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선·총선 겨냥한 지지층 결집용 해석 유력친인척 비리 스캔들로 급락한 지지도 만회 포석도중국은 "무력으로라도 저지하겠다" 압박 수위 높여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의 도발이 점점 구체화하고 있다. 집권 초기부터 대만독립과 탈중국화를 줄기차게 주창해왔던 그가 최근 ‘대만(Taiwan)’이란 국호로 유엔 가입을 시도하면서 대만해협 양안에 다시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만의 유엔가입 시도는 자체로는 새로울 것이 없다. 1971년 중국의 주도로 유엔에서 축출된 대만은 1994년 이후 지난해까지 13년간 매년 빠지지 않고 유엔 가입을 위한 문을 줄기차게 두드려 왔다. 그러나 그 때와 올해는 질적으로 크게 다르다.

과거에는 명분이나마 중국 대륙의 정통성은 대만에 있다는 의미의 ‘중화민국(中華民國ㆍRepublic of China)’이라는 국호로 유엔의 문을 노크했지만, 올해는 중화민국 대신 대만이란 새로운 국호를 내세웠다는 점이다.

중국과 대만이 하나라는 것을 명시적, 공개적으로 포기하고, 대만이 중국과 별개의 독립국가라는 것을 세계에 노골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물론 올해도 대만의 이런 시도는 실패했다. 왕광야(王光亞) 유엔주재 중국대사는 8월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 자격으로 천 총통의 유엔가입 신청 서한을 반려했다.

지난달 20일 유엔 사무국에 천 총통 명의로 보낸 유엔가입 신청 서한이 반려되자 대만 정부가 10여일 만에 안보리에 재신청을 한 것이었다.

왕 대사는 대만의 유엔 가입시도를 “국제적인 말썽꾸러기에 의한 독립을 위한 작은 책략”이라고 비난한 뒤 ‘하나의 중국’을 인정한 유엔총회 결의 2758호를 반려의 이유로 들었다. 유엔 사무국 역시 똑 같은 이유로 신청 서한을 개봉 조차 하지 않은 채 돌려보냈다.

천 총통이 가능성이 0 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더욱이 국호를 정치적으로 더욱 민감한 대만으로 바꾸면서 가입 신청을 두번이나 연거푸 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만의 독립의지를 국제사회에 강조하는 선전적 측면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내년 3월 예정돼 있는 총통 선거(대선)와 입법원 선거(총선)를 겨냥한 지지층 결집용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잇따라 터져 나온 친인척 비리 스캔들 등으로 지지도가 급락한 천 총통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시급했고, 이런 점에서 독립카드는 진보층의 결집을 유도해 보수 야당과의 대결구도를 선명하게 몰아갈 수 있는 최적의 이슈라고 판단했음 직 하다.

따라서 유엔 가입시도는 애당초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가 아닌 국내 선거 정국을 겨냥한 정치공작이라 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천 총통은 총통 선거 때 유엔가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겠다는 복안이어서 선거를 ‘중국대륙풍’과 연계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대만’ 명의로 유엔에 가입하는 것을 지지하는 비율은 53.3%, 국민투표로 유엔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71.7%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 천 총통은 한껏 고무된 상태다.

■ 진먼섬 병력도 6,000명으로 대폭 축소

대만 정부의 최근 또 하나의 의미심장한 행보는 중국 대륙을 최전방에서 대치하고 있는 진먼(金門)섬의 병력을 대폭 감축한다는 방안이다.

‘진먼섬 방어 지휘부’ 편제를 11월1일부터 격하시켜 총 병력을 6,000명으로 줄인다는 이 계획은 진먼섬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겹쳐 미묘한 파장을 낳았다.

천수이볜 대만 총통(가운데)이 7월 20일 타이페이에 있는 집무실에서 제임스 황(오른쪽) 외교부장과 쏘롱타이 국무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UN가입 신청서에 서명을 하고있다.(타이페이=AFP 연합뉴스)

장제스(蔣介石) 전 총통이 ‘반공의 전초기지’로 삼아온 진먼섬에서 병력을 뺀다는 것은 본토(중국대륙) 수복을 포기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군사적 방법으로는 처음으로 대만 독립에의 의지를 현실화한 것이다.

‘진먼섬 방어지휘부’ 편제가 바뀌게 되면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50년대 말 10만명이 넘었던 병력은 11월께 5,000~6,000명으로 줄어든다.

물론 대만당국이 진먼섬을 만약의 경우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내비친 것은 결코 아니다. 우선 최근 장거리 미사일이 속속 개발되면서 대륙과 가장 가깝다는 전략적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사거리 1,000km의 슝펑(雄風) 2E를 개발해 실전배치까지 끝낸 대만으로서는 대륙쪽으로 200km 전방에 위치한 진먼섬이 큰 의미가 없어졌다. 본토수복을 노린다면 전진기지로서 의미가 있지만 이를 포기하고 방어적으로 돌아선 마당에는 대규모 병력이 필요치 않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대신 중국의 침공을 막기 위한 억지력으로 슝펑 2E 등의 최신 장거리 미사일과 1,600여문의 장거리포를 진먼섬과 마쭈(馬祖) 등 주변 섬에 대량 배치한다는 전략이다.

병력은 줄어들지만 수비부대와 포병부대, 장갑차부대, 상륙특전대, 미사일부대 등을 보강해 전력은 오히려 지금의 1.5배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노골화하는 대만 당국의 독립기도 움직임에 비례해 중국 정부의 압박과 위협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차오강촨(曹剛川) 중국 국방부장 겸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은 인민해방군 창설 80주년 기념행사에서 “대만독립과 대만독립을 초래할 ‘중대사변’을 억제할 결심과 능력, 준비가 돼 있다”며 대만의 독립시도를 무력으로라도 저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은 대만의 독립시도를 중대사변으로 규정한 것이다.

‘중대사변’이란 중국대륙이 2005년 제정한 ‘반(反)국가분열법’ 8조에서 인민해방군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상태를 말한다.

무력을 사용해 대만독립을 저지할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보장해 놓은 것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도 기념식에서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신중하게 하고(愼戰ㆍ신전), 용감하게 싸워 반드시 이기고(敢戰ㆍ감전), 이를 위해 전쟁준비를 잘 해야(備戰ㆍ비전)한다”는 ‘3전론’을 제기해 차오 부장의 발언을 뒷받침했다.

■ 초중고 교과서도 탈중국화 시도

대만 정부는 최근 초중고 교과서에서 중국과 대만을 동일시하는 용어를 삭제하고, 중국을 외국으로 간주하는 용어로 바꾸는 등 교육분야에서 탈중국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해협양안’을 ‘양국’으로, ‘대만지역’을 ‘우리나라’나 ‘대만’으로, ‘중공’ ‘대륙’ 등은 객관적 용어인 ‘중국’으로, ‘국화(國畵)’ ‘국극(國劇)’ 등은 ‘중국서화’ ‘중국경극’ 등으로 바꾸는 식이다. 이렇게 바뀌거나 정리되는 용어가 5,000여개에 달한다.

당국은 야당인 국민당의 강력한 반발에 대해 “이 조치는 교과서 출판사들의 참고자료일 뿐 강제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이르면 내년 신학기부터 새로운 용어가 실린 교과서가 배급될 것이라는 데는 거의 이론이 없다.

천 총통의 도발은 어디까지 갈 것이며, 그 끝은 무엇일지 자못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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