와 파타당의 공동내각이 붕괴위기에 처하면서 팔레스타인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의 내전으로 돌입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양측이 정면충돌한 이유는 정부 운영방식에 대한 불만과 각기 보유하고 있는 보안군 통합문제가 직접적 불씨지만 이면에 자리한 상대방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근본적인 갈등의 씨앗이다.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며 무장투쟁을 고집하는 하마스가 지난해 1월 총선에서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압승하자 양측의 갈등은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하마스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해온 미국을 비롯한 유럽연합(EU) 등 서방은 하마스 내각을 고립, 붕괴시키기 위해 경제제재와 봉쇄로 팔레스타인의 숨통을 조였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방의 원조가 일방적으로 끊겼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점령을 인정하지 않는 기존 노선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스라엘 정부도 자치정부에 줘야 하는 월 5,500만 달러의 세수를 동결해 자치정부 재정을 파탄으로 몰고 갔다. 외부로부터의 자금이 완전히 막혀 공무원들의 임금도 주지 못하는 막다른 상황에 몰리자 하마스는 서방의 전방위 압박을 피하기 위해 지난 3월 이스라엘이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는 파타당과 힘겹게 공동내각을 구성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돈줄은 조금씩 풀렸지만 하마스를 무너뜨리려는 미국의 집요한 공작은 계속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공동내각 구성에 합의한 압바스 수반에게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면서 압바스 수반을 추종하는 파타당 보안군에 무기를 대주는 방법으로 하마스와의 분열을 부추겼다.

■ 레바논 정부군·무장조직 퇴로없는 싸움

지난달 퇴임한 알바로 데 소토 전 유엔 중동 특별조정관은 비밀보고서에서 “서방 세계가 총선에서 승리한 하마스 주도의 내각을 거부한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파괴적 결과를 낳은 근시안적 행태이자 중동평화 프로세스를 망치는 행동”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팔레스타인 파타당 소속 무장요원들이 하마스 거주지역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이번 양측의 유혈분쟁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파타당 세력이 하마스와 결별해 내각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팔레스타인 정국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압바스 수반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현재로서는 압바스 수반이 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6명의 파타당 소속 각료를 탈퇴시킨 뒤 새 내각을 구성하는 방법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파타당이 하마스와의 분쟁이 종결될 때까지 내각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새 내각 구성은 하마스가 장악한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매우 적다. 결국 조기총선 카드가 유일한 대안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하마스가 격렬히 반발할 것은 뻔해 어떤 사태가 초래될지 예상하기조차 힘들다.

압바스 수반은 지난해에도 미국에 의지해 조기총선을 주장했다가 하마스와 파타당의 무력충돌이 거세지자 이를 거둬들였던 전례가 있다.

7만 명 정도의 경찰ㆍ보안군을 보유하고 있는 파타당과 2만여 명의 보안군 및 무장요원을 갖고 있는 하마스가 전면전에 나선다면 재앙과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은 분명하다.

지난달 20일부터 정부군과 무장조직 ‘파타 알 이슬람’ 간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는 레바논도 최악의 치안위기로 치닫고 있다.

무장세력이 알 카에다의 사주를 받고 있다고 의심하는 정부군과 정부가 반정부 세력을 말살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무장세력이 퇴로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와중에 13일 또다시 반 시리아계 유력 정치인이 피살돼 레바논은 폭풍전야와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수도 베이루트 북부 마나라 거리에서 차량 이동 중이던 왈리디 에이도(64) 의원을 비롯, 10명이 그 자리에서 폭사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2년 전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가 암살된 곳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이었다.

의회 국방위 의장인 에이도 의원은 하리리 전 총리의 아들 사드가 이끄는 반 시리아계 다수당인 ‘미래운동(일명 3ㆍ14 그룹)’ 소속이어서 이번에도 하리리 암살 사건처럼 시리아 정부가 배후조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특히 지난 10일 유엔 주도의 ‘하리리 국제법정’ 설립이 발효된 직후여서 친ㆍ반 시리아 세력의 충돌은 더욱 극렬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이라크 시아파·수니파 무자비한 살육극

피의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이라크에서는 시아파가 3대 성지로 모시는 사마라의 알 아스카리야 사원이 13일 또다시 폭탄공격을 받아 사원 외곽의 미나레트(첨탑) 2개가 완전히 파괴됐다.

지난해 2월에도 폭탄테러로 황금이 씌워진 중앙 돔부분이 붕괴되면서 시아파와 수니판 간 무자비한 살육극이 촉발됐다.

이라크 정부는 사마라에 통행금지를 실시하고 바그다드에도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동했지만 바그다드의 수니파 사원 인근에서 약탈과 방화가 잇따르고 일부 수니파 사원이 폭탄 공격을 받는 등 벌써부터 시아파가 대규모 보복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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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